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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마카다미아 같은 나도 사랑해 줘요

by 시루

언젠가 친한 선배가 명작이라면서 추천했던 만화가 있다. 여자주인공이 너무 이상형이라며 찬양하는 모습에 기대를 했는데, 만화를 보는 내내 그 정도의 매력을 가진 캐릭터인지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호감이 가는 캐릭터였다. 열심히 일하고,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줄 알며, 종종 위태로워 보여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하지만 그런 캐릭터는 흔하지 않나. 대체 남자선배의 마음에 불을 지핀 그 포인트는 무엇인 걸까?



“책임님은 멋있는 사람이에요. MBA에 가도 멋있지만, 안 가도 멋있고 좋은 사람이에요. “

“고맙습니다. 책임님 같은 분이 계신 덕에 힘든 시기 잘 버티어냈습니다. “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전부 스크랩해서 필사를 해놓는데, 오늘 문득 과거의 글들을 살피다 저 두 문장을 발견했다. 만화의 많고 많은 대사 중, 왜 저렇게 평범한 두 문장을 기록해 놓았던 걸까.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더 알 수 없는 것은, 저 말에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사랑과 존중을 받는다는 기분이었다.



만화 속의 그녀는 제대로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담백한 문장에 상대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진심으로 들어가 있다. 깊은 문장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짧고 간결할수록 효과는 배가된다. 에리히 프롬은 사람의 가장 큰 결핍을 ‘고독‘이라 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가치 있어, 그러니 함께해 줘 ‘. 하지만 좀 더 깊은 내면의 욕구를 살펴보면, 우리는 어떤 성취를 함으로써 인정받는 것이 아닌 그냥 나로서 사랑받고 싶을 뿐이다. 아무것도 아닌 나. 정말 오롯이 몸뚱아리 하나의 나. 너 이런 나라도 함께해 줄 거야?



하지만 내가 인정받기 위해 멋있어질수록, 순수한 나 자신으로써 사랑받기는 더 어렵다. 그것이 현대인 아니 인류의 아이러니다.



나의 연인들은 늘 내 겉의 어떤 면모를 보고 다가왔다. 겉모습이나 이미지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그런 식으로 호감을 가지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결국은 깊숙한 내면의- 때로는 스스로 싫어하기도 혹은 숨기고 싶어 하기도 한 어떤 모습 또한 사랑받고 싶을 뿐이었다. 나의 예민함에 “너 원래 그렇잖아, 새삼”이라고 말하는 내 친구들은 늘 나에게 진짜 사랑을 주는데, 왜 연인은 늘 떠나갔나. 혹은 내가 연인에게는 멋없음을 보여주기 더 어려운 사람이라 그런 걸까. 요즘 하는 고뇌는 결론이 다 이런 식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먼저 누군가를 더 사랑해야겠다 생각했다. 멋있어 보이려고 애쓰는-겉껍질이 견고한 걸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나니까, 그럴수록 내가 먼저 상대방을 그 자체로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지. 그러면 내 마카다미아 같은 껍질도 쉽게 똑딱 열고는, 속알맹이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생길 거라 믿으며 말이다.



마카다미아 같은 나도 사랑해 줘요. 껍질만 벗겨내면 속은 아주 고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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