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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ble May 10. 2018

러시아 여행 - 크라스나야르스크.15

이야기를 싣고 온 발걸음


 러시아라고 다른 나라 사람과 유별난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날이 추워질 수록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아무리 한 겨울이라지만, 공원 에는 사람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방금 지나왔던 혁명 광장에도 두어 명 정도 지나가는 인파는 있었다. 하지만, 이 공원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빗자루질이 잘 된 보도블럭만이, 이 곳에 청소부는 있다는 사실을 말해줄 뿐이었다.

 상록수로 구성된 중앙 보도를 지나서야, 왜 이 곳에 사람이 없는지 얼추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곳에 사람이 온 것은 5년 만이군’ 라고 말하는 듯한 ...곰? ...너구리?






 여기는 일반적인 뜻의 공원이 아니었다. 이름만 ‘중앙 공원’이지, 실상은 놀이동산이었다. 아마도 이 곳은 놀이기구들은 계절이 계절인지라 문을 닫아 놓고, 일반 공원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는 듯 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어린이 대공원도 놀이기구들은 있다. 물론 그런 느낌이겠거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계절이 문제였다. 지금 들어갔다가는 뭘 보기도 전에 몸부터 얼어버릴 것 같은 귀신의 집, 한 번 올라갔다 떨어지면 얼굴가죽이 남아나지 않을 듯한 자이로드롭, 더 이상 열리지 않을 천막을 쳐 놓은 범퍼카까지. 공원 가운데로 죽 펼쳐진 대로 양 옆으로는 운행을 중단한 각종 놀이기구와, 그와 함께 문닫은 매표소들이 즐비했다. 마치 망한 테마파크처럼. 하지만, 그 아무도 없는 공원 중앙에, 굉음을 울리며 홀로 외로이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이가 있었다. 그것은 공원 끝자락에 위치한 대관람차였다.





 사실 내 눈을 믿지 않았다. 이런 추위에 무슨 놀이기구를 움직인단 말인가. 하지만, 공원 중앙에 들어서 대관람차가 시야에 보일 때 부터 이 거대한 수레바퀴는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인지부조화로 인해 움직이지 않는다고 믿고 싶었을 뿐이었다.  

 궁금했다. 도대체 저건 왜 움직이는 걸까. 아니, 타는 사람은 있나? 무엇엔가 홀린 듯이, 대관람차로 발걸음이 향해졌다. 정말 느닷없이 저 위로 올라가고 싶어졌다. 높은 곳에 올라서, 또 다른 시선으로 크라스나야르스크 시내를 카메라로 담을 생각을 하니, 저 을씨년스러운 쇳덩이가 왠지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참으로 좋은 장소로 보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 공원 안에서 처음으로 움직이는 생명체를 찾았다. 매표소 안에 아저씨는 이거 지금 타도 되냐는 첫 번째 질문과, 성인 1명이 얼마냐는 두 번째 질문에 별 미친 놈 다 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표는 없냐고 물어보았으나, 그런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아무도 없는데, 괜히 인원수를 체크할 필요는 없다는 건지, 아니면 그냥 겨울에는 따로 표 체크를 하지 않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문이 닫히고, 관람차는 천천히 하늘 높이 올라갔다.

 거대한 쳇바퀴는 돌아가고, 그럴수록 나의 떨림은 갈수록 커져 갔다.

 그 어떤 놀이기구도 줄 수 없는 공포와 함께.







 먼저, 지금 보시다시피 이 대관람차에는 창문 따위는 없었다. 시베리아의 삭풍은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그 위세를 더해 갔다. 그 말은 무엇인가 하면, 관람차 하나하나가 떨림이 굉장히 심했다는 말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날이 추우니 이음매에 바르는 윤활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마치 금세라도 떨어질 마냥 굉장한 소리로 삐걱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심한 문제는 문짝이었다. 문짝에 달린 시건장치는 실팍한 쇠사슬에 매달린 걸쇠 하나 뿐이었다. 왠만큼 갸냘픈 아가씨가 조금만 삐긋해도 바로 튿어져 나갈듯한 그런 강도의 걸쇠가. 


 사진? 카메라를 잡은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내 오른손은 놓치면 죽을세라 문 반대쪽의 기둥을 단단히 틀어잡고 있었고, 위에 있는 사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떨림이 너무 심해 쓸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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