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혀에는 미뢰가 있어 다섯가지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신 맛 쓴 맛 단 맛 짠 맛 거기에 감칠맛까지. 그런데 나는 결혼하고 시어머니의 김치를 맛본 후 세상에는 '시원한 맛'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겨자잎의 알싸함도 아니고 적당히 익은 김치가 차가운 온도를 만나 만들어낸 시원함도 아니었다. 배추나 열무같은 주재료의 맛을 넘지 않으며, 고춧가루 등 양념을 푼 물이 재료를 절였던 소금기를 빨아들인, 기분좋은 가벼움이 남는 시원함이었다.
시어머니는 요리를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칠십 여년을 살아오며 오십년 넘게 요리를 해왔을 텐데 물 흐르듯 움직이는 모습을 본 일이 없다. 요리하는 부엌에서 으레 울려퍼지는 칼이 도마를 내리치는 소리도 엉성했다. 툭 툭 툭 딱 딱 딱, 그러나 투박했던 소리는 두께를 달리해 씹는 맛이 좋은 문어 숙회를 만들어냈고 오종종한 쪽파 고명도 만들어냈다. 그녀는 요리를 매번, 처음하듯 신경써서 했다. 아마 가장 자주 만들었을 김치 찌개를 할 때도 습관적인 과정은 하나도 없었다. 삭삭 김치를 썰어 볶다가 순서를 지켜 야채를 하나씩 넣었고 충분히 푹 익혔다. 아무리 자주 음식을 해도 하다가 다칠 수 있으니까, 대충했다가 음식의 맛이 덜 날 수 있으니까. - 라고 그 이유를 말하실 것만 같았다.
"오늘은 이걸 좀 달리 해 봤는데 어떠니? 얼마 있으면 도다리가 제철이니 도다리를 만나면 쑥국을 끓여야겠구나."라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어린아이같은 미소가 보였다. 매일 매일 하는 요리도 그녀에겐 매일 달랐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요리는 항상 맛이 좋았다.
우리는 사이가 좋거나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나의 기억 속에 나는 그녀를 열렬히 사랑도 했으며 큰 배신감도 느껴보았고 지금도 가끔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마치 고부지간이 아니라 헤어진 연인만큼이나 얼룩덜룩한 사이인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먼저 얼룩덜룩한 부분들에 대해선 입에 올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느껴지고 나는 그런 모습을 가끔 처연하다고도 느끼며 불편한 동행을 지속하는 중이다.
이런 여러 감정들이 쌓이고 때로 도망가고 싶을 만큼 마음이 멀어졌을 때에도 나의 마음을 한층 잔잔하게 만들어준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녀의 수다가 아니라 바로 그 요리들이었다. 가족에게 내는 요리라 특별할 것이 없었다. 물김치의 시원함, 된장찌개의 매운 맛, 갈치구이의 바삭거림 그리고 때로 이 모두를 한꺼번에 먹는 풍성함으로, 마음은 한결 누그러지고 여유로와졌다.
한동안 그녀의 요리를 맛볼 수 없었다. 3년 전 시아버지가 급작스런 뇌출혈로 별세하신 후, 꼼꼼하고 살뜰하던 그녀는 간 데 없었고 당신 혼자 먹을 음식도 챙기지 못하셨다. 입으로는 아들에게 괜찮다고, 엄마 힘 내겠다고 하셨지만 그 집에 가면 시간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아무도 없는 주중의 시간들을 혼자서 어떻게 버텨낼까. 평생 의지하던 사람이 사라진 공간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까. 그녀가 적응하길 바라는 건 너무 잔인한 건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한 편으로, 주말에 뵈러 가면 두 끼를 배달로 때우고 아이에게 줄 음식도 마땅치않은 것에 부담이 느껴지곤 했다.
이제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햇수로 2년이 겨우 지나갔다. 곧 부러질 것만 같았던 어머님은 매일 성당에 나가시는 덕분인지 힘 내겠다고 줄곧 다짐하신 덕분인지 조금은 나아지신 걸로 보인다. 집 마당에는 이곳 저곳에서 얻어온 화분들이 시들거리는 것 없이 소담스럽게 피어있으며 (어머님이 매일 식물에 말을 거신다고 한다.), 관리하기 힘든 노후주택이지만 혼자 힘으로 블라인드도 사다 달으시고, 작은 어머니 큰 어머니와 여행도 다녀오셨다.(그 여행은 명절이 지나고 남은 음식들을 저마다 싸오기로 하여 숙소에서 요리해 먹는 여행이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전북을 다녀오시며 경비가 10만원대였나.. 심지어 여행지에서 표고를 사셔서는 숙소가 뜨끈하다고 표고버섯을 잔뜩 말려오셨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얼마 전 우리에게 김치찌개를 끓여주셨다. 더 이상 김치를 직접 담그지 않지만, 숙모의 김치에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아낌없이 넣어 고소하고 푸근하게 끓인, 약간 싱거운 듯하면서 질리지가 않는 맛이었다. 밥 한 그릇이 아쉽게 훌훌 넘어갔다. 그리고 알았다. 내 마음 속에는 아직도, 시댁에 대한 의무감이나 인간적인 미운 감정들 외에 저 사람에 대한 어떤 애정이 남아있다는 걸. 그리고 나 역시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걸. 맛있게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기분이 개운했다.
오늘 이 글에 요리 이야기를 많이 해놓고 우리 어머님이 어떤 방식으로 요리를 하는지 자세한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 멸치볶음 레시피 하나를 공유한다. 그녀가 하는 모습을 유심히 몇 번 보고 따라해보니 괜찮은 맛이 났었다.
<멸치볶음>
1. 기름을 충분히 두르고 채썬 파, 편마늘을 넣은 뒤 중약불로 오래 두어 파기름을 낸다. (다진 마늘로 대체 가능. 파기름을 내면 멸치의 비린 맛을 잡을 수 있다.)
2. 파기름을 한김 식힌다.(너무 뜨거울 때 멸치를 넣으면 타는 멸치가 생긴다.) 불순물이 섞여있는지 샅샅이 골라낸 제일 작은 사이즈의 멸치를 볶는다. 약불로 천천히, 주걱 두 개로 아래 위 뒤섞어가며, 하얬던 멸치가 투명해지도록 볶는다.
3. 설탕을 넣으면 과자처럼 되기 때문에 올리고당이나 꿀을 넣는데, 꿀을 선호한다. 충분히 둘러주어도 된다. 먹어보고 더 달게 하고 싶으면 더 둘러도 된다.
4. 멸치가 투명하게 다 익고 간이 맞게 되었으면 불을 끄고 참기름, 참깨를 두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