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레스트 에어리아, 우리의 쉼터
3년전이었다. 그의 입에서 그소리가 나왔던 것은. 옐로스톤!
So what! 이게 내속에서 나온 말이었다. 옐로나이프랑 혼동되기도 하고, 상황이 안되는데 어딘가를 가자고 해서, 주의깊게 생각하지 못했었다. 막내와 함께 살때, 가족이 그곳에 가보자 했었다. 막내와 무엇을 도모하기에는, 그아이의 관심은 먼나라로 떠나있어서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가는데만 3천 km라고 하니, 이게 가당키나 한말인가. 가장 멀리 떠나보았던 것이 캐나다 동쪽 노바스코샤, PEI, 뉴브런즈윅이었는데, 그곳도 편도 2천 km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보다 먼곳을 가자고 하니, 정말 불가능하게 느껴졌었다.
남편은 나를 가끔은 "부정적"이라고 놀리는데, 나는 "현실적"이라는 말로 나를 변호한다. 3년전에 한번 계획되었다가, 동의를 얻지못해 연기되었던 그 "옐로스톤"을 다시 한번 가자는 말이 나왔다. 가장 중요한 참여자는 막내딸이었다. 남편의 제안에 막내가 가고싶다고 하여, 진행이 되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나는 떠나는 날까지 이 일이 과연 성사될까 의문을 가졌다. 그애가 변덕을 부려, 어느 순간 "가고싶지 않다"고 하면, 우리는 할수 없이 계획을 접던지, 우리 둘이 떠나든지 해야 할판이었다.
여행 이전에도 여러가지 일들이 있어서 내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 잘 생각해보지 못했다. 남편의 계획에 맡겨보자는 심산도 컸다. 3년전에는 많은 준비를 했었는데, 그 자료를 찾을 수 없다면서, 이번에는 그다지 심도깊게 준비하는 것같지는 않았다.
크게 옐로스톤(Yellowstone National Park)까지 가는 데는 3일, 구경하는데 3일, 돌아오는 데 3일에서 4일 정도로 계획하고 길을 나섰다. 미리 예약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남편은 언제 어느 곳에 당도할 지 알수 없기 때문에 레스트 에어리아(rest area)에서 차박을 하기도 하고, 힘들면 모텔을 잡아서 잠을 자자고 했다.
하루하루 어떤 데서 잘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Yellowstone national Park을 넣으면 1day 5hours라 나온다. 총 거리는 2810km. 이 지도를 잘보면 Michigan의 Muskegon에서 호수를 가로지르는 것으로 되어있다. 최단의 거리를 제시한 것이지만, 호수위를 차로 달릴 수도 없고, 배를 타면 그렇게 걸린다는 말이다. 어쨋든 샤니아(Sania) 국경을 넘어 배를 탈 수 있는 곳까지 가기로 했다. 하루에 세번 배가 있는데, 오후 4시 밤 11시 그리고 아침에 있다는 남편의 말이다. 오후 4시 배를 타지못하면 밤 11시 배를 타면 될것이라면서, 그렇게 갈무리를 했었다.
우선 구엘프(Guelph)에서 막내를 픽업하는 일로 시작해서 9일에서 10일 일정으로 차를 몰았다. 배를 타는 시간을 넉넉히 잡았기 때문에 크게 조급해하지 않았다. 샤니아 국경은 혼잡하지 않았다. 무슨 음식이나 야채를 가져온 것 있냐는 이민관 말에 남편이 라면등 드라이 음식과 김치를 가져왔다고 하자, 그는 김치볶음밥? 뜬금없이 아는체를 해서 함께 웃어줬다. 그가 한국인에게 친근함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놀리려고 그랬는지, 우리중에 토론이 일어났지만,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니었다. 나는 순두부찌개용으로 야채를 조금 가져왔기에 그걸 말하지 않고 무사통과한 것이 기뻤다.
