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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Jun 18. 2019

'엄마'는 집에서 놀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업맘'으로 사는 것



엄마는 항상 스스로를 낮게 평가했다. 자신은 무언가를 '못한다'라고 늘 말했고, 그건 내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엄마는 손 발에 땀이 많이 나는 '수족 다한증'이 있다. 손에 땀이 나서 이것도 못 배우고, 저것도 할 수 없다고 자주 말했다. 그 질병인 듯 질병 아닌 질병 같은 것이 엄마의 자신감을 다 앗아갔나 하는 생각을 나는 아직도 한다.

반찬 하나를 만들어도 매번 '약치기'를 먼저 한다. 맛보기도 전인데 '이번엔 뭐를 덜 넣어서 맛이 좀...' '이번 건 뭐가 어째서 맛이 좀...' 약치기 전문이다. 자기방어다. '엄마, 오빠가 이거 진짜 맛있대.'라고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매번 똑같다. 장모님 거니까 그냥 맛있다고 해주는 거라는 대답. 그런 엄마는 남의 반찬은 그냥 다 맛있다. 물론 남이 해준 밥이 맛있는 것은 진리이지만, 좀 도를 지나쳤다.
엄마는 본인이 손재주가 없다고 한다. '니 외할머니는 손재주가 아주 좋은데 그걸 이모한테만 물려주고 나한텐 안 물려줬다.'라는 말도 한다. 난 어렸을 때 엄마가 떠 준 주황색 조끼, 까만 거실 탁자에 깔던 새하얀 핸드메이드 테이블보가 다 생각나는데, 정직 본인은 손재주가 없어 슬프다고 한다.
엄마는 교회에서 권사 직분을 맡고 있다. 가끔 대표기도 차례가 돌아오곤 하는데 그럼 꼭 하는 말이 있다. '남들은 기도도 길게 잘하고 간증 거리도 많고 꿈에 계시도 받고 그런다는데 나는 그런 거 하나 없냐.' 나는 긴 기도는 지루하고 어떨 땐 기도문에 온갖 미사여구 갖다 붙이시느라 애쓰셨네 하는 생각만 들던데. 신앙생활에서 무슨 계시를 보는 게 중요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던데 엄마는 그렇지 않나 보다.
엄마는 이수근 같은 언변 좋은 개그맨이나 김미경 강사 같은 말 잘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말도 참 잘하는데 나는 말을 왜 이렇게 못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숨 쉰다. 그럼 나는 '아니,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 밥그릇 뺏을 일 있나 그렇게 말 잘해서 뭐하게?' 하고 늘 되묻는다.
우리 엄마는 절세미인은 아니지만 예쁘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자리에 가게 되면 사람들이 '어머니 정말 미인이시다. 니가 아빠 닮았구나...' 하며 말끝 흐리는 소리를 자주 듣지만 엄마는 본인이 못생겼다고 한다. 가끔 아주머니들 단체사진을 보여주며 이 분은 피부도 곱고 정말 예쁘지 않냐고 묻는데 엄마가 훨씬 낫다고 해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내가 만든 머리핀을, 내가 쓴 글을 좋다 좋다 잘한다 해도 나는 늘 진심을 담아 아니라고 별로라고 밀어낸다. 칭찬을 의심하고 왜곡한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주변에 글 잘 쓰고 손재주 좋은 엄마들이 너무 많은 거다. 그들은 부지런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인데, 나는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20대 시절, 단짝 친구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넌 왜 칭찬을 하면 받아들이지를 못 해?" 그 뒤에 이어진 말이 예술이다.
"혹시 너네 어머니도 그러셔?"
20대 초반 치고는 진지한 생각만 하고 다니는 친구였는데, 그 친구의 일리 있는 통찰에 무릎을 탁 쳤었더랬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나한테 스며든 엄마. 내 안에 엄마의 모습이 있었다.
  

 
엄마의 셀프 저평가 방점은 여기서 찍힌다. 바로 '전업주부의 삶'에 대한 태도다.
엄마는 자신의 생활을 늘 '놀고먹었다'라고 표현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니 아빠가 벌어 온 돈으로 편하게 놀았다고 자주 말했고, 동시에 그렇게 놀고먹어 한심하다는 말도 종종 했다. 지난주에 엄마는, 돈도 안 벌고 뭘 배우지도 않고 여태 허송세월만 하고 산 것 같다는 말도 했다. 60세면 새댁인 게 요즘 세상인데, 지금이라도 뭘 배워보자 하면 손에 땀이 나서 못 한다는 기승전'수족다한증'인 도돌이표 대화로 마무리된다.


