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싣고 온 발걸음
이르쿠츠크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키릴이 자기가 이전에 일했던 곳이 앙가르스크라는 이야기를 해 준다. 앙가르스크는 이르쿠츠크 북부의 작은 마을로, 지금 이 곳 지브노고르스크 비슷한 곳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그렇게 작은 마을들에서 택시가 장사가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나름 수요가 있단다. 가끔씩 급하게 크라스나야르스크까지 나가는 사람들이 주 수입원이고, 못 버는 날은 못 벌때도 있지만 자기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택시는 댐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크라스나야르스크 댐은 일반인 출입 금지구역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댐의 발전시설과 같은 내부를 구경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두 가지를 기대했다. 팔당댐같이 댐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그런 관광지가 있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서 댐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 그리고 댐 위를 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 하나.
하지만 기대했던 두 가지는 모두, 도착과 동시에 산산히 부서졌다. 댐 정면의 입구에는 철조망으로 된 문이 닫혀 있고, 관계자 외에는 출입금지라는 명패가 붙어 있다. 경비실에 어떻게 들어갈 방법이 없냐고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키릴에게 어떻게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물었지만, 그런 곳은 없다고 하였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왔던 길로 돌아 나왔다. 키릴이 댐 위쪽으로 가는 방법은 모르지만, 강 하류쪽에서라면 댐을 넓게 볼 수 있는 곳은 있다면서 돌아오는 길에서 살짝 꺾어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다리 아래로 차를 몰았다.
아무도 없는 도로는 주차장이 되었다. 아무렇게나 차를 세운 키릴은 자기가 앞장서서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은 무척이나 가파르고 위험했다.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눈이 쌓여있어서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깊게 빠지는 곳은 무릎까지도 들어가는데, 조금만 정신을 놓치면 크게 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식은땀을 흘렸다.
간신히 내려온 그 밑에서 예니세이 강은 엄청난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보통 댐 주변이면 물의 흐름이 정체되어 있을 텐데, 이 추위에 얼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가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강가를 타고 조금 더 올라가서야, 크라스나야르스크 댐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포인트에 도달하였다.
크라스나야르스크 댐을 보고 처음 떠올린 단어는, ‘벽’이었다. 댐이라면 으레 보이는 수문도 없었고, 그렇다고 벽 중간에서 물이 흘러 나오는 구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빠른 속도로 흘러나오는 강물이, 저 벽이 물길을 가로막은 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해 주었다.
신기하게도, 저 밋밋한 구조물을 보고 있는데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이것이 산 꼭대기에서 기암괴석이 두서없이 솟아나온 자연의 절경을 바라보는 기분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교회 성당같은 인위적인 조형미가 덧씌워진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상하는 것도 아니었다. 확실히 이 댐은 감탄의 대상으로 할 만한 것은 아었니다. 기대감보다는 ‘그렇지 뭐’ 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고, 그나마도 원하는 방법으로 감상하지 못했다. 다만 원해서 이곳에 왔고, 도착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했던 것 같다. 굳이 아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보다, 모르는 상태에서의 시행착오가 더 여행의 본질에 가깝다고 믿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기에.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을 보더니 키릴이 자기도 한 장 찍어달라고 말했다. 자기도 댐에서 찍은 사진이 없단다. 사진을 어디로 보내줄지를 물어봤더니, 보내줄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냥 찍은 것만으로도 좋다면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의 낙천적인 그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