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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Jul 06. 2023

베트남 다낭, 그 활기찬 나라

귀족들의 피서지였던 바나힐, 그 규모에 놀라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이라 그런지, 밤까지 온도가 후덥지근하다. 베트남에 갔을 때 느꼈던 후끈한 더위들이 밀려든다. 베트남에서 가이드에게 선물받은 손부채를 부치며, 그때 기억을 불려들여보자.


한국말을 어느정도 하는 월남인들이 많았다. 특별히 우리가 갔던 다낭이란 곳은 경기도 다낭시라고 불린다고 할 정도로 한국인들이 많이 보이고, 한국인들을 상대로 한 관광사업이 인기였다. 우리는 언니가 홈쇼핑에서 구매한 다낭 3박5일 패캐지상품이었다. 내가 가고싶었던 곳은 하롱베이였는데, 사실 어디든 상관없기는 했다.


20여명이 함께 움직였는데, 모두 사전학습이 되어있었는지, 옵션관광을 모두 하겠다고 해서, 누구 하나 남겨진 사람없이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옵션을 하지않으면, 그 시간을 뜨거운 차속에 있을 수도 없고, 호텔에 남아있을 수도 없으니 가는 사람이나 남는 사람이나 서로 마음이 좋지 않았겠지만, 상품이 저렴했던지라 옵션 선택에 큰 어려움들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들을 안내했던 가이드는 그의 말로는 "한번 갔다온" "건강이 안좋아서 고생한" 사람이라고 해서, 조금 안타깝게 느껴지는 면모도 있는 30대 남자였다. 그가 시간이 있을때마다 이야기해준 것들이 흥미로왔다. 특별히 월남의 역사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외세와 맞서싸웠는데, 결국 외세를 몰아냈다는 점에서 민족적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했다. 한국군이 가서 남겨진 라이따이한들 때문에 한국인들에 대한 미움이 있을법한데도 가이드 말에 따르면 그들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특별히 한국 관광객들을 위한 특별 비행기를 편성해서 매일 20대의 비행기가 들어온단다. 호텔도 많이 들어서고, 광광산업에 크게 치중하고 있다고 했다. 라이따이한들은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중간관리자로 인기를 얻고있다고도 한다.


최근에는 박항서 때문에 한국인에 대한 대우가 더욱 좋아져, 가이드도 박씨여서 카페에서 큰 대접을 받은 적도 있다고 소개해줬다.


바나힐에 있는 천사. 곳곳에 여러 모양으로 분장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천사가 아닌가싶은 아름다운 아가씨가 시선을 끌었다.


이번 여행은 정말 오랜만에 자매들끼리 하는 여행이라, 문제될 것이 거의 없다시피했다. 건강에 큰 문제가 있는 사람도 없었고, 여행을 즐기기에 오감 육감이 발달한 60대를 전후한 나이이기에 더욱 그랬다. 여행지에서는 내 욕구를 줄이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언니 동생의 넘쳐나는 에너지를 내가 따라잡지 못할때도 있었다. 가령, 하루종일 일정을 쫓아다니고 호텔에 들어와서 쉬었으면 하는데, 밤늦게 호텔앞에 있는 해변에 나가자고 하더란 말이다.


호텔앞 해변은 광활했다. 5월초지만 여름밤의 날씨로 남녀가 쌍쌍이, 가족이 오손도손 저녁먹고 놀러나온 사람들 속에 우리도 섞인다. 해변에는 카페에서 내놓은 원색의 폭신한 의자들이 눈에 뜨인다. 우리는 두르고 나온 스카프를 풀어서 모래밭에 펴고 함께 앉았다.  둘째날인가는 모래밭 카페에 앉아서 맥주를 주문해 기분을 냈다. 둘러보니, 젊은이들이 대다수다. 월남에 오니, 오토바이 타는 젊은이들, 해변을 거니는 연인들, 꼬맹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가족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젊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연애하기 딱좋은 환경이 아닐 수 없다.


망고가 유명하다. 말린 망고, 과일이 풍성했다. 두번째 메뉴판을 잘 보면 한국말로 적혀있다. 소시지 등등..


공예품 작업실로 보인다.

