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싣고 온 발걸음
공동체 다리 너머는 시내 중심부였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띄엄띄엄 보이던 고층건물들은 도로를 따라 줄을 서 있었고, 좁은 길을 따라 다리 위에 줄을 지어 있던 자가용의 행렬은 각자 갈 길을 찾아 골목골목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태양은 자신의 빛을 다 살라먹은 듯이 커다란 그림자만을 그 위에 드리웠다. 그리고 그 어둠을 걷으러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였다.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할 때가 다가왔다. 그 전에,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크라스나야르스크의 모습을 눈 안에 담아두고 싶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거대한 시계탑이었다. 어떤 건물이냐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으니, 빅벤이란다. 그 영국에 있는 빅벤을 이야기하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그게 맞다고 한다. 생각보다는 많이 아담한 사이즈의 이 건축물을 보며, 짧게 쓴 입맛을 다셨다. 실제로 영국에서 빅벤을 본적은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탑 앞 광장에는 곧 올 크리스마스를 미리 대비하듯 거대한 트리가 세워져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12월 25일이 성탄절이지만,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정교를 기준으로 하기에 1월 7일이 성탄절이 된다. 그리고 성탄절이 되기 한참 전부터 큰 광장에는 트리를 세우고, 추운 곳에서는 얼음조각들을 세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 곳에서도 1월1일에는 이 트리를 둘러싸고 신년을 축하하는 사람들이 구름이 피어날 정도로 폭죽을 터트리고 있을 것이다.
퇴근 시간에 맞추어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발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도, 반대편이 보일 정도로 투명한 얼음조각도 이미 날이 추워질 때마다 질리도록 봐온 풍경일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에는 감상에 젖을 수가 없다. 나 역시 그랬다. 이르쿠츠크에서 몇 년째 보아 왔던 풍경이었다. 그러나 눈이 녹지 않는 곳이라고 하여, 그것이 모두 같은 풍경은 아니었다. 모두가 움직이고 있었다. 자동차, 사람들, 시계바늘. 다른 도시에서 다른 기억을 찾는, 이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검은 머리의 이방인 혼자, 멍하니 서서 다른 겨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의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