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싣고 온 발걸음
어느 새 버스는 종점에 다다랐다. 또 다른 시발점인 이 곳에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예배당에 갈 수 있다는 기사의 이야기에, 차에서 내려 주위를 좀 둘러보기로 하였다. 종점은 느긋해 보였다. 어제 보았던 지브노고르스크 정류장의 풍경이 듬성듬성 나무집들이 산 위로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에 그저 사람과 차가 보이지 않는 고즈넉한 시골의 풍경이었다면, 이곳에서는 도시의 흐름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없이, 집 한채,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싼 색색의 버스들. 한 대가 도착하면 한 대가 빠져나간다. 마치 이파리에 물방울이 고이면 고개를 숙이며 땅으로 길을 내 주듯이, 아무도 싣지 않은 버스들은 그렇게 자신의 길을 따라갔다.
자리를 골라 잡을 수 있는 것은 첫 손님의 특권이다. 가장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좋은 경치를 구경할 준비를 마쳤다. 버스기사는 시발점에서 탄 첫 손님이 이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동양인이라는 것에 놀란 듯,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물론 어디에서 왔냐, 한국이라면 북한이냐 등 언제나 묻는 질문들이었지만. 그 외에는 딱히 물어볼 것이 없었던 버스기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크라스나야르스크에 뭣하러 왔냐고 물었다. 도시를 둘러보러 왔다는 말에 여기에는 뭐 볼 게 없다는, 현지 사람들이 자기네 도시를 평할 때 언제나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10루블짜리에 크라스나야르스크 댐, 그런거 다 별거 없다고 하면서. 이 아저씨를 어저께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버스는 얼마 달리지 않아 예배당에 도착했다. 정확하게는 예배당 외곽에 내렸고, 약 10분정도를 걸어들어가야 했지만. 가는 길은 오늘 아침까지 내렸던 눈으로 다시 새하얗게 포장이 되어 있었고, 아무도 다니지 않은 듯 했다.
들었던 것처럼 예배당이 도시에서 가장 높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주변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주변 시야가 탁 트인 것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예배당 주변에는 어떤 건물도 없었다. 오로지 구릉 위에, 첨탑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시야 아래 아까 지나왔던 도심 속 건물들이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작아 보인다. 마치 대도시 마천루 꼭대기에 서 있는 것 같이. 벽면에는 러시아 정교의 가르침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그 안에는 작으나마 정교 교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한 수녀님이 이 외진 곳을 방문하는 신도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를 물어보았지만, 안 된다고 하였다. 아쉬우나마 향을 태우고 기도를 올려, 퇴청의 인사를 올렸다.
아까까지 구름이 덮여 있던 하늘은, 절반 정도 개어 있었다. 예배당을 돌며 하늘을 바라보는 풍경을 찍자, 마치 다른 날 찍은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 이득을 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