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을 혀로 핥는다.
차가운 바람 속을 산책하고 온 입술은 생각보다 메말라 있었다 아니 메마른지 알게 된 건 너의 입술에 닿고 난 뒤였다 가을은 메마른 입술을 혀로 핥다 자꾸만 메말라지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너의 입술에 닿았던 입술이 아주 느리게 벌어진다. 어두운 방에서 눈을 뜨는 순간처럼 눈부신 숨결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눈을 감을 수밖에.
벌어진 입술사이로 너의 내부로 들어간다. 부드럽고 따스하고 여름날 오후 같은 습도와 끈적이는 숨결, 그리고 지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살점 중 한 곳이 마중을 나온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느낄 수 있을 만큼 휘감긴다. 너의 혀에 내 이름을 얹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너의 타액의 일순간 달콤해진다. 아주 잠깐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아랫입술을 느리게 입안에 머금고 천천히 빨아댄다. 나의 윗입술이 너의 입안에 머물러 있다.
떨어지는 순간, 떨어지는 순간, 공기가 새어 들어온다. 두 입술 사이로 세상의 모든 냉기가 흘러들어와, 조금 전까지의 온도를 무너뜨린다. 서로의 입안에 있던 말들은 다 녹아버려 이제는 어떤 문장도 완성되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맛보고, 판단하고, 기억한다. 그러나 그것의 진짜 일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닿는 것이다. 혀는 세상의 모든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드는 밀항자처럼, 금기의 벽을 미세하게 핥으며 사람을 인간으로 만든다.
첫 임무는 생존이었다. 단맛은 안전을, 쓴맛은 위험을 알렸다. 그러나 문명의 시간이 흐르며 혀는 도덕보다 앞서 쾌락을 배웠다. 미각의 섬세한 구분은 곧 감정의 미묘한 진동과 닮아갔다. 사람은 혀로 음식을 고르고, 감정을 분류하고, 진실을 뒤집는다. 말은 혀의 그림자이고, 키스는 그 그림자의 반역이다.
혀가 처음 타인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언어는 사라진다. 문법은 녹고, 의미는 미끄러진다. 남은 것은 오직 온도와 점성, 그리고 호흡의 간격뿐이다. 혀는 대화를 버리고 접촉을 택한다. 그것은 이성의 마지막 방어선을 유린하는 가장 조용한 폭력이다. 사랑은 언제나 그 지점에서 무너진다.
혀는 진실을 말하라고 배웠지만, 진실보다 더 깊은 것을 안다. 그것은 기만과 망설임의 온도, 욕망이 처음 형태를 갖추는 진동이다. 손끝으로는 감히 다가가지 못할 곳을 혀는 가볍게 스친다. 혀의 움직임은 곧 마음의 문법이고, 그 리듬은 거짓보다 정직하다. 혀가 허락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다. 그것은 말로 써가 아니라 살로써 주고받는 동의다.
사람은 사랑할 때마다 혀를 새로 배운다. 상대의 혀는 타인의 언어다. 그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국어의 습관을 버려야 한다. 어떤 혀는 빠르고, 어떤 혀는 느리다. 어떤 혀는 침묵의 대가이고, 어떤 혀는 초보적인 문장으로도 황홀을 만든다. 두 혀가 만나 문장을 완성하는 순간, 그곳에는 문학보다 더 짧고, 더 진실한 언어가 피어난다.
혀는 근육이 아니라 기억이다. 사랑했던 사람의 입모양, 그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 그리고 입술의 맛까지 모두 혀는 기억한다. 사랑이 끝나도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된 와인처럼 숙성되어, 어느 날 아무 의미 없는 단어 속에서 다시 깨어난다. 혀끝에 남은 이름 없는 단맛, 그것이 바로 잊지 못하는 이유다.
입맞춤은 사랑의 연습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 그 자체의 언어다. 혀는 그 언어의 필기구로, 침묵 위에 열기를 새긴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젖어들고, 이성의 문장들은 천천히 해체된다. 혀는 문장을 삼키고, 의미를 녹이며,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을 쥐어짜 낸다. 그때 사랑은 철학보다, 종교보다, 훨씬 육체적인 신앙이 된다.
