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취향
지금도 그 차이가 무얼까 생각한다. 둘 다 움직인다. 하나는 움직이며 생명이 있다. 하나는 움직이지만 생명이 없다.(엄밀히 말하면 생명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둘 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보기 힘들다. 동물은 원한다면 동물원에 가면 있긴 하다. 그러나 자유로운 동물을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막내는 간헐천은 그저 끓는 물이며 언제든 찾아가면 만날 수 있어서 흥미가 없다고 말한다. 간헐천 구역에는 스프링도 산재해 있다. 동물은 숨어서 움직이므로 어디서 만날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대되고 발견하면 기쁘다는 것이다. 상상력을 조금 발전시키면 나는 간헐천이고, 저는 동물인가? 여러분은 어떤 편인가?
그 애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금방 싫증내기도 하고, 몰두해서 좋아하기도 한다. 반면에 나는 한 군데에서 시시때때로 바뀌는 계절(환경)에 따라 내 모양을 변화시킨다.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색으로 변신을 시도해본다. 핫 스프링의 색처럼. 그렇구나, 우리집에는 동물도 살고 간헐천도 산다.
옐로스톤 공원 어느곳으로 들어오던 2차선 도로이다. 샛길은 없다. 지도로 보면 도로가 각진 8자처럼 생겼고, 그 8자에서 뻗어나간 길들이 있다. 그 길이 공원 입구를 향한다. 겹치지 않고, 공원을 한바퀴 돌 방법은 없어보인다. 어느 곳으로 가든, 중복되는 지점이 있다. 우리는 공원 탐험 두번째날 서쪽 입구로 들어와서 첫번째 만나는곳, 메디슨(Medison)에 있는 비지터 센터에서 흡족한 쇼핑을 했다. 두고온 아이들을 위한 옷도 사고, 우리 세명이 입을 티셔츠도 골랐다. 메디슨에서 북쪽 길을 따라 갈 수도 있고, 남쪽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우리는 남쪽으로 향해 갔다. 그 지역에 스프링, 풀, 간헐천(Geyser)이 많이 있었다. 그중 한곳이 Biscuit Basin이었다. 비스켓이란 얼마나 바삭거리고 달콤하고, 부서지기 쉬운 단어인가? 이름만으론 호감을 끌진 못했다. 나중에 사진을 보고 알았다. 마치 부스러진 비스켓처럼 생긴 간헐천이 있었다. 큰 욕조처럼 생겼다고 해서 베이진이라 부른단다. 말하자면 크고 작은 베이진이 모여있는 곳? 양재기 만한 곳도 있고, 꽤 큰 욕조같은 것도 있고, 깊이와 넓이와 모양이 다른 욕조들이 모여있었다. 비스켓 베이진에도 여러 종류의 간헐천과 스프링, 그리고 연못이 있었다. 그 모두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다.
나는 비스켓 베이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풀을 만났다. 그 물은 빨아들일 듯, 깊이에 따라 다른 남색을 품고 있었다.
사파이어 풀(Sapphire pool)이었다. 그 트레일에 줌렌즈 하나만 들고 나갔는데, 사파이어 풀이 바로 곁에 있어서 전체를 다 담을 수가 없었다. 핸드폰으로 담았지만, 마음에 차지 않았다.
모두 한바퀴 돌고 다시 차로 돌아가서, 다음 행선지로 떠나야 할 즈음, 두 사람에게 애교?를 부리며, 와이드 렌즈를 가지고 가서 사진을 다시 찍고 오면 안되겠느냐고 말했다. 사실 그냥 떠나도 큰 문제는 없는데, 내 욕심이었다. 둘다 차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갔다오겠노라고. 흔쾌히 그렇게 말해줘서 렌즈를 갈아끼고 밖으로 나갔는데, 그 몇분 사이에 날씨가 변하고 있었다. 비가 조금씩 오더니, 바람이 막 불면서 나중에 보니, 콩만한 무엇인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우박이었다. 7월, 한낮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그런 날, 그렇게 변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됐다. 사파이어 풀은 더이상 같은 색이 아니었다.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고, 우박이 떨어지고. 아참, 내가 사진을 찍는다 하니, 동행해주겠노라며 막내가 쫓아나왔다. 우리는 사파이어 풀을 다시 찍은 것보다도, 한여름에 만난 우박이 더욱 재미있었다. 왜 다시 가고 싶어졌을까? 그 결정 때문에 생긴 급작스런 경험이 여행에 매콤한 양념으로 뿌려졌다.
사실 막내는 간헐천 보는 일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한번 차에서 내리면 트레일을 따라 돌게 되는데 몇군데를 제외하곤 주목이 되지 않는가 보다. 농담처럼 막내는 "그저 끓는 물"을 보는 것이 뭐 그리 신기하냐,는 것이다.
