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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여행-고소적응

악사이 빙하 호수

by 날아라풀

2025-09-01

두통약을 먹었더니 어젯밤보다는 나아졌다.

얼굴은 부어있지만 내 상태를 본 등반대장님이 오늘은 쉬란다.

컨디션이 좋은 사람들은 코로나봉 무인산장까지 장비를 갖다 놓고 오는 일정.

나머지 사람들은 코로나 빙하 호수가 있는 곳까지 고소 적응 차 걷기로 한다.

마음 같아선 코로나봉을 가는 사람들과 동행하고 싶었지만

대장님 말씀이니 따라야지 하고 바로 수긍.


이른 아침을 먹고 배낭을 잔뜩 꾸린 코로나봉 대원들을 배웅을 한다.

베이스캠프에 남은 우리는 라첵산장 초입인 철문 아래까지 내려가 고소적응을 위한 산책을 하기로 한다.

이 구역 전문가인 수진이의 진행에 맞춰 출발 전 준비 운동을 한다.

너무 많이 내려가지는 말자는 석봉 형님의 말에 여유롭게 기념 촬영을 하며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본다.

두꺼운 점퍼를 걸친 진희는 어제보다는 나아 보인다.

춘선 언니도 수진이도 현숙 언니도 다들 표정이 밝다.

경쾌하게 웃으면서 기념 촬영을 한다.

산장으로 돌아와 가볍게 환타를 한잔씩 마시고 부엌을 정리한다.

산에서는 환타지!

코로나 빙하 호수로 올라갈 채비를 하는데 무인산장으로 출발했던 건영 형님이 돌아오셨다.

이번 원정에서 본인은 여기 까지라며 허벅지 근육 햄스트링 통증이 심해졌다고 했다.

빙하 호수 구경 가자는 말에 영화 보면서 혼자 쉬겠다고 하셔서 우리들끼리 호수로 향한다.

호수라고는 쥐꼬리만 한 것이 있다는 건영 형님의 말씀에 설마 저거 했는데 아니었다.

호수는 꽁꽁 숨겨진 곳에 턱 하니 놓여 있었다.

이 너덜 어디에 호수가 있을까 싶은 장소에 빙하 호수가 나타난다.

어떻게 저런 색깔이 있을까 싶은 신비로움

만져보고 싶은 생각에 귀퉁이를 돌아 얼음을 만져본다.

가이드는 물수제비를 뜨며 사람들을 기다린다.

석봉 형님은 이런 우리를 하염없이 내려다보며 빙하 가까이는 오지를 않는다.

건너편에서 수진이와 현숙 언니, 춘선 언니가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조금씩 기운을 차린 나와 진희도 빙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본다.

뙤약볕을 피할 공간이 없어 덥긴 했지만 언제 이런 빙하를 또 영접할지 모르니 한참을 바라보았다.

석봉 형님과 하산하는 길에 멀리 악사이 빙하 쪽에 낙석 소리에 한참을 쳐다보니 등반대인 것 같았다.

머릿수를 헤아려보니 다섯 명.

우리 등반대가 아닌가 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먼저 하산한 두 사람은 그 아래 조그마한 호수에서 쉬고 있었다고 한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낙석 소리에 한참을 석봉 형님이랑 그곳을 바라보다가 소리쳐 불러보다가 내려왔다.

나중에 희성이가 무슨 소리인지는 잘 안 들리는데 대답을 했단다.

우린 하나도 못 들었지만.

이럴 때 망원경이 없는 게 조금 아쉬웠다.

머리는 계속 묵직했지만 어제처럼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낮동안 컨디션이 좋았던 진희는 여전히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걱정이 되었다.

뭘 먹어야 기운을 차릴 텐데 원래도 잘 먹지 않는 데다 고산이라 그런지 쉽게 나아지지 않는지 많이 안타까웠다.

약 기운으로 버티는 진희가 대단해 보이면서도 안쓰러웠다.

꼭 둘이 같이 코로나봉을 올라가봤으면 하는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신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할지 모르겠다.

정상은 아니더라도 만년설을 밟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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