혀는 잔인하다. 사랑이 식을 때, 혀는 가장 먼저 그것을 안다. 입술은 여전히 맞닿아 있지만, 혀는 더 이상 길을 찾지 못한다. 리듬이 어긋나고, 맛이 사라진다. 혀는 매혹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나, 그 기억이 더 이상 현실을 재현하지 못할 때, 사랑은 끝난다. 결국 혀는 사랑의 심장이다. 그 심장이 식으면 모든 말은 공허한 메아리로 변한다.
말과 키스, 두 가지는 혀의 양극이다. 하나는 세상을 향한 문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를 닫는 문이다. 말은 외부로 열리고, 키스는 내부로 침잠한다. 말은 논리를 세우지만, 키스는 논리를 녹인다. 말은 진실을 분리하고, 키스는 경계를 융해시킨다. 그래서 사랑은 늘 혀의 두 끝에서 흔들린다. 진실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맛볼 것인가.
혀가 가진 야함은 노골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금지된 세계를 향한 감각의 확장이다. 사람은 눈으로 욕망을 상상하고, 손으로 욕망을 소유하지만, 혀로 욕망을 증명한다. 혀는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야만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혀는 언제나 경계 위에 있다. 그것이 허락된 순간에도, 여전히 금지의 냄새를 품고 있다.
어떤 혀는 사랑의 언약을 속삭이고, 어떤 혀는 그 언약을 배반한다. 거짓말은 목소리로 나오지만, 진심은 혀끝에 남는다. 키스 후의 침묵 속에서 혀는 스스로를 탓하거나, 혹은 잊으려 한다. 그러나 이미 늦다. 혀는 상대의 체온을 배워버렸고, 그 체온은 언어보다 오래 지속된다. 혀는 거짓을 말할 수 있어도, 느낀 것은 감출 수 없다.
혀는 문명 이전의 언어다. 말보다 오래된 의사소통의 방식, 문법보다 먼저 배운 이해의 감각. 사람은 태어날 때 울음으로 세상을 맞이하고, 죽을 때는 침묵으로 떠난다. 그 사이 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맛보며, 의미를 찾아다닌다. 혀는 신체의 철학자이자, 욕망의 기록자다.
혀의 야함은 그 움직임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이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모든 것을 조종한다는 점에 있다. 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유혹하고, 통제하고, 때로는 파괴한다. 혀의 단 한 번의 접촉이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한 마디의 말이, 한 번의 키스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혀는 신의 도구이자 악마의 장난감이다.
혀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사랑과 진실이 잠시 구분되지 않는 때다. 그 짧은 무의식의 틈에서 혀는 언어의 짐을 벗고, 감각의 순수한 형태로 되돌아간다. 그것은 원초적이고, 동시에 초월적이다. 사랑이 끝난 후에도 그 순간만은 기억 속에서 부패하지 않는다. 혀가 남긴 흔적은 시간의 부식에도 견딘다. 그것은 몸이 남긴 시詩다.
혀는 그렇게 매혹적이다. 그것은 사랑의 무기이자, 유일한 항복의 방식이다. 누군가의 입속에서 혀는 더 이상 자신을 주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때 혀는 상대의 혀를 믿고, 그 믿음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혀의 매혹은 곧 신뢰의 가장 은밀한 형태다. 서로의 혀가 같은 리듬으로 움직일 때, 세상은 잠시 멈춘다.
혀는 지극히 은밀하고, 매혹적이며, 야하다. 그러나 그것의 야함은 욕망의 노출이 아니라, 진심의 탈의에서 비롯된다. 혀는 진실을 말하는 대신 진실을 핥는다. 그것이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가는 곳마다, 사랑은 잠시 존재한다. 혀가 닿은 곳에서만 사랑은 현실이 된다.
그래서 혀는 인간에게 남겨진 마지막 은밀한 언어다. 그 언어를 아는 자만이.
사랑을 끝까지 발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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