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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국부랑자 Jan 19. 2019

뚱보가 되어도 좋아, 볼로냐에선

지방(기름)으로 부리는 마법의 도시 볼로냐

사실 원래 여행은 베네치아 4박 5일 일정이었는데 내 마음대로 하루를 볼로냐를 위해 써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돌아와서 쓰는 글이 바로 이 글이다. 베네치아 여행인데 볼로냐만 남았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각설하고 내 목적이었던 볼로냐에서의 반나절 식도락 여행기를 써보자.


볼로냐는 몰라도 볼로네제는 알 것이다. 얼마 전에 SBS의 골목식당에 나왔던 청년 구단의 한 파스타집에서 선보인 미트소스 파스타도 원형은 볼로네제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고기+토마토소스 = 볼로네제 이름을 붙여도 어떤 위화감도 받지 못한다. 크게 틀린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한식이나 중식도 유럽에 넘어오면 그런 식으로 변형되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청년 구단 편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그만큼 볼로네제가 유명하다는 뜻이다. 수많은 형태의 변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유명한 파스타가 나온 본고장의 이름이 바로 "볼로냐"다. 어떤 형태의 볼로네제던간에 고기와 토마토소스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여서 볼로냐에 간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던 일이 볼로냐에서 볼로네제 먹기였다. 


그렇게 볼로냐 역에서 내리자마자 걸어서 식당으로 향했다. 관광지가 아니란 생각에 너무 방심했나 보다. 가보려고 했던 두 식당 모두 풀부킹으로 자리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이게 가져다준 행운이었을까 정말 로컬스러운 식당에서 볼로냐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먹게 되었다. 


볼로냐 로컬 식당에서 와인부터

우선 이름이 달랐다. 볼로네제란 말은 없고 라구 탈리아텔레라고만 적혀있었다. 눈치껏 알아먹고 망설임 없이 시켰다. 흥건하고 고기가 잔뜩 들어간 토마토소스의 파스타를 생각했지만 눈 앞에는 고기는 시식용 정도로 올라가 있었고 면만 한가득이었다. 정말 똑같은 점이 있다고 한다면 옆에 파마산 치즈를 뿌려먹으라고 나온다는 점 정도였을까. 그래도 오리지널이라는 것에 의의를 두고 먹어보었다. 


볼로네제(라구 탈리아텔레), 라구 라자냐

분명 고급 레스토랑에서 느낄 수 있는 우아하고 세련된 맛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파스타는 파스타가 소스에 우선한다는 그 생각이 내 뇌리를 지배했다. 또한 이 오랜 시간 온몸을 녹여낸 고기, 레드와인, 올리브 오일 그리고 토마토 페이스트가  진득한 소스가 혀 끝을 자극했다. 이것은 단순히 소스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소스란 사실 단맛, 신맛, 짠맛의 밸런스가 아니던가? 이건 분명 지방의 농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 녀석은 그런 단순한 밸런스가 아니라 올리브 오일과 수분이 날아간 고기에서 빠져나온 지방이 레드와인의 타닌과 만나 만든 작품이다. 이런 음식이라면 매일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세 그릇 정도는 먹어야 했다. 지방이 부린 마법에 속아 내 몸에 지방을 쌓게 되는 곳이 바로 볼로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볼로냐의 한 정육점(?)  참고로 생고기는 팔지 않았다.


이 음식을 먹고 볼로냐 시내를 걷다가 또 하나의 지방을 만났다. 이름하야 모르타데~~ㄹ라. 모르타델라도 볼로네제처럼 다진 돼지고기와 "돼지기름"으로 만든다. 유럽에 살면서 비슷하게 생긴 햄을 많이 본 것 같은데 이 햄에는 "돼지기름"이 하얗게 중간중간 덩어리처럼 박혀있다. 무작정 먹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말도 안 통하는 정육점(?)에 들어갔다.ㅠ무슨 번호를 말하라고 자꾸 그러는 것 같았는데... 못 알아먹으니 그냥 주문을 받아주었다. 나가는 길에 보니 번호표 시스템이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난 모르타델라 300g을 주문했고 아저씨는 즉석에서 껍질을 칼로 벗겨서 얇게 슬라이스 해주었다. 생각보다 너무 큰 사이즈에 당황했다. 


모르타델라 써는 아저씨


 와인과 함께 맛을 보았다. 엄청 맛있다거나 볼로네제처럼 깊은 감동을 선사하진 않았다. 다만 이 모르타델라에서 느껴지는 맛이 순수한 햄의 결정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먹던 "햄"들이 이 볼로냐의 모르타델라를 흉내 낸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손으로 집어먹다 보면 중간중간 박혀있는 돼지기름이 손에 묻어난다. 이 돼지기름이 모르타델라를 한층 더 깊은 맛으로 안내하는 느낌이었다. 스페인에서 하몬을 손으로 집어먹던 생각이 오버랩되었다.

볼로냐의 한 젤라또리아


마무리로 이탈리아에서도 젤라또로 유명한 볼로냐에서 젤라또 한 입.

지방으로 시작해서 지방으로 끝나는 여행.

난 이렇게 뚱보가 되어간다. 뚱보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 뚱보의 도시 볼로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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