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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같은 독일 아저씨들

안 맞아 안 맞아

by 악어엄마

누구에게나 '인간 로또' 같은 그룹이 있다. 체내 온도를 급격히 상승시키고, 한데 모아 놓고 머리를 열어 뇌를 분석해보고 싶은 그런 부류. 독일에서 산다면 너무 자주 마주치게 되는, 안 보고 안 들으면 더 좋은, 나랑은 맞아도 너무 안 맞는. 로또 같은 그들은 바로 '독일 아저씨들'이다. 이들은 대개 확신에 가득 차 있으며, 새로운 의견을 듣기보다는 일단 반박부터 하며 기를 꺾어 놓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는 실언을 자주 하지만, 자기들끼리 굳건히 실드를 쳐주기 때문에 인간 갱생이 어렵다. 이러한 경험은 비단 사적인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독일 사회의 공적 영역, 특히 공영방송 시스템에서 이와 유사한 기질이 조직적인 차원에서 발현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두 가지 사건, 2021년 바이에른 3(Bayern 3)의 방탄소년단(BTS) 인종차별 발언 논란과 2025년 RBB(Rundfunk Berlin-Brandenburg) 방송국의 중국계 인플루엔서 Sisi Chen와의 개고기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독일 아저씨'적 기질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저혈압약 대신 읽어도 좋다.




1. "바이러스 같은 BTS"


2021년 2월,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다. 라디오 바이에른 3의 진행자이자 코미디언인 마티아스 마투쉬크(Matthias Matuschik)가 방탄소년단의 콜드플레이 'Fix You' 커버곡에 대해 언급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방탄소년단의 커버를 "신성모독"이라 폄하하며, BTS를 "곧 백신이 나오길 바라는 끔찍한 바이러스"에 비유하는 명백한 인종차별적 발언을 내뱉었다. 인종차별이야 종특이니 그렇다 치고, 취향도 참 정말 독일 아저씨스럽다. 콜드플레이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신성모독이란 말을 쓰는지 모르겠다. 웃기지도 않다. 아저씨들이나 콜드플레이를 신성시하겠지. 어디 감히 한국 사람들이 독일 아저씨가 좋아하는 대단한 고급취향을 넘보냐고 착각하고 있겠지.

Screenshot 2025-09-03 112210.png 게다가 너무 독일아저씨답게 생겼다

이 발언 이후 전 세계 팬들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독일 공영 방송국 바이에른 3은 책임을 인정하기보다, 마투쉬크의 발언이 "아이러니하고 과장된" 것이며 (광적인) "BTS 팬"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마투쉬크가 13년 동안 진행했던 라디오 쇼가 폐지되기는 했지만, 방송국 측은 논란과는 무관한 "오랜 기간 논의되어 온 편성 개편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더욱 열받는 사실은 독일 아저씨가 잘리긴커녕 '편집자' 신분으로 잘 살고 있었다는 거다. 이 글을 쓰기 위해 확인했더니 2022년 중반에는 'Die Nacht'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슬쩍 복귀했다.


2. 그리운 개고기


역시 공영방송인 RBB(Rundfunk Berlin-Brandenburg) '라디오 아인스(Radio Eins)'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또 다른 '독일 아저씨'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구정을 맞아 중국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독일 아저씨는 오스트리아 출신 중국계 푸드 블로거 시시 첸(Sissi Chen)에게 "개를 먹는 것을 그리워하는지"라는 질문을 던졌다. 첸은 "저는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어요"라고 답했고, (개)저씨는 질문을 반복했다. 이후 첸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에서 "거리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는 것도 아프지만, 공개적인 공간에서 개를 먹는 걸 그리워하는지 질문받을 줄은 몰랐다"며 눈물을 흘렸다.


45분 정도에 sisi chen이 개고기 인터뷰를 회상하는 내용이 나온다

논란이 확산되자 라디오 아인스 측은 해당 방송을 온라인에서 삭제했다. 방송국 책임자가 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부적절하게 표현했다"라고 사과했다. 하지만, 방송국은 인종차별적이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고, 책임을 지지 않았으며, 사과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 직원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어떤 조치나 결과도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독일 아저씨'라고 부른 문화적 우월감이 그것도 공공 기관의 심장부에 들어가면 이렇게 개판이 된다. 마투쉬크의 조용한 복귀와 RBB의 미흡한 (개)사과는 (개)저씨의 영향력이 독일에 얼마나 아직도 뿌리 깊은지 증명한다.


독일 사는 내가 매달 18.36유로씩 내는 수신료가 이 (개)저씨들의 월급으로 들어갔다니 정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논란에 직면했을 때 진정한 사과와 성찰보다는,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너무 뻔하다. 투명성? 자기 성찰? "개"사과만 받는다. 이들의 무례함은 표현의 자유라고 공영 방송국이 알아서 실드를 쳐준다.


독일 사는 한국 아줌마는 (개)저씨들의 확신과 고집을 꺾고 싶다. 섣부른 PC 무용론을 설파하는 이들에게도 고하고 싶다. 진짜 (개)싸움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사진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otto_Baden-W%C3%BCrttemberg_Station_im_EDEKA_E-Center_D%C3%BCrr_Tauberbischofshei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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