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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Oct 17. 2024

시식회(詩食會)에 초대합니다.

괄호 안으로 들어가는 너를  오은

우리


     

괄호를 열고

비밀을 적고

괄호를 닫고     


비밀은 잠재적으로 봉인되었다     


정작 우리는

괄호 밖에 서 있었다     


비밀스럽지만 비밀하지는 않은      


들키기는 싫지만

인정은 받고 싶은     


괄호는 안을 껴안고

괄호는 바깥에 등을 돌리고

어떻게든 맞붙어 원이 되려고 하고     


괄호 안에 있는 것들은

숨이 턱턱 막히고     


괄호 밖 그림자는

서성이다가

꿈틀대다가

출렁대다가     


꾸역꾸역 괄호 안으로 스며들고     


우리는 스스로 비밀이 되었지만

서로를 숨겨주기에는

너무 가까이 있었다               



우리          

     

절대 얼지 마

등굣길의 엄마는

늘 빙판길 위에 서 있었다     


눈길은 따뜻했지만

애가 타고 있어

그 누구의 심장도 녹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불타는 열정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얼굴만 보고도 알 수 있다

교단의 선생님은

얼굴에 화산재가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내가 이 자리에 선 지

자그마치 20년이란 말이다!     


휴화산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만 볼 수 있는 노트에

자기만 알아볼 수 있는 글씨로

낙서를 했다     


한 시간에 50분 정도는

물에 물을 탈 줄 알았다

시간을 쪼개 틈을 탈 줄 알았다

    

20년 뒤에 네가 어디 있을 것 같니?

휴화산은 쉴 줄을 몰랐다     


절대 울지 마

하굣길의 엄마는

늘 황무지 위에 서 있었다     


엄마와 나 사이로

승용차 한 대가 잽싸게 지나갔다     


우리는 망연히 사라지는 차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난데없이 애가 타고 있다     


[출처] 오은 없음의 대명사 문학과지성사. 2023          


시식평    

 

고등어자반을 고르기 전엔 몰랐겠지

수직으로는 총알, 수평으로는 고속철도의 속력으로 바다를 헤엄친다는 시속 20km의 고등어 사체엔 바다가 뿌려집니다

고등어의 탄력을 헤치며 그날의 파도를 떠올립니다. 그날의 풍랑과 그물의 갑갑함과 어부들의 웅성거림을

식탁 위로부터 심해까지 고등어로 알 수 있는 바다까지.     


그리고 그 중간 어디쯤에서 잡혀 온 고등어자반 하나를 굽습니다.     


아직도 굵은소금 한 알이 보석처럼 고등어 살 속에서 반짝이고       


고등어를 감싸주었을 바다가 고등어의 안쪽 흰 살점에서 녹아내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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