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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ble Aug 30. 2018

Epilogue - 울릉도에 서다.

이야기를 싣고 온 발걸음





1.

 모든 여행은 특별하다. 그 누구에게도 바닷바람을 홀로 맞는 그 순간, 보라색 일몰을 보는 그 순간, 얼음으로 된 지평선을 바라보는 그 순간은 그때 단 한번 뿐이다. 단지 비슷한 경험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많이 겪을수록 순간의 즐거움은 희석되고, 전혀 다른 장소에서 이전에 겪었던 기시감을 들춰보게 된다. 그 빈도수가 높아질 수록, 여행은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고 마약처럼 더 특별한 곳을 찾게 된다.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곳을 다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다를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국내여행은 모두 비슷한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다를 것은 없다는 선입견이 이미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다만, 가기를 꺼려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렇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 떠났다. 적어도 지금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눈을 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휴식의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지친 몸은 삐걱대고 있었고, 어딘가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여행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정말로 몸만 가벼이 배에 올랐다.


 3박4일의 일정이 끝나고, 다시 육지로 가는 배 위에 오를 때에야 깨달았다. 나는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절경에서 발을 떼고 있다는 것을. 여행 중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감탄에, 감탄에, 감탄이 계속 머릿 속에 겹쳐 들어가며 눈을 뜨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나니 도동항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었고, 또 그 마지막 경치를 어떻게라도 더 담으려 하니 그새 배 위에 올라 있었다.


 이런 곳을 글로 남기지 않으면 도대체 나는 어디를 말해야 한단 말인가.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오늘까지 찍어 두었던 사진을 다시 둘러 보았다. 머리 속에 남아 있던 이미지가 더 지워지기 전에. 





 2.

 이번 글을 끝까지 읽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금까지 글들 중에 고의로 누락시킨 부분이 있다. 그렇다. 먹을 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굳이 쓰지를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너무 가열차게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거의 하루에 한 끼만 먹고 다닌 것이 첫 번째요, 두 번째는 이 곳의 음식에 대해 조금 몰아서 설명을 하며 비평을 하고 싶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다. 울릉도의 먹거리라고 하면 오징어와 호박엿이라는 것을. 당연히 지역 주민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도동항 앞 가게들은 모두 오징어와 호박 관련 물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울릉도의 전부는 아니다. 울릉도는 섬이라는 좁은 장소에 산과 바다를 밀집시켜 둔 곳이라, 평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조합을 자랑한다. 






 

 도동항 해안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바닷가 옆에 멋스럽게 간이 의자 간이 책상을 깔아두고서는 해산물을 소주와 함께 판매하는 노점들이 있다. 어느 가게를 가더라도 거의 구성은 비슷하다. 여기에서 물론 산지직송 오징어가 가장 먼저 눈에 뜨이겠지만, 뿔소라회를 꼭 드셔보시라 권하고 싶다. 뿔소라는 울릉도 특산 소라로, 보통 소라보다는 전복에 가까운 까들까들한 식감과 함께 짭조름한 바다내음을 담고 있다. 같이 나온 문어도 좋았고, 오징어 내장을 쪄서 준 것도 모두 맘에 들었다. 단지 좀 아쉬웠던 것은, 현지 분에게 여쭤 보니 멍게는 이 곳 울릉도에서 나지 않는 물건이라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만 놓아 두어도 물이 빠지고, 조금 맛이 간듯한 느낌이 들었다. 왜 굳이 육지인들에 입맛에 맞춰 나지도 않는 멍게를 올려 두었는지.  



 



 이것은 성인봉을 오르기 직전 먹었던 아침식사다. 일반 백반을 시켜서 먹었는데,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이라고 하면 밥과 함께 나오는 미역국을 말할 수 있겠다. 울릉도에서는 미역을 양식하지 않고 모두 자연에서 채취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미역귀 부분이 씹히는 질감이 다르고, 국물 역시 다른 미역국보다 훨씬 찰진 맛을 자랑한다. 여기에 보이는 다른 나물반찬 역시, 성인봉 산자락을 따라 자생하는 울릉도 특산 나물로 이루어져 있다. 





 

 울릉도 산나물에 관해서 이야기하려면, 나리분지의 식당촌 메뉴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 이 밥상은 나리분지에 있는 한 식당에서 특산채정식을 시켰을 때 나오는, 모두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나물들로 이루어진 밥상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명이나물부터 시작하여, 고사리, 고추냉이줄거리에 삼나물 등등,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나물로만 20여가지의 반찬이 나온다. 방금 전에 말했던 미역줄거리도 같이 올라와 있다. 울릉도 호박도 이 곳에서 절임나물로 내어 주는데, 씹자마자 올라오는 알싸하게 농축된 호박향은 이게 내가 알고 있는 호박의 맛이 맞는지를 의심하게 될 정도이다. 고기가 단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라도 와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알찬 식단이라 말할 수 있겠다.



 






 도동항 어떤 식당에 들어가도 꼭 있는 메뉴가 있다. 따개비밥, 홍합밥, 오징어내장탕. 이 중에서 오징어내장탕은 술 마신 다음 날 최고의 효율을 발휘한다. 일반적인 오징어국에서 나오는 내음과는 전혀 다른, 마치 곰탕은 연상케 하는 진한 국물맛을 보여 준다. 그리고 나머지 메뉴에 대해서 평하라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먹어 본 적이 없으니까. 밥 한 그릇에 만칠천원 만팔천원하는 메뉴를 시키기에는 아직 내 정신은 온전했나 보다. 그 이후로도 다른 메뉴들을 도전해 보기 위해서 다른 마을에서도 이 메뉴를 찾아 보았지만, 모두 가격은 비슷했다. 

 물론 이해는 된다. 저 메뉴들은 울릉도에서만 나는 재료로 만들었다. 그리고 식자재들을 조달하기 어려운 도서지역이다. 프리미엄이 붙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저 가격에 밥 한 그릇만 덜렁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 말했듯이 밥이란 메뉴에 가격이 그렇게 높이 책정되었다는 것에 거부감이 먼저 든 것이다. 그저 그것 뿐이다. 어떤 맛일지 궁금하기는 하다. 거기까지다.




 3.  

 이번 여행을 같이 한 이들이 있다. 나라는 노래의 거의 대부분의 가사를 채워준,  지금까지의  거의 모든 여행길에 함께 했던, 그런 친구. 그리고 그의 인생의 동반자가 될 분. 쌍쌍이 다니는 데 괜히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 없이 너무나도 편한 여행을 만들어 준 두 사람에게 찬사를 보낸다. 조금 힘들다 싶을 정도로 빼곡한 일정이었지만, 모두 다 같이 함께였기에 좋았다. 그리고 즐거웠다. 


 그리고, 이 친구가 알고 있던 울릉도에 살고 계시던 어르신 덕분에, 도움 받은 것도 많았고 울릉도에 대해서 좀 더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빌어 그 분께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그 사진가 친구의 사진을 올리며 이 글의 마지막을 맺고자 한다. 다시 울릉도에 설 그 날을 기다리며.


  




-H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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