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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푸딩

먹을 수 없는 계절의 맛

by 적적


아스팔트 위의 낙엽이 빗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 낙엽들은 이미 오래전 나무의 신분을 버린, 사회적 낙오자들이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낙오자에게도 드물게 아름다운 순간이 찾아온다. 낙엽에게 그건 바로 ‘젖는 일’이었다. 빗방울이 몸을 두드리자 낙엽은 천천히 색을 짙어 갔다. 마치 다홍빛 외투를 벗고 갈색 벨벳으로 갈아입는 것처럼.


적당히 젖은 낙엽은, 적당히 무게를 얻어, 인도와 차도의 경계에 고인 물웅덩이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곳마다 낙엽푸딩이 놓여 있었다. 가을의 디저트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도시의 미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심한 우연에 기대고 있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도시 설계자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물길의 각도, 배수구의 위치, 자동차 바퀴가 지나간 궤적, 그리고 바람의 방향이 우연히 만나 완성된 낙엽푸딩의 배치도였다. 도시의 예술은 종종 계획되지 않은 곳에서 피어난다. 예를 들어, 아침마다 누군가 커피를 엎지르는 그 자리에 생긴 갈색 얼룩, 혹은 편의점 앞 얼음조각이 녹으며 남긴 무심한 패턴들. 도시의 낙엽푸딩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이쯤 되면, 인간이 만든 건물보다 낙엽이 훨씬 더 정직하게 가을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람들은 그런 걸 보지 않는다. 출근길의 신발 끝에 낙엽이 들러붙으면 ‘더럽다’고 느끼고, 웅덩이를 피해 걸음을 재촉한다. 그건 자연이 인간에게 던지는 아주 작은 농담이다.



투명한 웅덩이 속에서 낙엽은 겹겹이 쌓인다. 웅덩이 안의 낙엽은 시간의 질감을 증식시킨다.

그걸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배가 고파진다.

저걸 떠먹으면 무슨 맛일까?



한때는 광합성을 하던 잎사귀가, 이제는 빗물에 절여진 채, 가을의 조각이 되어 있는 것이다.

도시의 모든 풍경은 언젠가 음식의 비유로 귀결된다. 피자박스가 버려진 골목은 초현실적인 스틸라이프가 되고, 찻물 자국이 남은 책상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호수다. 그리고 낙엽푸딩은 그 모든 것 중 가장 맛있어 보이는, 그러나 결코 먹을 수 없는 요리다.



가을의 맛에 대하여

음식 평론가들이라면 낙엽푸딩을 ‘흙내의 하모니’라 부를 것이다. 향은 젖은 흙과 먼지, 고양이 털, 그리고 미세먼지가 섞인 공기에서 비롯된다. 씁쓸하면서도 단맛이 나는, 기묘한 향기다.



만약 인간이 진짜로 낙엽푸딩을 먹을 수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가을의 기억을 삼키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코끝을 간질이던 먼지, 첫사랑이 떠난 날의 저녁 냄새, 공원 벤치에 오래 앉아 있던 손의 냉기 같은 것들이 한입에 섞여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이미 숟가락을 들고 있다.


그건 아마도 따뜻하고, 약간 쌉쌀하며, 입안에서 사르르 녹을 거야.



그 순간, 낙엽푸딩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 생생하다. “상상 속의 음식은 칼로리가 없고, 그러므로 인간에게 가장 안전한 위안이다.”



비 오는 날, 도시의 사람들은 대부분 우산 아래로 숨는다. 하지만 진짜 미식가는 고개를 든다.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빗줄기, 도로 위의 반사된 네온사인, 그리고 그 사이를 흘러내리는 낙엽의 색조를 관찰한다.

그는 알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조리법이라는 것을.

아스팔트는 팬이다.

빗물은 소스다.

낙엽은 주재료다.

바람은 조리 도구이자 셰프의 손길이다.



그렇게 완성된 요리는 이름조차 필요 없다. 단지 잠시, 도시의 하수구로 흘러들기 전의 짧은 생명력을 자랑할 뿐이다. 하지만 그 기억조차 나지 않은 시간이, 진짜 가을의 맛이다.

낙엽을 쓰레기로 취급하지만, 그 쓰레기가 모여야 가을이 완성된다. 만약 낙엽이 없다면, 가을은 단지 날씨가 쌀쌀한 시기일 뿐이다.



낙엽은 사실상 가을의 ‘식용 색소’다. 그것이 없다면 계절은 맛을 잃는다.


가을의 끝, 낙엽푸딩은 점점 사라진다.


물웅덩이는 증발하고, 낙엽은 짓이겨져 진흙과 섞인다.


어쩌면 낙엽푸딩은, 인간이 가을을 삼켜보려는


마지막 상상일지도 모른다.


먹을 수 없는 것을 먹고 싶어 하고,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는 욕망.


그 욕망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유머러스한 종으로 만든다.


가을의 미식가라면 알 것이다.


인생의 진짜 맛은.



늘 먹을 수 없는 것들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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