미국쪽에 들어오면서 하이웨이에서 눈에 띄는 대로 주목했는데 이상한 사인들도 많았다. 가령, "이곳은 감옥이 있는 지역이니, 누군가 히치하이킹해달라고 하면 태우지 말것"이라는 영어사인판도 있었고, "시신 화장 기본 요금 1,250불"이란 사인도 봤다. 캐나다에선 볼수 없는 험악한 사인이라 조금 놀랐다.
우리가 미국에 간다고 했을때 큰애의 걱정이 심각했다.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있고, 도둑도 많고, 인종차별이 있는 믿을 수 없는 나라라면서 말이다. 가끔 뉴스에서 보았으므로 나도 약간 걱정했지만, 이런 사인빼고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그건 천천히 이야기하기로 하자.
무스키곤(muskegon)에 도착해서 배타는 곳을 찾아갔다. 그곳은 작은 항구였는데, 사람들은 없고 무언가 잘못된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5시가 바듯 넘어있었는데, 사무실문이 닫혀있었다. 11시 밤 배가 있음을 알고왔기에 어찌된 일인가 했다. 인터넷을 뒤적이니, 배 예약을 미리 했어야했다. 그 다음날 배도 아침배는 자리가 없고 저녁 11시 배만 자리가 남아있었다. 우리를 기다리며, 오는대로 배를 태워줄 거라고 생각했던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여기서부터 버려야함을 느끼게 됐다. 남편은 여정의 초반에서 자신의 계획과 맞지앉자, 꽤 미안해했다. 나는 그에게 모든 일을 맡겨놓고, 뒷짐지고 있다가 그러면 안될것 같다는 것을 깨닫지만, 셋중 남편만 로밍을 했고, 우리 둘은 와이파이만 사용하기로 하고, 에어플레인 모드로 해놓아 검색이 어려웠다. 큰 문제야 있겠어, 닥쳐보자 하는 배짱을 가져본다.
다음날 배를 탈수도 없으니, 미시건 호수를 끼고 지도를 보면 물찬 보자기처럼 생긴 도로를 달리는수밖에 없다. 그렇게 결정하고 다시 차를 탔다. 동생들과 언니가 사는 시카고 외곽을 지날 즈음에는 뒷목이 당겼다. 한 동생은 한국 방문중이고, 다른 동생도 여러가지 일이 있는 걸 아니, 잠시 들러본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지만, 배를 타지 못하고 육로로 가게 되면서 그 근처를 지나려니, 자꾸 뒤가 켕켰다. 다시 돌아올 때 잠시 들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첫날밤 보낼 곳을 찾아야 했다. 그간 운전하면서 보니, 60마일에서 80마일 사이에는 rest area가 있었는데, 밤이 으슥해졌을때 만나게 될 레스트 에어리아가 우리의 첫날밤을 보낼 곳이다. 그렇게 만나게 된 한 휴게소가 있었는데, 정말 고즈넉하고 아름다왔다. 차 세우는 곳과 트럭 세우는 곳이 따로 있어서 조용했다. 그리고 피크닉 테이블이 있어서 식사를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드디어 캐나다에서부터 가져온 순두부찌개를 끓였다. 우선 밥을 해서 퍼놓고, 찌개와 가져온 밑반찬으로 첫날 만찬을 가졌다. 그랬는데, 식탁주변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들이 있었다. 아 그것이었다. 반딧불. 영어로는 fire fly. 그렇게 많은 반딧불을 보기는 처음이다. 같이 앉았다가, 한두마리가 날아오르면 한꺼번에 날아오르던 그것들. 어두워질수록 반딧불은 수를 놓듯 물결치다가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했다. 그 지역의 이름은 잊었지만, 반딧불이 우리들을 환영해주었다.
그날 저녁, 트럭에서 자기를 실험했다. 뒷좌석의 의자를 올리면 두명이 잘 공간이 나온다. 그곳에서 나와 막내가 자고, 트럭 앞쪽은 세명이 앉을 수 있게 중간의자가 있는데 그것을 펴고, 그곳에 남편이 누워자기로 했다. 나와 막내는 그럭저럭 잘잔편인데, 남편은 아마도 불편했을 것이다. 그 좌석의 높이가 고르지 않았으므로.
