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싣고 온 발걸음
관음도에서 나온 우리는, 어디에서 해수욕을 즐겨야 할지를 고민하며 도로를 누볐다. 사실 ‘어디가 좋을까?’ 보다는 ‘도대체 어디서?’ 라는 질문이 맞다고 볼 수 있겠다. 보이는 곳마다 절경인 이 좋은 곳에서 도대체 어디를 거르고 어디를 선택해야 된단 말인가.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사람이 사고가 정지한다고 하였다. 차는 계속 속도를 내고 있었지만, 머리는 차고 넘치는 풍경을 주워 담는 눈을 계속 뜯어 말리고 있었다. 풍경에 할애할 시간에 갈 곳부터 선택을 해야 할 때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계속되는 색다른 자극에 별다른 선택은 하지 못했지만.
울릉도의 바다는 여행하는 내내 우리를 유혹했다. 절벽 아래쪽에도, 심지어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도동항 방파제 아래에서조차, 그 어디에도 그냥 내려다 보면 바닥 아래 어떤 고기가 사는지 훤히 보이는 바다가 울릉도다. 왠지 이 안에 들어가면 몸도 마음도 깨끗해 질 것 같은, 그런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맑은 물이 언제나 눈 앞에 있었다. 보기에는 깊어 보이지만, 파도 하나 없이 잔잔한 날. 이런 곳에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언제 들어간단 말인가.
하지만 여행을 할 때 날씨가 너무 좋은 것을 걱정하게 되는 때가 딱 하나 있다. 그것은 해변가에서 물놀이를 즐길 때다. 아무래도 햇볓에 너무 노출되게 되면 살결이 많이 그슬리게 되고, 너무 통증이 심하게 되면 다음 일정에도 지장이 있게 되니까.
울릉도의 날씨는, 어제 오늘 모두 더할 나위 없이 맑음. 햇볓을 가려 주는 구름도 한 점 보이지 않았고, 단지 태양 아래 바다와 바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건 무조건 벗겨지겠구나. 각오를 다지고서는 다시 어디로 가야할 지를 결정해 보았다.
결국 결정된 최종목적지는 울릉도의 서편에 위치한 작은 마을, 학포였다.
학포까지 오는 길에, 울릉도라는 섬이 기본적으로 얼마나 높은지를 다시금 실감하였다. 일반적으로 자동차가 올라갈 수 있는 최대경사가 법적으로 35도라고 하던데, 이곳으로 내려오는 길은 체감상으로는 거의 수직에 가까웠다. 물론 울릉도의 서쪽지대가 도로를 놓기에 그닥 좋지 않은 것은 자명했다. 지그재그로 올릴 각도가 나오지 않아 스프링처럼 생긴 다리를 공중으로 엮어 길을 이은 곳도 있었고, 대관령 옛길처럼 반대편을 볼 수 있는 반사거울은 예사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내려오는 길은 거의 아래쪽이 보이지 않았다. 렌터카 직원이 왜 차 밑창을 긁으면 안된다고 그렇게 강조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울릉도의 해변에는 모래가 없다. 그래서 몽돌해변이라고도 부른다. 모래가 없다고 생각하면 좀 편하지 않나 생각이 들 수 있다. 해변가를 돌아다니면 발가락을 까실거리는 모래톱은 참으로 신경쓰이는 존재이긴 하기에. 이 곳에서는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해변가 깔려있는 돌들 중 당신의 머리보다 작은 것은 찾기 힘들 테니까. 오히려 발이 어디 접질리지나 않을까 걸음을 조심해야 된다.
얼마 자맥질을 하지도 않았는데, 바닷물에 몸이 뜨고, 발이 닿지 않게 되었다. 그 때서야 넘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불안감을 날릴 수 있게 되었다. 아이러니했다. 다른 곳이라면 발이 닿지 않는다면 몸을 사려야 할텐데, 이 곳에서는 넘어질 걱정에 물 안이 더욱 안전하게 느껴졌다.
내려쬐는 햇볓이 따가워 물 속으로 더 들어갔다. 물안경을 통해 보이는 돌바닥의 모습은 해변가에 있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넘실대는 수초도 없었고, 물고기의 모습도 많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돌에 붙어 있는 따개비들이 원래 그랬다는 듯 돌 위에 붙어 있었다. 물 밖에서 안쪽을 바라봐도 바닥이 보이는 판에, 파도로 굴곡지지 않은 모습 그대로 보는 모습이 오죽하겠는가. 아무리 멀리 헤엄을 쳐도, 물 속의 풍경은 그대로 있었다. 물이 더러울 때와는 정 반대로 물의 깊이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발을 바닥으로 내뻗어 보아야 발이 닿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었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본 그 때서야, 내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처럼.
2시간 넘게 볓 섞인 바닷물 안에서 뒹굴었다. 꽤나 오래 놀았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태양은 머리 꼭대기에 떠 있었다. 잔뜩 그슬린 몸은 마치 잿가루 휘날리듯 퍼졌지만, 이대로 하루를 끝내기는 아쉬웠다. 시간도, 우리의 몸도 최대한 짜 내기로 하였다. 원래 내일로 계획되어 있던 울릉도 북부를 도는 스피드보트를, 오늘 타기로 스케줄을 조정하였다. 결론적으로, 아까 돌았던 북부 해안도로로 다시 차를 돌리기로 하였다.
스피드보트를 운전한 펜션의 사장님은 자기네만이 울릉도에서 이런 관광코스를 개발했다며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현포 전체를 울릴 듯한 육중한 트로트리듬과 함께, 보트는 방파제를 넘어 울릉도 바다를 내달렸다.
사장님은 바다 위 암초 이곳저곳에 세워 주시고는 많은 이야기들을 해 주셨다. 하지만, 사장님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이 글에 실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사장님이 말씀을 못 하셨다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신 것은 아니다. 다만, 경치를 보는 일 이외에 다른 일은 전혀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다.
바닷속을, 그리고 다음은 파도 위를 내달렸다. 그저 보기만 할 뿐으로도 황홀해지는, 그런 경치가 해 지는 그 시간까지 끊이질 않았다. 차에 다시 오르고 나서도 우리의 시선은 바다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고, 바다는 그런 우리에게 석양으로 작별의 인사를 건네었다. 내일 또 다시 보자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