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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ble Aug 21. 2018

6. 성인봉,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 울릉도에 서다

이야기를 싣고 온 발걸음


 퍼뜩 정신을 차려 뒤를 돌아보니, 어느 새 도동항은 산자락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일정은 성인봉을 오르기로 하였다. 단, 이번에는 일행과 따로 행동하기로 하였다. 여행 일정은 조율의 연속이다. 가고 싶은 곳의 순서를 정하는 것도 모두의 의견이 필요하고, 시간에 따라 일정 자체를 과감하게 삭제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산행이라는 체력 소모가 큰 일정을 누구한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오전 동안은 단독행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일정은 이러했다. 도동항에서 성인봉을 오른 다음, 반대편 등산로로 나리분지를 향한다. 그곳에서 일행들을 다시 만나 관광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것. 어제 일정도 상당한 강행군이었기에, 자고 일어났는데도 체력은 그리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울릉도의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싶었다. 면적의 90%가 산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곳에서 산을 타지 않는다면 어디를 또 구경한다는 말인가.


 7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후, 바로 택시를 타고 등산로 입구로 향했다. 처음에는 그냥 걸어가면 되지 않나 생각했다. 하지만 식당에서도, 길을 가는 주민에게 붙잡고 물어 보아도 일단 택시를 타라는 이야기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나서야 깨달았다. KBS 방송중계국 옆에 있다는 등산로로 가는 길은 거의 직각이나 다름 없었고, 어제 보았던 용수철모양의 도로가 있었다. 걸어 올라갔으면 아마 이곳에서 진을 다 빼 버렸을 것이었다. 안 그래도 산행이 익숙하지 않은데, 이렇게 올라갔으면 한 2시간은 더 걸렸을 듯 하였다.










 성인봉은 보이는 것 보다는 오르기 쉬운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20분 정도 산을 타고 오르면, 20분가량은 완만해 진다. 오르고, 쉬어가고, 오르고, 쉬어가고. 일반적인 성인 남성이 오르는 데는 2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하였다. 체력을 보전하면서 천천히 올라간다면, 한 3시간 정도가 소요될 듯 하였다. 고개를 들어 계속 위를 바라보면서 올라갔지만, 얼마나 남았는지 도저히 파악이 되지 않았다. 옛말 치고 틀린 이야기 없었다. 산 안에서 산을 볼 수는 없었다. 등산로를 에워싼 원시림이 너무 빡빡한 것도 시야를 가리는 데 한몫을 하였다.








  안내책자의 설명에서와 같이, 성인봉은 옛날의 생태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수풀은 대부분 고사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치 우산처럼 넓게 퍼져 있는 고사리 이파리는 무성히도 산등성이를 감추어 주고 있었다.









 2시간 가량을 올라가고 나서야 산 아래를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가 나왔다. 그제서야 간간히 바람이  땀에 절은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울릉도의 하늘은 산 위에서 더욱 넓어 보였다. 수평선인지 하늘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저 먼곳의 바다 언저리에서는 어선들이 간신히 어디가 바다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성인봉은 꽤나 느닷없이 찾아왔다. 아직 멀었겠지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계단을 오르고 있던 도중, 갑자기 시야가 트이더니 바로 정상을 알리는 비석이 나타났다. 너무 숲이 빽빽한 나머지, 꼭대기 언저리 몇 미터 주위만 제외하고 모두 나무로 뒤덮여 있던 탓이다. 딱 지금 사진에 보이는 반경 정도만 제외하고는. 쭉쭉 치솟아 있는 나무들 때문에 성인봉 정상의 경치는 그다지 탁 트여 보이지는 않았다. 울릉도를 내려보는 경치는 산 중턱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가려진 듯 하였다. 하지만 이 곳은 하늘이 뒤덮고 있었다. 해안도로 아래에서는 모두 고개를 들면 산, 그 아래는 바다였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수평선조차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단지 하늘이 성인봉을 에워싸고 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공간 안에 나 혼자인듯한.




 잠시 하늘을 둘러 보았다. 거침없이 찔러대는 햇살에 어제 태웠던 피부는 옷 너머로도 화끈거렸고,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응시할 곳이라고는 파란색 뿐인 투명한 그 무언가를 바라보며, 그렇게 또 다른 휴식에 취했다.






 어느 산을 가든 공통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정상에 오르고, 내려가는 일. 오늘의 계획은 여기까지였지만,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는 내려가야 했다. 내려올 때는 다른 일행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나리분지로 가는 반대편 등산로를 택했다. 이쪽 길은 또 느낌이 달랐다. 도동쪽에서 올라오는 길이 쉬었다 올라갔다 쉬었다 올라갔다의 반복이었다면, 나리분지 방향은 그냥 계단의 연속이었다. 그것도 통나무를 박아 자연스럽게 꾸며놓은 계단이 아닌, 그냥 목조계단이 내리막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산을 내려가는 건지 빌딩을 내려가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계단을 다 내려오고 나서는 오르내리는 경사도 없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나리분지 초입에 들어선 듯 하였다. 갑자기 자리를 비운 나무들의 몫은 이름모를 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갑자기 펼쳐진 평야는 아까와는 정 반대의 풍경을 보여 주었다. 불현듯 뒤를 돌아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내려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성인봉은 어느새 저 높이에 있었다. 아까 산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산세가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인 나리분지는 고즈넉한 마을이었다.버스가 다니는 주요 도로에서 나오는 갈림길의 갯수는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길 초입에 들어선 식당 몇 개를 제외하고는, 깊이 들어가지 않고서는 민가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길을 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나무만 없을 뿐이지 아까 보았던 산 속의 분위기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리분지 안을 구석구석 둘러 보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았으나, 산행에 지친 몸은 더 움직이기를 꺼려했다. 배낭을 내리고, 그늘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싼 초록색 병풍을 둘러 보았다. 신기했다. 모두 같은 색깔인데도, 전혀 쳐다보는 것이 질리지 않았다. 이 곳이 가을이 된다면 도대체 어떤 색채를 보여줄 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성인봉에서 떠 온 약수를 들이키며, 이 곳을 구경하러 올 일행들을 기다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풍경이 내게 다가오는 듯했다. 


 그렇게, 마지막은 여행의 가장 기초적인 목적인 휴식으로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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