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싣고 온 발걸음
시계는 이미 10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영락 없는 새벽이었다. 하지만 가게들은 이미 모두 문을 열고 있었다. 길거리 이곳 저곳에 위치한 요리집에서는 아침 준비를 하느라 풍겨내는 맛있는 연기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 가운데를 걷자니, 어제 긴장감 속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뱃가죽이 그제사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일단 ‘식당’ 이라고 쓰인 곳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메뉴는 들어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러시아에도 있는 서브웨이 및 배스킨라빈스. 배고파도 이건 걸렀다>
<날이 밝은 뒤 다시 찍은 음식점 외관. 가게 이름은 ‘코끼리를 먹는다’>
외관에서 보였던 것처럼, 러시아 요리 외에는 없었다. 어제 그렇게 밤늦게까지 고생한 걸 생각하니, 왠지 기름진 게 당겼다. 사워 크림을 넣어 먹는 러시아 전통 수프 보르쉬와, 중앙아시아의 볶음밥요리인 쁠롭을 시켰다. 보통 학교 식당에서 먹을 때는 너무 기름져서 잘 먹지 않는 메뉴들이었는데, 나오자마자 게눈 감추듯이 사라져 버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 식당이 요리를 잘해서 그랬는지, 추위와 피로에 떨며 배고파서 그랬는지, 아니면 여행만 나가면 모두 맛있게 느껴져서 그런 거였는지.
<왼쪽이 쁠롭, 오른쪽이 보르쉬>
뭐라도 들어가니까 다시 움직일 기력이 차올랐다. 다시 크라스나야르스크 역으로 돌아가, 계획했던 대로 예배당을 가기 위한 버스에 올랐다. 역이 버스의 시발점인데, 버스 노선도를 보아 하니 종점까지 가야할 듯 싶었다. 꽤나 긴 여정이 될 것을 각오하고서는 창 밖의 경치를 감상하였다.
추위에 가라앉은 도시의 공기는 아침햇살을 석양처럼 보이게 하였다. 햇빛이 구름 사이로 어슴푸레 솟아 오르는 만큼, 버스도 시 외곽의 판자집촌 사이를 올라갔다. 어제 정신없이 행선지를 결정했을 당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예배당은 크라스나야르스크 시내에서 가장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단지 관광지로 표시된 곳이 한 군데 있었고, 그 쪽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인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었을 뿐이었다. 생각지도 않게 크라스나야르스크 시의 전경을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