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단 내려가는 기차를 예매해야 한다. 그래 내려가야지 몇 시에? 나는 언제 가야 하는 거지? 병원이 구포역과 가까워 기차 시간대가 많이 없다. 기차를 예매하고서도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아 술이 덜 깼나 보다. 그래 일단 하다만 화장부터 마무리하자.
나는 정말 나 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외할아버지, 어쩌다 저 같은 손녀를 두셨어요. 슬프다거나 혹은 현실감각이 아직 없다거나- 뭐 이런 감정이 아니었다.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화장을 마무리하며, 평소처럼 주식 유튜브를 bgm처럼 틀었다. 지독한 년.
짐은 뭘 싸야 할지 몰라서 그냥 캐리어에 아무거나 던져 넣었다. 운동복도 하나 챙겼다. 뛰고 싶어 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내려가는 오늘은 정갈한 옷을 입어야겠다는 거였다. 그렇게 내가 아끼는 검은색 투피스를 입고, 캐리어를 끌고, 나는 그렇게 서울역으로 향했다.
#3
지하철 안에서 내 신발이 보였다. 허름한 뮬 슬리퍼. 이번 여름 주구장창 신었더니 많이 낡았다. 내가 왜 이 신발을 신고 왔지? 구두 신고 올 걸. 이 신발로 할아버지를 보러 갈 수 없는데. 기차시간도 12시 출발. 지금은 9시 반이었다. 왜 이렇게 일찍 나왔지. 아 모르겠다.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난다.
그냥. 그냥 서울역을 가자.
#4
‘신발을 사야겠다’ 삼각지역쯤 왔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새 신발을 신어야겠어. 사람은 신발이 중요한 법인데, 할아버지를 보러 이렇게 낡은 신발을 신을 수는 없지. 그리고 4호선 열차는 서울역에 도착했다.
오전 10시였다. 지하철에서 내리자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나 어디로 가야 하지. KTX 역사가 어디였더라.“
오전 10시의 서울역 지하철역은 직장인과 외국인 관광객이 섞여 붐볐다. 나는 그 사이에서 외딴섬처럼 홀로 서 있었다.
그래 일단 움직이자. 역사로 가야 한다. 그리고 KTX와 연결된 백화점에서 신발을 사면되겠다. 그러려고 일찍 출발했던가. 모르겠다. 하지만 일정이 잘 맞는다.
이기적인 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본인 신발이나 사는 생각을 하고 있다. 불쌍한 우리 할아버지. 아 진짜 가셨구나 진짜. 갑자기 눈물이 넘쳤다. 슬픈가? 모르겠다. 그냥 걸으며 울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셋업을 입고 캐리어를 끌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나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흠칫 놀랐겠으나, 나는 그냥 걸었다.
일단, 기차를 타러 가야 한다.
#5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ZARA가 있었다. ‘맞아 여기 자라 있었지’. 캐리어를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홀린듯이 가방고 신발을 샀다. 입은 옷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내 꼴이 우스웠다.
아직 기차를 타기 까지는 40분이 넘게 남았다. ‘노트… 노트와 펜을 사야겠다’. 카카오프렌즈 샵에서 손바닥만한 노트를 샀다. 편의점에서 산 펜은 뭉툭해서 별로다. 하지만 글이 필요했다. 나는 뭔가를 써야만 한다는 절박한 마음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