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y Jul 24. 2022

빅 혼 마운틴을 만나다

너무 고맙수다 이곳에 내가 있음이

싸우쓰 다코다(South dakota)의 화이트 레이크(white lake) 근처 하이웨이를 달리니, 그럴싸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데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Wall Drug" 이란 큰 사인이었는데, 도대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영 유추해낼 수가 없는 이상한 말의 조합이었다.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수백마일전부터 이 사인이 우리를 인도했다. "벽"과 "약"이 어떻게 조합되는가 말이다. 어떤 사인에는 말도 그려져 있고, 어떤 사인에는 옷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우리 셋이 짱구를 아무리 굴려도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이때 막내가 알려주었는데,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때, "it is coming out of my butt." 이라 말하면, 내가 잘모르면서 하는 말이지만, 이란 뜻이란다. 반대로 "is it coming out of your butt?" 하면 네 엉덩이에서 나온 생각이지? 라는 말이 된다는 것. 자주 쓰이는 말도 아니고, 고급진 말도 아닌 친한 사람끼리 "아무말 대잔치"쯤이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이 "아무말 대잔치"를 자주 벌였다. 그안에는 꽤 신선하고, 예리한 것들도 있었다. 그래도 wall drug의 숨은 의미를 찾지는 못했다. 팝 25센트 월 드럭, 이런 것도 있었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어서 긴가민가 싶지만, 아무래도 상점을 가르킨다 싶었다.



"조금만 더 오면 월 드럭을 만날 수 있어." "절대로 놓치지 마" 이런 사인을 보니, 세뇌되어 월 드럭을 지나쳐간다는 것은 커다란 손실을 의미하는 것같았다. 그래서 월 드럭을 따라 차를 돌려 확인한 바로는 상점들이 늘어선 작은 관광지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아직 상점들이 문을 열지않아서 그 거리에서 한바퀴 돌다왔다. 새벽부터 달린 남편은 옐로스톤에 가기전에 볼거리인 미국 대통령 얼굴이 새겨진 마운틴 러시무어(Mt. Rushmore)를 제외하곤, 다른데서 시간을 뺏길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같다. 사인판을 읽어대고 관심을 보이는 나와, 그걸 잘 받아넘겨야 하는 남편과의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이 솟아나기 시작했다고 볼수 있다.


그렇게 선전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을 이 마을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하니, Wall은 마을 이름이고, 이 마을에 있는 약국(drug)이 성장하면서 다른 가게들도 함께 열어, 카우보이 관련 상품과 카페등이 생기면서 관광객을 이끌었다고 한다. 나만 아니라, 사인을 보면서 저게 뭐지, 그런 궁금증으로 그곳을 들린 사람이 80% 이상은 되리라 본다. 크게 볼거리는 없지만, 잠시 숨을 돌리며 광활한 서부 문화를 상품으로 만나보게 될 것이다.



나와 막내는 죽이 맞아서 한산한 거리를 뛰어다녔다. 돌아오는 길에 꼭 들르자 약속하기도 했다. 시간낭비하지 않아 다행이었던 남편은 그래, 그러자 하면서 월 드럭을 떠나서 러시무어로 갔다.


러시무어로 들어가는 길은 바위가 많은 험한 산길이었다. 싸우쓰 다코다 주에 있는 러시무어에는 마운트 러시무어 국립 기념관(Mount Rushmore National Memorial)이 있다. 죠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의 흉상이 산에 있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초등학교때 큰바위 얼굴이라고 하여, 배운 기억이 나기도 한다. 남편의 여행메모를 잠깐 훔쳐 보면, 1927년부터 1941년까지 15년간 인부 400명이 동원되어 조각되었다고 한다. 그안에 더 숱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겠지만, 구글에 찾아보면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을 것이다. 이 조각상은 멀리에서도 보일 정도로 크기가 크지만, 기념관안에 들어가서 그안의 트레일을 따라 걸어보는 것이 훨씬 실감이 났다. 여러 각도에서 조각상을 올려다볼수 있으며, 미국인들의 자부심과 애국심을 충분히 느낄수 있었다. 나라의 중요행사가 있을때 사용되어질 것 같은 노천 극장에 앉아서 바위를 바라보면서 잠시 쉬었다. 미국의 50개주 국기가 게양되어 있고, 전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꽤 붐볐다.




내가 잠시 운전하는 동안 남편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생애를 읽어주었다. 녹록치 않았던 그의 삶속에서 미국의 고질적인 흑인노예 해방을 위한 전쟁을 수행하고 노예제도를 폐지한 혁혁한 공로를 세웠지만, 그의 삶이 이리저리 아픔으로 굴곡진 것을 보는 것은 안타까웠다. 


운전 이야기가 나왔으니, 고백해야 한다. 나는 자원하여 한번 운전했는데, 내 생각엔 5시간쯤 운전한 것 같은데, 시간은 1시간이 지나있었던 것이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우리가 여행하는 도중에 시간이 1시간 느려지는 경우를 두번 겪었는데, 아무래도 그 1시간이 내가 운전할 때 일어났던 것 같다. 결론인즉슨 나는 2시간은 운전했고, 그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또한번은 도와주겠단 마음으로 빌어서 운전대를 잡았는데, 길떠난지 10분이 채 되지않아 심하게 졸음이 와서 다시 운전대를 넘겨줄 수밖에 없던 일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 최대 3시간을 내리 운전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졸음이 온다면, 이건 아니지 싶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운전을 했다. 10일간 내가 운전한 시간은 겨우 그것뿐이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연약한 여자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내가 잘하는 일과 남편이 잘하는 일이 다르다고, 제발좀 말해주시라.) 차만 타면 졸음이 오는 기이한 경험도 했고, 운전하지 않으려면, 깨어서 운전자를 깨어있게 도와주어야 해서, 그간 퍼날르지 않았던 나만 알고 숨겨두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기도 했다.  