그랬던 막내가 관심을 보였던 간헐천이 있었다. 바로 Old Faithful의 가이저였다. 평소에는 숨죽이고 있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땅속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지, 분수처럼 물이 솟아올랐다. 한번 물을 뿜어내고 나면, 사람들은 다음 쇼(?)까지 기약없이(9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올드 페이쓰풀에 갔을 때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모여있었다. 많이 기다린 사람은 거의 한시간 이상 기다렸을 것이다.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그 광경을 직접 볼수 없다.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기어들어갔다. 우리가 기다리기 시작한지 20여분이 지나서 올드 페이스풀 분수가 터졌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대단했다. 그리고 막내의 환호성을 들을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어서 그 물줄기의 위력을 느낄 수는 없지만, 거의 7층 높이의 물줄기가 솟아오른다. 매번 똑같지는 않지만, 믿을만하게 뿜어낸다고 해서 Old Faithful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곳을 빼고는 시큰둥했다. 우리가 다른 가이저를 가려고 하면, 가고싶어하지 않아서 차에서 쉬게 하고 우리끼리 갔다온 곳도 있다. 가보지 못한 다른 곳(가이저) 타령을 하자, 마침내 막내가 불평을 했다. 일정에 까탈을 부리지 않다가 한번씩 폭발했다. 막내에게는 가이저는 "봐주는 것"이고, 동물과 강과 쇼핑이 관심사였던 것 같다. 사파이어 풀보다도 더 색이 영롱한 대표 가이저를 아직 못본 것 같은데, 막내의 협조를 얻어내기 쉽지 않아보였다.
부랴부랴 쉬어갈 강, 수영할만한 곳을 찾는다. 그제서야 얼굴이 펴진다. 게임 친구 하나만 데리고 왔으니 우리가 친구가 되어주어야 하는데, 이렇게 취향이 다르다. 이 강물도 수영하기에는 너무 물이 찼가왔는데, 그래도 막내는 땡볕을 걷는 것보다는 강에서 노는 것이 더 즐거운 것 같다. 수영을 하고 물에서 좀 시간을 보낸후 길가다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곳을 발견했다. 바로 엘크가 있었다. 풀숲에 앉아있다. 왕관보다도 더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그러나 우아한 그뿔을 달고 어떻게 살아갈까, 염려스럽다. 막내는 언제 그랬나싶게 다시 표정이 살아났다. 이리저리 사진을 찍는다. 엘크라고 하는데, 사슴보다 훨씬 크기가 크고 잘생겼다. 아이가 보고싶어하는 무스는 또다른 사슴과인데, 이 동물은 엘크보다 훨씬 더 크고 뿔의 모양도 조금 다르다.
그날 아침 이야기를 하자. 우리는 그걸 "모닝 센스티브"라고 불렀다. 아침이면 살짝 예민해지는 사건들이 생기곤 해서, 우스개로 넘기려고 만든 말이었다. 텐트친 첫날이었다. 옐로스톤 공원은 야생성을 부추기고, 그런 감성을 담아 캠핑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설픈 차박에서 본격 캠핑의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는 더욱. 서쪽 게이트로 나와서 캠핑장을 찾아나섰다. 검색에서 뜬 한군데 전화했더니, 받지 않았고, 두번째가 Koa였다. 캐나다에도 있는 프랜차이즈 캠핑장이니, 믿을만 했지만, 새로운 맛은 없었다. 어쨋든 쉰밥이라도 들어야 할때였던 고로 그곳으로 향했다. 아직 자리가 남아있었다. 캠핑장은 쉽게 생각하면, 자리만 빌려주는 사업이므로 그깟 땅 조금, 이란 생각이 드는데 캠핑 사이트의 가격도 만만치 않다. 특별히 서쪽 게이트에서 만난 코아 캠핑장은 전기, 물이 필요없다고 말했는데도, 하룻밤 70달러에 육박했다. 이틀을 묵기로 했다. 이제는 자연에 치르는 값, 낭만에 치르는 값이 대단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RV나 전기 물 공급이 되는 사이트는 100달러에 달할 것이 틀림없을 것같다. 속으로 제발 돈계산좀 하지 말라고 나를 다독인다.