차박을 한다는 생각은 트럭을 사면서 조금 더 현실감이 생겼다. 캠핑 트레일러를 끌고 그 긴거리를 운전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요즘같이 개스값이 높을때 비경제적이기까지 해서, 일찌감치 다른 방도를 찾아야했다. 남편의 트럭을 작년에 내가 사고내고 폐차한 뒤로 지프 한대로 생활해왔는데, 이 지프를 트럭으로 트레이드했다. 좀 커서 내가 사용하기 어렵지만, 공간이 넓고 엔진 소리도 작고, 나도 이차를 좋아하게 됐다. 트럭 트렁크도 사실 자려고 마음먹으면 잘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조금 감옥같지만 말이다. 동생은 언젠가 캠핑장에서 트럭 트렁크에서 자고나오는 사람을 봤다는 말도 해서, 사실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어보였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잘 곳을 찾아 동네로 찾아들어가서 하룻밤 보낼 곳 찾는 것 자체가 어렵고 시간낭비, 돈낭비가 아니겠는가. 텐트옆에 치는 가즈보를 트럭위에 치면 어떨까, 실습을 해보기도 했다. 나중에 그건 전연 아니올시다로 밝혀졌지만 말이다.
어쨋든 첫날 새벽 남편이 가장 먼저 깼고 우리는 뒤따라 일어났다. 차박을 무사히 마쳤다는 것으로 무언가 성취한 느낌이 들었다.
첫째날 아침, 와이파이를 찾아 맥도널드에 가자는데 동의했다. 일어나자마자 출발하여 맥도널드에 도착한 것이 5시가 되기 조금전이었다. 우리 차 말고도 한대가 세워져 있고, 늙으신 분의 모습이 보였다. 맥도널드는 새벽5시에 문을 연다고 되어있었다. 차속에서 기다리다가 들어갔다. 그 새벽에 당연한듯 그곳에 도착한 우리도 그렇지만, 할아버지 두분이 단골인듯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건너편에 앉아있었다.
조금 있으려니 한 할아버지가 작은 책 세권을 가지고 오셨다. 신약성경이었다. 자신들은 매일 이곳으로 와서 아침식사를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책을 주고있다고 했다. 우리가 크리스천이라고 하자, 무척 좋아하셨다. 지난 8년간 1,000권의 성경책을 나눠주셨단다. 그 성경책이 어떻게 소용됐는지는 모르지만, 단 한명이라도 주님을 만나게 됐다면, 그들의 미션은 성공한 것이리라.
조심스럽게 우리 매일 시편을 읽는게 어때,라는 말이 떨어지기 전에 이번 여행은 바이블 캠프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바로 거부를 당했다. 성경은 읽지 않았지만, 매일 식사시간에 함께 기도하면서 여행했으니 그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우리가 배를 타고 왔으면 도착했을 곳, 밀워키에 오전중 도착했다. 개스를 위해서 한곳에 들렀는데, 주변에 흑인만 보였다. 아침에 동양인을 만나는 것은 그다지 흔하지 않은지, 자꾸 시선들을 주었다. 개스바가 있는 곳, 편의점에는 "아이들 두명 이상 출입통제"란 사인이 붙어있다. 미국의 양면, 풍성하고 넓고 깨끗하고 화통한 그런 시설과 사람들 이면에 더럽고, 축축하고, 서로 믿지 못하고, 창살이 쳐진 흑인 동네. 이런 곳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화장실을 오픈하지 않고, 개스를 넣기전에 카드를 맡겨놓으라는(왜냐하면 캐네디언으로 미국인 짚코드가 없어서 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주인을 믿지 못해, 개스넣기를 포기하고 재빠르게 그 지역을 빠져나오며, 잠시 희던득이며 우리를 훑어보던 흑인의 입장이 되어본다.