막내딸은 차속 게임을 하자고 했다. 차밖 풍경에 말이 나타나면, "my horse"라고 소리치고 그 숫자를 기억한다. 그러다가 묘지가 나타나서 그걸 먼저 발견한 사람이 외치면, 그간 적립한 말이 없어지는 게임이다. 나는 앞좌석 틔인 데에 앉아있고, 또 눈도 좋아 이 게임에 막강 승자였다. 다만 캐나다에서는 길가에 묘지가 꽤 많은데, 이곳에서는 묘지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 게임의 재미가 반감된다고 딸은 투덜댔다. 이 지역 사람들은 죽지 않는가 하며 웃어넘길 수밖에. 이 게임은 장거리 운전에 동승자들이 졸지않게 해주고, 또 밖의 풍경을 빠지지 않고 볼수 있어서 좋았다. 묘지가 있었다면 역전이 자주 일어났겠으나,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러시무어로 돌아가자. 길위에서 훌륭한 미국 대통령들을 만나면서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에 대한 맞거나 안맞거나 토론이 있었다. 광활한 미국 대륙을 달리니 노예제도 아래 풍족했던 그들이 얼마나 강력하게 노예제도 폐지를 반대했을지 짐작하게 되기도 했다. 무언가 변화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불리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꾸 보수화되어 갔을 거라는 생각까지. 각자의 안전을 위해서 총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것도 수긍이 되기도 했고 말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제도를 없앴듯이, 총기소유를 막는 새로운 강력한 새법이 탄생되려면, 미국내에 더 큰 변화의 물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동쪽 게이트 근방인 코디 마을쪽으로 들어가니, "we don't want  California in Cody" 라는 사인이 보였다. 막내에게 저게 무슨 뜻일까? 물으니, 그애의 답이 아마도 캘리포니아에는 민주당이 우세하니, 공화당 우세지역인 이곳에서 환영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는 단 한군데 예약을 해놓고 있었다. 남편의 전화로 검색해서 동쪽 입구쪽에 있는 저렴한 모텔예약을 해놓았다. 다만 우리가 예약한 날짜보다 하루 일찍 도착하게 되어 다음날 예약을 취소하고 그날 머무르기를 간절히 원했다.


러시무어를 떠나 모텔주소를 넣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랬는데, 옐로스톤에는 아직 근접도 하지 않았는데, 아주 깊숙한 산중으로 네비게이션은 우리를 인도했다. 그 풍경은 우리의 혼을 빼놓았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않았는데, 훅 들어온 그 풍경은 이미 그 유명하다는 옐로스톤이 아닌가 의심하게 했다. 우리가 지나온 길은 Big horn national forest였다. 집에서 잠시 검색해 본 것으로는 록키 마운틴의 자매산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입장료를 받지 않기에 아무런 기대도 없이 들어왔지만, 산을 깍아만든 길을 따라 달리다보니, 벌린 입이 안다물어지는 그런 경치에 처하게 됐다. 


그랬다. 남편을 껴안았다. 고맙수다. 넘 감사하외다. 나를, 우리를 이곳으로 오게 해주어서. 나는 아마도 잠시 한눈으로 눈물을 그렁였을 수도 있다. 그런 인사를 들어도 모자람이 없는 그의 선택과 결정이었다. 나와 함게 막내도 차가 주차되었을 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자유를 만끽했다. 그리고 그런 탄성이 흘러나왔다. 우리가 이곳에 왔단 말이지, 이런 말이.






그 산속은 웅장했지만, 편안했다. 차가 몇대 주차되어 있지 않았고, 제 갈길을 가는 차들이 보이는 곳에서 우리는 산속으로 조금 들어가봤다. 더 넓게 퍼진, 공간들이 나온다. 반대쪽으로는 조금 더 높은 산맥들이 줄지어 있다. 진흙놀이를 한듯 붉은 진흙 돌덩이 산세도 기막혔고, 황색이 섞인 바위산도 볼만했다. 다만 산을 깍은 길이라 운전자는 한눈팔지 않아야 하니, 중간중간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폭넓은 길가 쉼터를 만들어놓은 것은 꽤 다행이었다.


빅혼 산은 우리에게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상승시켜주었다. 산이 없는 곳에 살다가, 해발 7천ft(2천 미터)라고  기록된 곳을 운전하다 보니, 우리들의 귀가 실제로 막히는 경험도 했다. 남편은 코와 귀가 약한 편인데, 한동안 말소리가 안들린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나중에 조금씩 호전됐지만, 사실 여행후 지금까지 귀가 조금 이상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기막힌 풍경이라고들 하는데, 이렇게 실제로 귀가 막히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렇게 빅 혼 포레스트를 지나 그레이불(greybull)에 있는 우리들의 숙소에 도착했다. 아주 한적했고, 주인의 딸쯤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하룻밤 당겨주어 그날 마침내 침대가 있는 방에 묵을 수 있었다. 









이전 01화 3년전 꿈을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