우리 사이트는 꽤 넓었고, 울타리쳐진 곳 옆이었다. 한편엔 다른 텐트 캠퍼가 있었고, 다른쪽엔 차2대가 세워져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옆 텐트 아저씨가 "하이 네이버"하고 인사한다. 이날 우선은 트럭에 텐트를 쳐볼 생각을 했다. 텐트옆에 치고 부엌살림도 하곤 하는 천막을 트럭위에 치면 어떨까, 집에서 궁리를 했었다. 천막밑에 트럭이 들어가면, 괜찮지 않을까, 했던 것은 남편의 아이디어였는데, 처음엔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뒤뜰에 천막을 쳐놓고 자로 재고 했다. 천막과 텐트 사이 빈 공간을 커튼으로 막아야 하는데 하면서 남아있던 텐트 천막을 오려서 커튼도 만들었다. 천막 한쪽을 막는 천이 있었기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집에서는 가능한지 실험해보지 않고 가지고 왔다. 트럭보다 천막이 넓어서 일단 가능한 생각이었는데, 문제는 너무 크다는 데 있었다. 막상 캠핑장에서 천막을 트럭 위에 세우니 그럴싸했는데, 언니에게 수선해달라고 맡긴 양 사이드 커튼 가지고는 그 둘레를 막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상상이 안 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는 "트럭 텐트 만들기 실패"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그래서 이젠 진짜 텐트를 치기로 했다. 텐트까지 잘 챙겨 왔는데, 캠핑이 이번 여행의 주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장비가 허술했다. 텐트 위에 미리 쳐둔 천막까지 덮으니, 하루 저녁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 저녁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10도를 오르내리고, 아이들 놀이방에 쓰는 매트리스에서 잔 나와 남편은 좀 춥지만 그럭저럭 잤는데, 새벽에 보니, 막내 자리에 요가 매트리스를 펴줬는데, 밖으로 떨어져서 자고 있었다. 침낭 한 겹인지라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염려스러워, 옆으로 살짝 밀어줬는데 그 바람에 잠을 깨더니, 문자로 옮기기 힘든 신음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밖으로 확 뛰쳐나가버렸다. 화장실 갔다온다고 그애가 나간 시간은 새벽 4시쯤, 그덕에 우리도 깨어서 지금 무슨 상황인가 가늠해보고 있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데 소식이 없었다. 나는 별일이야 있겠어, 하면서 졸면서도 걱정이 되긴 했다. 1시간 이상 기다리다가 남편이 한번 나가서 찾아보자고 했다. 그렇게 나섰는데, 저 멀리서 막내가 터덜터덜 걸어온다.
아무도 없는 빨래방이 있는 공공의 장소에서 추위를 피해 있다가 온다고 말한다. 우리는 트럭을 타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차안 공기가 더 따뜻할 것 같아서. 그렇게 동네를 몇바퀴 돌았는데 문을 연 곳은 없었다. 맥도날드 주차장에서 문을 열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렇게 추위에 떨다, 자리를 박차고 나간 딸을 태우고 새벽에 차안에 앉아있으니, 둘째 어릴때가 생각난다. 저녁이면 자지 않고 칭얼대던 아이를 차에 태우고 동네를 돌아다니면 조금씩 진정되고 잠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성인이 되어도 추위를 참을 수 없어, 자신의 본성이 막 나오는 막내를 보니, 언제 다 클까 싶다.
막내의 눈치를 보며, 새벽에 문을 여는 식당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 동네 6시에 문을 여는 식당에 첫손님으로 들어갔다. "아웃 포스트(out post)"라는 식당은 우리들의 마음에 들었다. 뭐랄까, 보안관이 설쳐대던 서부시대 콘셉트로 꾸며졌다. 우리는 언몸을 녹이며,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사실 막내의 감정 기복을 우리가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염려한 부분이다. 여행지에 가면 서로가 좋아하는 부분이 다르고,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다르고 말이다. 나는 열심히 보고, 열심히 찍고(?) 한 군데라도 더 들르고,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라도 기회가 되면 경험해보려고 하는 편이다. 언젠가의 여행에서 보는 것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어떤 음식점을 가느냐 하는 것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과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정말 참기 힘들었다. 시간이 없어서 거리 음식을 사 먹더라도, 볼 것 할것을 해야되는 나와, "나는 밖에서 기다릴테니 모두들 보고들 오삼"하는 사람을 보니, 왜 여행지까지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막내와 여행하니, 그애도 그 지역의 맛있는 음식을 사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내가 참을 수 없어했던 그 친구의 여행법에 가깝다. 그러나 그런 잠시잠시의 불협화음을 빼고는 사실 너무 즐거워했다. 엄마아빠를 따라서 차박도 했고 추위에 진저리를 쳤지만 텐트에서 자기도 하고 말이다. 그날 아침잠을 설치게 한 댓가로 하루 세끼를 그애가 꿈꾸던 멋진 레스토랑에서 해결했다. 저녁을 먹은 곳은 서비스가 형편없어서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이 그다지 즐겁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어쨋든 막내도 많이 참았겠지만 우리도 막내를 맞추느라 많이 노력했다. 막내는 우리들의 공주님이므로. 아 그리고 막내를 차 뒷좌석에서 재우고, 우리가 차 트렁크에서 잤다면, 새벽 나들이는 없었을 수도 있다. 텐트를 가져가는 게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