막내는 친구를 하나 데려왔다. 그 친구는 닌텐도 게임이었는데, "애니멀 크로싱"이라는 게임을 하면서도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 게임은 차속에서 여행내내 막내의 친구가 되었다. 자신이 다스리는(?) 섬에 동물들을 입주시켜 함께 사는 그런 게임이라 했다. 마을을 만드는 것도 자신이 할 일이고, 어떤 동물을 초대해서 마을 주민으로 만들지, 어떤 애완동물을 키울지도 자신이 정할 일이란다. 마을에서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도 내게 소개해줬다. 그 섬에 집을 짓고, 인테리어를 하고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는 것이 즐겁단다. 그래서 그 게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물어보게 됐는데,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고해서 오래전에 구입했는데, 사용한지는 얼마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그안에서 서로 소통을 해야하고, 마을 동물들을 위해서 자신이 해야할 일이 있고, 돈도 벌어야 하고, 건물도 세워야 하고 말이다. 낚시를 해서 그 물고기를 파는 등, 작은 성취들을 느낄 수 있다 하였다. 어떤 때는 현실의 이야기인가 하면, 게임속 이야기여서 놀라기도 하고, 그 게임의 진행을 수시로 보고해서 알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밖에 보이는 풍경을 다 놓치지는 않았다. 욕구가 일어나면 참아내는 것이 부족했던 적이 많았던 점을 생각해보면, 무엇인가 절제하는 힘이 늘어났다고 느끼게 됐다. 현실에 있는 친구들과 게임도 같이 할수 있다고 하니, 게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현재 이 게임은 막내에게 도움이 된다싶다. 한번 빠지면 또 질릴때까지 하는편이라, 지금이 그럴때인가 싶기도 했다.
두번째 저녁 잘곳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레스트 에어리어를 몇개 지나, 더이상 운전하는 것이 힘들게 여겨질때 한곳에 들렀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광경이라니. 우선 하얀색의 피크닉 테이블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평원에 작은 오아시스처럼 나무들이 정성껏 키워져 있고, 그 아래 테이블을 놓았다. 바로 눈에 들어오는 작은 교회. 교회로 가는 길,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놓은 작은 교회가 있었다. 이번 여행은 정말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 싶었다. 해가 고즈넉히 져가는데, 작은 교회가 있는 흰색 테이블에서 저녁을 지어먹었다. 무엇을 먹었는지는 생각이 안나네.
그렇게 아름다운 밤이었지만, 잠을 자는 건 또 다른 문제. 가장 큰 문제는 트럭과 자동차들이 한군데에 있었던 점이다. 전날 잤던 곳은 서로 다른 주차공간이 있었기에 자기에 훨씬 편했다. 트럭들은 자면서도 차 시동을 켜놓는다는걸 이번에 알게 됐다. 아마도 에어컨 때문일까? 좋게 이해해줘서 트럭에 냉동식품이 들어있어서 그런가보다고 했지만, 나무가 실린 차들도 있었으니 그점 때문은 아닌것 같다. 시동을 끄지않은 시끄러운 트럭옆에서 자려니, 이건 고역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두번째 밤에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로 했다. 트럭 뒷좌석에서 막내가 자고, 트럭 트렁크에서 우리가 자보기로 했다. 짐을 잘 정리하고, 플레이 매트를 깔고 두 사람이 누울 자리를 만들어서 남편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것을 벌충하려고 했는데, 밖에서는 부릉부릉, 또 비는 조금씩 오고. 트럭안으로 들어오려면 담넘어 집을 들어오는 것같이 뛰어넘어야지, 약간의 숨통을 위해 수건을 걸쳐놓고 트렁크를 완전히 닫지 않았는데 이것 또한 신경이 쓰이지, 아주 죽을 맛이었다. 이날의 경험 이후 더이상의 차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잠을 푹자야 운전을 잘할 수 있으니. 이렇게 두번째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