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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ble May 03. 2018

러시아 여행 - 크라스나야르스크.13

이야기를 싣고 온 발걸음

 올라온 반대편을 구경하러 예배당 너머로 내려가 보니, 무척이나 반가운 물건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105mm 견인곡사포. 





 필자는 강원도 고성에서 105mm포병으로 복무했었다. 겨울만 되면 눈이 발목까지는 예사요 무릎까지 쌓이는 일도 잦아 제설작전때마다 여기가 무슨 시베리아 한복판이냐고 투덜댔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벌판 위에, 그 때 만졌던 쇠덩이가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여기는 포상도 아니고, 딱히 방열을 할 필요도 없었다. 몸은 가만히 있었지만, 다만 기억만이 그 때로 잠시 돌아갔다. 경치를 구경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2년의 세월을 되짚어 보았다.





 잠시간의 망중한에 빠져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 새 정오가 훌쩍 지나 버렸다. 이미 돌아갈 기차 시간은 정해져 있는 상황이었고, 조금 서둘러야 둘러보기로 했던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던가, 시내에서 보지 못한 곳들을 모두 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발을 재촉해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가, 하산하는 버스를 잡아탔다.









 앞서 말했던 꺼지지 않는 불꽃은 러시아 모든 도시에 위치해 있다. 2차 세계대전시 싸웠던 러시아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물인데, 크라스나야르스크에 위치해 있는 꺼지지 않는 불꽃은 그 취지에 걸맞게도 국립묘지에 위치해 있다. 이르쿠츠크에서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앙가라 강변에 위치해 있어 일종의 관광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 곳의 꺼지지 않는 불꽃은 무덤 입구를 지키며 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 내릴 때, 홀로 손을 흔들어 반기듯 너울거리는 그 불꽃의 모습이 새삼 외로워 보여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묘지의 모습은 조금 을씨년스러웠다. 죽음을 모아둔 장소가 어디든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묘역을 철창으로 구분해 놓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 갇혀 있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짧게 둘러 보고서는 대로변에 위치해 있는 조형물들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장병들을 추모하는 노래 가사를 담은 비석, 전쟁에 쓰였던 탱크들, 그리고 총알 앞에 스러져간 장병 그대를의 모습을 담은 조형물들이 묘지 외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비록 다른 나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반세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되새기니 절로 마음이 숙연해 졌다. 다시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돌아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러시아 장병들에게 영광을. 그대들의 승리의 순간은 영원하리라 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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