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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ble Apr 23. 2018

러시아 여행 ㅡ 크라스나야르스크.5

이야기를 싣고 온 발걸음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 지브노고르스크에 가는 표를 구입하고 나서야 시간적인 여유가 조금 생겼다. 점심을 간단하게 때우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종업원도 없었다. 주방 안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직원 한 명이 대놓고 불친절해 보이는 얼굴로 주문을 받으러 나왔다. 가판대에 그려진 메뉴에서, 일단 피자와 러시아 전통 빵 중에 하나인 삼사, 그리고 콜라를 주문하려 하는데...

 메뉴판의 숫자들이 내가 알고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덧붙이자면, 이르쿠츠크보다 1.5배가량 비쌌다.

 러시아가 도시마다 물가가 다르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피자야 어디서든 자기네 다른 레시피가 있을 수 있으니, 조금 높아도 그러려니 했지만, 삼사와 콜라는 얘기가 달랐다. 삼사는, 비슷한 예를 들자면 소시지빵 같은 물건으로, 전혀 가격이 높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금 당장 시간은 없고 배는 고팠다. 일단 빠르게 갖다 달라 이야기를 하고서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음식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것이 그 주문의 결과였다.


이 모든 것이 믿을 수 없는 가격 200루블! - 당시 약 8000원




 피자라고 나온 물건은 찻잔 받침 하나만한 크기로 나왔다. 원래는 삼사가 이만한 크기로 나와야 정상인 물건인데, 그 절반도 안 되는 사이즈로, 그것도 피자 위에 그냥 얹어서 나왔다. 한 입 씹어보니, 더욱 가관이었다. 물론, 이런 비주얼에서 당연히 지금 갓 구운 물건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한 성의껏 뎁혔다는 증거는 남아있어야 할 것 아닌가. 전자렌지 안에서 얼마나 대충 굴러다녔는지, 찬 곳만 차고, 뜨거운 곳만 뜨거웠다. 약 10초간, 사고가 정지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잊어 버린 채. 그 직후, 미친듯이 눈 앞에 있는 것들을 입 안에 욱여넣었다.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무언가를 어디로 치워 버린다는 느낌으로. 그 어떤 때보다도 빠른 식사를 끝마치고서는, 남은 콜라를 들고서 버스를 타러 갔다.  크라스나야르스크 댐이 절경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다.


 한참동안 힘겹게 비탈길을 올라가던 버스는, 버스라고는 한 대도 찾아볼 수 없는 정류장에 멈춰섰다. 안내음성은 잠깐 뜸을 들이고서는 이곳이 지브노고르스크라고 말했다.



 지브노고르스크는 작은 마을이었다. 버스정류장에 내리고, 기지개를 펴면서 쭈욱 산등성이를 잠깐 바라본 것만으로 마을의 모든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그렇게 둘러 보아도, 댐은 보이지 않았다. 역에서는 그저 이 마을까지만 가면 된다고 들었다. 뭐, 어쩌겠는가. 물어물어 가는 수 밖에.


 일단 예상으로는 버스를 다시 타야 할 것 같았다. 건물 안에 있는 매표원에게 크라스나야르스크 댐까지 가는 버스가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없단다. 댐에 가려면 택시를 타야 한다고 말하면서, 택시비는 좀 비쌀 거라고 엄포를 놓는다. 방금 전에 당한 것이 있는지라, 살짝 긴장하면서 그럼 왕복으로 하면 얼마나 되는지를 물어보았다. 140 루블. 이르쿠츠크의 택시 편도요금하고 같다. 아 음식값은 그 모양이었으면서, 왜 택시값은 이렇게 싼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여기는 물가가 어떻게 되어있는 건지. 아니면, 방금 전에는 크라스나야르스크라서 물가가 비싼 거고, 여기는 지브노고르스크라서 물가가 싼 건가? 머릿속에 온갖 의문을 담으면서, 장소를 안내받은 택시정류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택시정류장에는, 단 한대의 택시만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주차장 안에서, 이 차가 다 나가고 한 대만 남아서 이렇게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 마을 유일의 택시인지는 분별할 수 없었다. 택시기사는 자신을 키릴이라 소개하며, 러시아 청년들이 으레 그러하듯 악수로 인사를 청했다. 그는 나의 외모를 보고서는 중국 사람을 보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라고 하였다. 한국이라고 정정해 주자, 남쪽인지 북쪽인지를 묻는다. 언제나 국적에 관련되서는, 이 순서대로 질문이 온다. 이 쪽 사람들은 동양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다. 머리 검고 눈동자 검으면 다 중국사람인줄 안다. 남쪽이라고 이야기해 주며, 지금 너가 갖고 있는 핸드폰도 우리나라에서 만든 거라 말해 주었다. 삼숭이 한국거냐며 놀라는 키릴을 보면서, 에어컨, 자동차 등등 한국에서 온것이 많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키릴은 러시아 제품들이 너무 질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경적을 한번 빵 울려준다. 러시아도 한국제나 일본제 같은, 잘 나가는 자동차를 좀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도요다의 우핸들 택시를 모는 러시아 청년은,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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