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쉽게 낙인찍었던 사람들은 정말로 그런 사람들이었을까?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얄팍한지, 한 번은 옆자리 선배를 미워했다. 그는 9살 많은 남자선배로, 같이 일하는 사이도 아니고, 이야기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으며,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이라 1m도 되지 않는 거리임에도 단지 고개를 까딱하며 목례만 하는 사이다. 물리적 거리 외에는 단 하나도 가까운 것이 없는데, 왜 말한마디 해보지 않은 선배가 그렇게 거슬렸을까?
선배는 같이 일하는 부장님과 사이가 안 좋았다. “혹시 이 일 좀 해줄 수 있어? 다음 주 미팅 때 필요해서…” 부장님은 늘 공손하다 못해 빌듯이 일을 시켰고, 선배는 그때마다 제대로 대꾸도 안 하고 싸늘한 표정으로 ”뭐요 이거 어떻게 하라고요 “라는 식으로 말했다. 누가 누구를 싫어하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위에서 시키는 모든 일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는 논리적으로 싫다고 하는 게 아니라 늘 기분 나쁘다는 태도만 내비치는 것이었다. ‘사람이 덜됐네. 태도도 안 좋고 부정적이고-’ 그렇게 어울리면 안 되는 사람으로 도장을 찍듯 너무나 쉽게 분류하고선, 나의 에너지를 0.1%도 쏟지 않기로 결심했다.
너무 잘 드는 칼의 문제점이 뭐냐면, 베이기 쉽다는 것이다. 너무 편리한 도구의 문제점이 뭐냐면, 의지해 버리기 쉽다는 것이다. 너무 똑똑한 머리의 문제가 뭐냐면,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인 줄 안다는 것이다. 늘 내 직감을 믿었다. 감각이 예민하고, 사람을 파악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게 너무 빠르게 결정이 난다는 거고, 대부분 맞기 때문에 틀릴 거라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쉽게 낙인찍었던 사람들은 정말로 그런 사람들이었을까?
심리학적으로 이런 성향 또한 정교하게 만들어진 방어기제라고 한다. 예민한 사람은 상대방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처를 받기 쉽다. 누군가는 상처받은 적 없는 것처럼 사랑하라 하지만, 트라우마라는 것은 잊히지 않는 것이어서 한번 맞은 곳은 또다시 맞기 싫어 한껏 웅크린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상처받지 않을지 머릿속으로 계산한다. 그 계산값을 나는 섬세한 감각, 통찰 또는 관록으로 부르곤 한다.
“10년간 말이야, 그 사람 밑에서 그렇게 일했어. 시키는 걸 다 해주고,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한 채로 도구처럼 살았어.”
선배는 부장님이 자기 험담까지 하고 다닌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표정으로 우리 팀 리더를 찾아갔다고 했다. 같이 일하고 싶다고, 나 좀 꺼내달라고. 그렇게 그는 나와 같이 일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것은, 선배는 생각보다 잘 웃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후배들에게도 배울 점을 찾는 태도를 가진 좋은 어른이라는 것.
단 한 번의 주말 출장이었다. 5명이서 간 출장에서 나와 선배만 밥 먹기 귀찮다며 한 시간 동안 둘이 남겨졌을 뿐이었다. 제네시스부터 롤스로이스까지 차 얘기를 하다, 인생이야기로 넘어갔을 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렇게 쉽게 낙인찍어버린 선배의 부정적인 태도 밑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만약 선배가 우리 팀으로 오지 않았다면, 함께 출장을 가지 않았다면, 하필 둘만 밥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 선배를 이해하는 순간이 왔을까?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때로는 시간의 깊이가 아니라 사소한 우연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