베트남에서 볼거리는 사진으로 대신하기로 하자. 다만 사진에 없는 이야기가 있다면 마사지에 대한 것이다. 3일간 매일 저녁 마사지 일정이 들어있었다. 월남 여자들이 손이 맵기로 유명하다고 가이드가 말했지만, 정말 대단했다. 작은 몸집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말이다. 그들은 한국말도 조금씩 했는데, "아파요?" "세게 할까요?" "엎드리세요" 등등이었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조금 야한데, 마사지 용어는 그런 것들이 아니겠는가? 한군데에선 스톤 마사지까지 해줬다. 왼쪽 어깨가 많이 아팠는데, 그때 이후로 좀 풀린것 같다. 하루 2시간씩이나 받았으니, 이건 조금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들이 몸을 많이 써서 걱정되기는 했지만, 일인당 팁을 4불씩 주라 했고, 또 맛사지 비용에서 얻는 것이 있을테니 돈버는 재미로 하겠다 싶었다. 그런 서비스를 받는다고 하면, 이쪽 캐나다에서는 정말 대단한 금액을 줘야 할 것이다.


바나힐이라는 데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했다. 그곳은 프랑스에서 베트남을 식민지 지배할때 귀족들의 피서지로 세운 곳이란다. 베트남이 덥기 때문에 서늘한 산속에 성을 짓고 저희들의 아지트를 삼았다는 것이다. 산꼭대기에 성을 쌓았을때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땀과 피를 흘렸겠는지. 지금은 개보수를 거쳐서 관광자원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곳에서는 춤 댄스 공연등, 볼거리가 풍성했다. 그런 다음 골든 브리지를 갔는데, 거대한 손이 다리를 받치고 있는 형상의  다리였다. 그 손이 너무 커서 신의 손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돌을 깎아 만든 것인가 했는데, 유리섬유로 만들어졌단다. 포항에서 큰손을 보고 베트남에서도 손을 대하니, 한국과 베트남이 통하는 구석이 있다고 보인다.



나도 천사와 함께. 바나힐에 가려면 케이블카를 타고 꽤 올라가야 한다. 산속 귀족들의 마을이었다. 규모는 상상 이상이다. 오른쪽 사진은 케이블카를 타고가면서 찍었다.
이 모든 건물들이 산꼭대기에 있는 것들이다.
궁전 하나하나 멋졌고, 한쪽편엔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베트남에서 아주 흥겨웠던 일중에 바구니배를 탔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 가니, 정말로 큰 바구니로 보이는 배가 있었다. 노를 젓는 사람과 두사람이 함께 탈수 있어서 동생은 혼자 타고, 언니와 나는 다른배에 탔다. 이 사람들이 한국 트로트 노래를 틀어놓고, 흥을 돋운다. 몇몇 사람은 서툰 발음으로 한국노래를 부른다. 바구니배를 타고 야자수 강가로 노를 저어가는데, 중간중간 묘기를 보여준다. 바구니배들이 묘기를 보여주는 배를 둘러싸고 응원을 보낸다. 그는 배를 뱅뱅 돌리기도 하고,  기우뚱기우뚱 걱정될 정도로 배가 흔들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주는 돈을 노를 들어 받아간다. 한푼이라도 벌기 위해 그럴 수도 있지만, 여행객들에게 그런 신나는 기억을 만들어주려는 노력이 고맙다. 그러고보면, 베트남은 물의 나라이기도 하다. 호이안에 가서는 소원배를 탔다. 촛불을 나중에 붙여서 강에 띄우는데, 소원을 비는 것보다 그 종이와 초가 강에 그대로 버려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베트남에 한강이라는 강이 있어서 그곳을 크루즈로 여행도 했다. 바닷물도 있고, 강물도 있고, 나는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한다.


왼쪽은  한강 크루즈를 타고 찍은 사진. 서울처럼 이름이 같은 한강(Song River)이 흐르니, 정말 신기했다. 뒤쪽으로 용다리가 보인다. 오른쪽은 바구니배를 타고 노는 모습.