엄마가 그런 얘기를 하면 나는 늘 공격적으로 반응한다.
"뭘 또 놀고먹어? 엄마가 놀았어? 집안일하고 애 키우고 그건 노동 아니야?"
엄마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본인은 꼴랑 딸 하나 키우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딸 하나 키우면서 좋은 회사 다니는 남편 있어서 편하겠어.' 했다는 거다. 그럼 난 또, 육아노동에 성별 없고 인원수 없다고 바득바득 우기면서 엄마 말에 반기를 든다. 나는 엄마의 가사노동을 다 기억하고 그 노동의 가치를 이제는 이전보다 더 절절히 인정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말이 내면화돼서일까. 엄마 스스로는 그렇지 않나 보다.

여기서 반전이 있다. '엄마는 결코 놀지 않았다'고 큰소리치면서,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속으로 '나는 놀고 먹는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특히 막내까지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는, 드라마 다시보기 한 편만 봐도 불편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남편은 일 하느라 고생인데 나만 너무 팔자 좋나? 시간낭비 아닌가?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놈의 생산, 생산, 생산. 오후에 낮잠을 자거나 티브이를 보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수족다한증이 아니라 전업주부로 살아온 긴 세월이 엄마의 자감을 빼앗은 걸지도 모르겠다. '생산적인 일'의 기준이 돈이라고 생각되니, 스스로가 무능해 보였고 자신감이 없어졌다. 취미생활, 휴식, 드라마 한 편으로 얻게 되는 정신적 풍요로움은 간단히 무시됐다.


'지출'에 있어서도 전업주부인 엄마는 항상 아빠 눈치를 봤다. 아빠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가 조금 더 비싸고 좋은 것을 사서 쓰길 원하는 분이었지만 엄마는 혼자 무슨 죄인이라도 된 것 마냥 돈을 힘겹게 썼다. 그 지출이 엄마 자신을 위한 것일 때 그리고 엄마의 친정에 들어가는 돈일 때는 더욱 그랬다. 돈 번 사람의 돈이 아니라 '가정'의 공동 돈인데 왜 그러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이해되기 시작한 건 내가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부터였다. 남편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죄인처럼 돈을 쓴다. 특히, 밖에서 커피를 마실 때나 내 취미를 위한 재료를 살 때 그리고 엄마한테 필요한 물건을 사다 줄 때, 나는 남편한테 바로 알림 문자가 가는 급여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엄마는 가끔 나보고, 너도 전업주부인데 나처럼 자존감 낮게 안 사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한다. 엄마는 모른다. 내가 엄마 앞에서 얼마나 '안 그런 척'하는지. 나도 엄마처럼 그런데, 의식적으로 안 그러려고 하는 거라고 차마 말하지는 못했다.






전업주부로서의 내 낮은 자존감을 엄마 탓으로 돌리려는 건 아니다.(세상에 부모탓만큼 쉬운 게 있을까?) 엄마가 그렇게 안 살았어도 나는 그럴 수 있는 거고, 엄마가 그렇게 살았어도 나는 충분히 안 그럴 수 있었으니.


그저 내 아들들 앞에서 스스로를 '논다'고 표현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아이들한테 집에서 '노는' 엄마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엄마의 보이지 않는 노동의 가치를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그 노동도 태초부터 '엄마의 몫', 미래의 아내의 몫인 게 아니라 자기들의 것인 걸 아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다. 그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매일 고민하고 있지만, 사실 하루하루 형제의 난을 말리기만도 바빠 죽겠는 '영유아기 육아'의 요즘이다. 하긴 나부터도 욕실 수납장의 수건이 거저 개져 있는 게 아니란 걸, 현관이 맨발로 나가도 될 정도로 깨끗한 게 그냥 돼 있는 게 아니란 걸 깨닫기까지 20년 넘는 시간이 걸렸는데 저 날뛰는 망아지 같은 것들이 오죽할까. 깨닫는 시간이라도 좀 단축시킬 수 있도록 생색도 내고 집안일도 많이 시키고 그래야 할까?


엄마는 놀고먹지 않았다. 아빠가 벌어오는 돈으로 그저 허송세월 보낸 것이 아님을 내가 안다. 엄마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렇다.



날뛰는 망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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