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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ble Jul 29. 2018

2.독도, 더 이상 외롭지 않을 - 울릉도에 서다

이야기를 싣고 온 발걸음

 울릉도에 발을 내딛었으니, 이 섬에 무엇이 있는 지를 둘러 보는 것은 당연한 다음 순서였다. 하지만 다음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미 같은 배로 이동하는 한 시간 뒤의 독도행이 예약되어 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울릉도 여행을 계획하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독도 관광을 같이 계획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어차피 울릉도에서 가는 배 이외에 독도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지금 한번에 가지 않으면 나중에 언제 시간을 내어 이 곳에 온단 말인가.


 여행 계획을 세울 때, 강릉에서 출발하는, 방금까지 타고 왔던 그 배가 그대로 한 시간 반 뒤 독도 왕복선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 때는 일단 아무 생각 없이 예약을 해 두었다. 어차피 독도나 울릉도나, 악천후로 결항은 100% 환불이 가능하다고 하였고, 다른 날 또 항구로 돌아오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돈 문제는 어차피 두 번째였다.


 울릉도도 배로 들어가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고 하였지만, 독도는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이전에 정보를 찾아서 알고 있었다. 파도가 높으면 아예 배가 뜨지 못하는 일도 부지기수라 하였다. 배가 뜬다 하더라도 기상이 좋지 않으면 비싼 돈 주고 독도 근방을 그냥 돌고만 오는 유람선이 된다 하였다. 독도에 정박할 수 있는 날은 1년에 60일이 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차라리 배가 뜨지 않는 게 낫지, 발도 디디지 못한 채로 ‘독도에 갔다 왔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여행 전부터 바랐다. 날씨가 좋기를. 좋지 않을 거라면 어중간하기 보다는 차라리 더위를 날려 버릴 정도의 소나기라도 쏟아지기를.


 방금 전에 말했듯이, 오늘은 이미 특별한 날이었다. 모든 걱정 따위 날려 버릴 정도의 햇빛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그런 특별한 날.


 그리고, 특별한 날에 손님을 맞는 대한민국의 동쪽 끝자락은 아무 말 없이 그 문을 열었다.









 한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바닷물의 빛깔. 본을 떠 놓고 그대로 베껴 깎아 보라고 해도 할 수 없을 듯한 수많은 기암(奇巖)들.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 마다 고개를 돌리면 다른 풍경이 들어왔다. 눈으로 보이는 모습을 모두 담기에도 시간은 너무나 부족했다. 이 곳에서 허락된 시간은 오직 20분이었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 모두가 모자란 시간은 속도로 대체하려 한 듯, 혼이 나간 듯이 핸드폰과 셀카봉의 촬영 버튼을 눌러댔다. 나 역시 그러했다.







 누군가는 그저 크고 작은 몇 개의 바위들이라 하였다. 누군가는 갈매기들의 쉼터라 하였다.





 또 누군가는 역사에 비추어, 피로 지켜낸 최후의 보루라 하였다. 그 모두가 맞는 말이리라. 하지만 지금은 절벽 끝에 걸터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도 더운 햇볕에 구름으로 모자를 쓰고 아무 말 없이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독도는 작다. 만일 해안가가 있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손 치더라도 20분도 채 걸리지 않을 크기였다. 하지만 놀라웠다. 독도는 이 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그야말로 훌륭한 자연경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동쪽으로 더 갈 수 없는 마지막 장소라는 것 역시, 이 곳을 아름답게 하는 한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뿐이었다면, 이렇게 까지 많은 이들이 경탄을 내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보기 힘든 절경에 더해, 외딴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다시 찾기 힘들다는 그 특수성이 모두의 매료시킨 것이리라.






 돌아가는 길에는 독도수비대의 경례를 받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의연했다. 이렇게 배가 떠나면 이들은 또 다시 독도와 함께 더 먼 동쪽을 바라볼 것이다. 독도의 독 자는 외로울 獨자다. 주변에 수평선밖에 없는 바다 위에 놓여 있는 섬은 분명 그래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이 곳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고, 이렇게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독도는 더 이상 그 이름처럼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단지 아름다웠을 뿐이다.


 아름다움의 잔향은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그래서였을까, 시야에서 섬의 남은 자락이 떨어져 나갈 때 까지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배의 창문은 전혀 열 수 없었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갑판으로는 전혀 나갈 수 없었다. 여운을 즐기지 못한 아쉬움을 마음 속으로 갈무리하며, 그 안에 있던 기대감을 다시 꺼내 들었다. 곧 이 배가 다시 돌아갈 울릉도에 대한 기대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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