다낭의 물가는 무척 싸다며, 일행중 한팀은 저녁식사후 시장방문을 했다고 나중에 말해줬다. 우리보다 먼저 다낭을 방문했던 시카고 언니에게서 주의할점을 언질받았는데, 커피와 침향 파는 곳에 여행객을 데려가는데, 그곳에서 큰돈쓰지 말라는 것이 있었다.


함께 했던 가이드가 믿음직하고 좋았는데, 처음에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운을 떼었는데, 나중에 침향을 선배가 보내줘서 그것을 먹고 회복했다고 하는 말을 했다. 가이드의 개인적 이야기에 공감을 하면서 들었는데 마지막 침향에 이르러서, 이 모든 것이 지어낸 것이라면? 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는 쓰나미때 그 주변에 있다가 겪은 일도 말했고, 터키 가이드할때 이야기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었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이고, 침향까지도 사실일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침향을 팔기위한 스토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미안합니다 가이드님) 그 침향은 베트남 정부가 관리하고, 나무를 키워 상처를 내고 그 상처가 아물면 또 상처를 내고 해서 모여진 것이라는데, 그 침향을 건지기 위해서는 50여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날 한가정이 그 침향 세트를 샀다. 캐나다돈으로 해도 2천달러가 넘는 금액이었다. 아내의 건강을 염려하여, 확 질러버린 자상한 아저씨에게 우리는 환호했다. 그분의 아내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또하나의 상품 위즐커피 판매점에서도 혹하는 이야기에 몇몇이 커피를 샀다. 나는 커피 찌꺼기로 만든 각질 제거제를 하나 구입했다. 남편 발 뒤꿈치에 각질이 자꾸 생겨서 그것에 쓰면 좋을 것 같아서. 집에 와서 해보니, 처음엔 각질이 벗겨진다 생각했는데, 테이블에 바르고, 한참 문지르니 각질처럼 몽글몽글해지는 것을 볼수 있었다. 속지않기로 굳게 결심하곤 나도 당하고 말았다. 큰 돈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참고로 위즐커피는 족제비가 싼 똥으로 만든 커피란다.


가짜 명품점에도 가고, 아주 짬짬이 돈쓰게 만드는 여행이기도 했다. 명품에 관심이 있는 우리 일행 모여사는 그곳에서 비싼 가방 하나 장만했는데, 명품가격의 10% 가격이라는데, 나는 그조차 비싸서 쳐다보지도 못하겠드만.


베트남은 보행자 신호등이 거의 없는듯 보였다. 그뿐 아니라 사거리에 신호등이 없는 곳도 많다. 어떻게들 운전하고 다니는지, 불가사의한 곳이다. 호텔에서 길을 건너야 해변가로 가는데, 그곳을 가기 위해서 "길건너기 대작전"을 감행해야 한다. 사람이 가면 차가 서겠지 했다가는 당하기 십상이다. 우리가 하도 길을 건너지 못하고 쭈빗대자, 현지인 하나가 우리들과 함께 길을 건너주었다. 말하자면 차가 없는 틈에 요리조리 피해 길을 건너야 한다. 사람이 우선인 환경에서 살다가 차와 오토바이가 우선인 곳으로 가니, 정말 그것 때문에 살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한국말을 조금씩 하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한국돈, 미국돈으로 해결되는 일들도 많아 베트남은 여행객들에게 편리성이 많다. 다음에 간다면, 도시보다는 자연을 볼수 있는 하롱베이같은 곳을 가면 좋을 것같다.


자매 셋 여행온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어디서나 죽이 맞아 많이 웃고, 즐거워하는 우리들을 본 연세든 아주머니는, 당신이 보기에 우리들이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며, 최고로 여행을 즐기는 것 같다고 덕담을 해주셨다. 가이드가 너무 빨리 걸어서 뒤쫓기 어려운 분들도 있어서 중간에 서서 뒷분들이 쫓아오나 챙겨야했다. 한국가이드와 베트남 가이드가 함께 움직이는데, 그 이유는 베트남 가이드를 고용해야 하는 법 때문이란다. 한국 가이드는 어떤 곳은 입장할 수가 없다며 밖에서 기다릴 때가 많았다.


그래도 우리 가이드의 선한 눈매가 많이 떠오른다. 다시 만나게 되면 "침향의 진실"을 알게 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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