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밤샘산행-더위를 먹다.
2025-07-26~27
오늘은 밤샘산행 마지막이다.
지독히 더운 날 그보다 독한(?) 훈련 일정을 잡은 등반대장을 원망하며.
시작부터 땀을 흘렸다.
태옥씨는 나름 바람 부는 선선한 곳에서 충분히 쉴 시간을 주었다지만.
어두운 탓에 파이프 능선을 찾지 못하고 계곡으로 길을 잘못 들었을 때를 떠올리며
나중에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절로 느려지는 걸음과 쏟아지는 땀에 냄새까지.
걷는다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세 번의 밤샘산행 중 이번이 가장 더위에 지치고 힘들었다.
비교적 짧은 길이의 산행이라고는 하지만 제일 길었던 느낌은 순전히 더위를 탓하는 걸로.
초입에 숨이 차오른 석봉 형님은 홀로 하산을 결정한다.
내가 동행하겠다고 했더니 체력 좋은 도형 형님이 안전지대까지 다녀오라고 말한다.
허리 상태가 안 좋다며 작은 배낭을 멘 도형 형님이 석봉 형님과 출발하고.
길을 헤맨 탓에 밑에까지 내려갔다 올라온 도형 형님과 다행히(?) 조우하여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이면 귀신같이 눈치를 챈 대장이
바람 부는 길목에서 쉬어가자고 말한다.
한참을 땀을 식히며 바위에 누워 있다가 다시 출발을 반복한다.
땀에 절은 웃옷을 벗어 짜서 다시 입는 오영 형님을 보면서
나는 그나마 나은 편인가 보다 위안을 삼는다.
뒤늦게 합류한 건영 형님이 아직 힘이 남아 있는 듯 앞서 가고.
늘 저만치 앞서 걷는 춘선 언니는 오늘도 짱짱해 보인다.
매번 감탄하는 정말 대단한 체력과 정신력이다.
밤에는 조용하다는 영길이도 날이 밝으니 다시 수다를 시작할 모양이다.
잠겨 있던 목을 푸는지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전암장이 이렇게 멀리도 있구나 싶을 무렵 익숙한 길이 나온다.
최종 목적지인 관악산 전암장에 배낭을 내려놓는 순간.
내 정신줄도 같이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넋 놓고 앉아 있으니 깜짝쇼(?)를 하며 시원한 환타와 콜라를 사서 올라온 수진이.
모두의 환대를 받는다.
수진이가 엄마와 함께 걷는 이 순간을 맘껏 누렸으면 좋겠다.
홀로 응원을 보내며 그늘을 찾는다.
머리가 점점 띵해 오는 것이 제대로 더위를 먹었나 보다.
한밤중에 걷는데도 이렇게 더울 줄은 정말 몰랐다.
나라는 사람이 이 지구를 이렇게 데워놨으니 내 죗값을 이토록 오지게 받는가 보다.
쉴틈도 없이 줄을 거는 대장님이 야속하기만 한다.
훈련을 향한 그 치열함에 더는 누워 있기만 할 수도 없다.
대장의 욕심에는 못 미치겠지만 나에게 적당하다 싶을 만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짐을 꾸린다.
아...
드디어 이 지옥의 끝이 보이는구나.
먼저 하산했던 형님이 뒤풀이 장소에 다시 오셨다.
의리의 사나이.
석봉 형님.
처음 관악산에 들었던 사람들이 이렇게 모두 모였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앉아 함께 배를 채우니 조금 전의 지옥은 이내 잊혔다.
이렇게 간사한 내 마음이라니.
어서 이 더위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 너머로.
내가 선택한 산행이 지옥이 되는 경험이 이걸로 끝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다시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긴 숨 사이로 두통도 점점 옅어진다.
지옥문이 닫힌다.
지구야.
내가 잘못했다.
미안한데 제발 열 좀 식혀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