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의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유난히 프랑스에서 비염이 심했었고, 힘들었던 나날들이 길어지니 걱정이 돼서 더 이상 이렇게 불편하게 지낼 수는 없다며 한국으로 돌아와 이비인후과 진료를 갔다.
의사 선생님이 알레르기 테스트를 제안하셨다. 내 팔을 바늘로 여러 군데를 찌르고 피를 내더니 그 위에 어떤 액체를 발랐다. 그리고 팔 전체에 작은 바늘들이 들어갔던 자리는 모기에 물린 것처럼 동그랗게 부어오르고 피가 고여 나왔다. 조금 끔찍한 모습의 검사에 당황했지만, 이런 방법으로 우리의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결과 상담에서 내게 풀, 꽃가루 그리고 고양이 알레르기가 조금 심했을 텐데라고 하셨다.
순간 내가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동안 살면서 특정 계절에 항상 휴지를 달고 살며 힘들었던 일, 그리고 프랑스에서 겪었던 일들을 마침내 이해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고양이를 접할 일조차도 거의 없었다. 지금에 비해 내가 어릴 땐 길거리에도 그다지 많이 보이지 않았고, 밤에 어딘가에서 소리만 조금 들릴 뿐이었다. 어느 날은 아빠가 길고양이를 '나비야 쭈쭈쭈~' 하고 불러 밖에서 먹을거리를 주는 것을 몇 번 인상 깊게 봤는데 그 이유는, 그게 우연한 단 하루가 아니라 계속해서 같은 고양이가 아빠의 길들임에 넘어가 매일 다가온다는 게 참 신기하게 느껴졌고 많이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아빠는 동물과의 소통에 있어서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교감을 잘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아주 잘 다룬다. 그렇게 동물을 정말 좋아하는 아빠가 어느 날 그렇게 며칠 동안 먹이로 꼬신 아기 고양이를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일단 나라는 사람 자체는 동물에 대한 애착이 그리는 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좋아하는지 아닌지도 생각할 겨를도 없고, 애착을 가질 기회조차도 없었다. 그래서 그 사랑스러운 아기 고양이를 보고도 주변만 맴돌고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때 내가 고등학생이었는데 호기심보다는 여러 가지 이유로 경계심이 컸던 것 같다. 또한 강아지를 제외한 다른 동물은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라고 인식했다.
특히 아마도 자연스러운 엄마의 영향으로 나는 동물을 좋아해 볼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엄마는 워낙 깔끔한 분이셔서 동물을 집에 들이는 것은 상상도 못 하는 일이었다. 그런 환경의 영향인지, 동물의 털은 '더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서 아무리 예쁜 강아지가 있어도 쳐다보는 게 전부였고 접촉하는 일은 아예 없었다. 혹시라도 만지게 되면 깨끗하지 않으니 그 바로 뒤에는 무조건 손을 박박 씻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처음부터 만져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특히 어린 시절의 나는 유독 손에 뭐가 묻고 닿는 것을 혐오했고 내가 모르는 낯선 무언가가 손에 살짝만 스쳐도 무슨 끔찍한 사건처럼 반응했다.
프랑스 유학을 와서 아주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었고, 또 그전에 알게 된 친구들도 멀리서 온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특히 집으로의 초대 문화가 익숙한 이곳에서 그 친구들의 집, 친구의 친구 집, 심지어는 그 친구의 부모님 집 등에 초대받으며 여기저기 프랑스인들이 사는 가정집으로의 방문이 잦아졌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수많은 기억 속에 나는 거의 독한 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코가 꽉 막히고 재채기를 하고 결국은 아픈 사람이 되어 그 집을 나오곤 했다. 그런데 그때는 내가 알레르기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냥 몸 상태가 너무 안 좋다고만 여겼다. 그리고 또 기숙사로 돌아가서 몇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괜찮아져 있어서 아마 그 문제에 대해 딱히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알레르기 테스트 덕분에 그동안 내가 왜 심지어는 지하철에서 가끔 옆에 타는 사람들 중 내게 유독 재채기를 유발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고양이가 있는 친구네 집에만 가면 들어가자마자 현관에서부터 재채기로 콧물이 줄줄 나고 눈이 따끔했는지 심지어는 아픈 사람처럼 아주 좋지 않은 상태가 되었던 건지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이 테스트를 계기로 모든 지난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생겼다. 돌이켜보니 프랑스는 많은 집에서 동물과 공존하고 있었다.
'고양이 알레르기? 별의 별게 다 있네. 어차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이젠 확실하게 알았으니 내가 피해야지.'
게다가 친구네 집에서 본 고양이들은 낯선 자가 오면, 일단 어딘가로 숨어버리거나 자신의 영역으로 쏙 들어가서 내가 집에 갈 때쯤에나 잠깐 나와서 발소리도 없이 조금 기웃거리는 정도였다.
그래서 내가 알게 된 고양이라는 존재는 '왜?'라는 의문을 많이 주는 생명체였다.
아니 도대체 왜 키우는 거지? 고양이 사료, 부속품만 해도 엄청나게 비싸다는데, 게다가 고양이가 어쩔 때는 물고 할퀴기도 한다며. 게다가 얘네들은 강아지랑 달라서 사람이 와도 반응도 없는 게 대다수고 강아지처럼 꼬리를 격렬하게 흔들고 반겨주는 행동도 안 한다며. 그럼 그냥 밖에서 한 번씩 보면 될 텐데 굳이 집으로 들여와 키우는 걸까.
이런 모든 것을 다 따져봤을 때 내게 고양이는 아무리 생김새가 귀엽다 해도 결론적으로 무미건조하게 '응, 귀엽다.' 하는 정도지 엄청나게 기르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건지도 난 모르겠다. 그래서 어느 날 동생이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데려왔고 그를 한 번씩 동생의 집에서 보게 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응 귀엽네'
강아지는 인간과 공존하고 정서적, 육체적으로 교감하며 함께 살아가는 반려의 느낌이라면, 고양이는 그저 마이웨이 자기 인생 사는 생명체 아닌가. 내가 유학하던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쯤에는 한국에서는 고양이를 집에서 기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어딘가에 분명히 있었겠지만 나는 알지 못했고 들어본 적도 없었다. 정말 소수의 사람들만 고양이를 집에 들이던 시대였다. 주변 지인 중에는 아무도 고양이와 관계를 맺는 사람은 없었고,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었다는 이야기 정도 외에는 집에서 그런 동물과 산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프랑스에 와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의 집에 고양이가 있다.
'아니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 아무 쓸데없는 장식용 동물을 왜들 그렇게 키우는 걸까? 단순 관상용인 것 같고 돈도 많이 들고 여러모로 집안 꼴이 난리가 나는데.. 고양이, 대체 왜 좋아해?'
고양이 침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어 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변해버리는 나는, 동물과 함께 사는 건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동물의 털은 깨끗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을 여전히 갖는 나는, 고양이를 도대체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던 나는, 그런 나는 서른다섯 살에 10살 된 고양이를 입양한다.
가까워질 수 없는, 가까워서는 안 될 우리의 사이는 결국 조금도 멀어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