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드는 고독길
2025-08-03
비 소식이 있었으나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때문에 일요일 인수봉은 우리 차지나 다름없이 여유로웠다.
계속되는 더위로 시원한 단피 치를 갈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다 고독길을 가기로 결정한 태옥 씨.
찜통인 날에 그나마 그늘을 찾을 수 있는 고독길을 선택한 것에 감사하며.
몇 년 만에 등반을 다시 해본다는 윤지와 오영 형님과 넷이 단출하게 인수봉을 든다.
태옥 선등-나-윤지-오영.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없으니 여유로운 내 마음과 다르게.
바위에만 오르면 시간을 단축하려는 듯 바삐 움직이려는 태옥 씨의 행동력이 부딪힌다.
물론 나 혼자만의 싸움이지만.
오랜만에 인수봉에 오르니 또 무서움이 몰려와 두근두근.
나보다 더 오랜만인 윤지는 줄이 조금 모자라 위로 살짝 올라와서 매듭 하라는 태옥 씨의 무전.
보이지는 않아도 저 아래에서 안절부절못할 윤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무서울 텐데 배려 좀 해주지'
역시나 속으로만 태옥 씨를 노려보고 조용히 확보를 본다.
처음 줄을 묶어 보지만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 만큼 쓱쓱 올라오는 윤지.
본인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등반 꽤나 했겠다.
신중한 발디딤이지만 한편으론 거침없이 올라오는 게 줄 너머로 전해진다.
'잘하네'
나는 무서우면 인상부터 구겨지는데 올라오는 줄곧 윤지는 웃고 있다.
아는지 모르는지 입가에 미소가 번져있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다.
오랜만에 좋은가보다.
산에서 저렇게 미소 지을 수 있다니.
괜히 나도 씩 웃게 된다.
오영 형님도 큰 키를 앞세워 우리말로 두 번만 손 뻗으면 닿는 거리감(?)으로 바로 뒤따른다.
산 아래에서도 그렇더니 오늘은 무전기로도 투닥거리는 태옥 씨와 오영 형님의 케미를(?) 흘려듣는다.
여유를 부리며 인수봉 정상에 서서 계란과 자두를 나눠 먹는다.
하강줄을 설치하러 내려가는 태옥 씨.
오토블록 매듭을 물어보는 윤지에게 나는 순간 기억이 가물.
갸웃하며 내가 태옥 씨에게 되물어봤다가 호되게 혼났다.
산에서 연습하면 어떡하냐고.
매번 듣는 소리인데 대놓고 야단을 맞으니 기가 팍 꺾인다.
가뜩이나 무서운 하강길인데.
에이.
이 우라질 놈의 기억력.
다시 연습하고 와야지 하면서도 막상 실전에서는 텅 비는 내 머리.
선등이 아니니 백업 없다고 너무 염려 말라고.
앞사람이 줄을 잡아 준다고.
내려오고 싶어도 쉽게 잘 안 내려온다고.
괜찮다고 말해도.
내가 안 괜찮은데.
내가 가진 불안함을 행여 윤지도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태옥 씨의 이런 말에 위축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물론 내가 더 졸았겠지만.
백업 없이 모두들 무사히 하강을 완료하고.
오후 5시경.
주차장으로 하산한다.
너무 여유를 부린 건지 내가 너무 지체한 건지.
생각보다 늦은 하산이다.
정성식당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전화가 온다.
마음은 벌써 식당 에어컨 앞이다.
산에 들 때는 아래로 어서 내려가고 싶고.
산 아닌 곳에 있으면 산을 찾아야 할 것 같은 이 모순스러운 마음.
산이었던가?
바위 었던가?
사람이었던가?
내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