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한 살 한 살 더 먹어 갈수록 나를 조금 힘들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이 어렵다.
사소하게는 영화를 보는 것, 음악을 끝까지 듣는 것,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마저도 딴생각을 하고, 요리를 시작해 놓고 끝까지 몰입이 안 돼서 결국 마지막 즈음에 생뚱맞게 다른 것을 넣어버린다거나 시간을 안 지키고 더 두거나 덜 두거나 해서 요리를 망쳐버리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크게는, 내가 시작한 일을 잘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왜냐면 단순히 몰입이 안 돼서.
내가 성인 ADHD가 있다는 것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몰입과 집중은 다르다. 몰입은 어떤 것을 할 때 온전히 마음을 쓰고 담고 내 의지로써 해야 하는 것이라면, 집중은 보통 그냥 해야 할 일들, 마음까지 쓰고 담지 않아도 되는 책임감 있는 일을 해 내야만 할 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뜻을 찾아보았다.
집중 : 주의나 생각을 한 대상에 모으는 것. 비교적 의도적이고, 노력으로 유지하는 상태
몰입: 어떤 활동에 완전히 빠져드는 것. 무의식적이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깊은 집중.
재미있는 점은 몰입이라는 단어 안에 집중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다시 말하자면 , 나는 집중은 물론이거니와 몰입도 정말 힘들어졌다.
그 말은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자체도 잘 되지 않고 어쨌든 자연스럽게 무언가에 빠져드는 게 무척이나 힘들어졌다. 심지어는 누군가를 또는 어떤 것을 사랑하는 것,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조차도 사실 몰입이 안되고 힘에 겹다. 그리고 그 힘듦을 회피하고 싶다 보니 그마저도 끝까지 해내지 못하게 되었다.
쥬도와 보내는 시간은 아주 단순하지만 매우 온전하다. 일단은 내가 그와 엄청 대단한 미션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상을 살아갈 뿐이기도 하고 그 단순함이 주는 온전함이 하루의 원동력이 되기까지 한다.
단순하다는 의미는 그는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내가 하는 그만큼의 반응이 곧바로 온다.
내 입장:
츄르를 준다= 먹는다.
만져준다=눈을 지그시 감는다.
쥬도입장:
심기가 불편하다=솜방망이를 휘두른다
원하는 것이 있다=내게 와서 앞발로 툭툭 친다.
와 같이 뭐든 반응이 일차원적으로 바로 온다.
물을 갈아줄 때를 생각해 보면 쥬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주시하고 집중한다. 내가 물그릇을 가져가는 것, 그리고 그를 버리고 씻어내고 다시 물을 담고, 그 물그릇을 다시 제자리에 놓아주는 것까지 관심을 가지고 모두 관찰한다. 사냥놀이를 할 때면 놀잇감을 시작부터 끝까지 아주 집중해서 쳐다본다. 그리고 그런 쥬도를 나 또한 집중하여 반응을 보면서 온전한 시간을 보내는데 그것이 바로 그와 내가 보내는 몰입의 시간이 된다. 그래서 쥬도를 안아주는 시간, 사냥놀이를 하는 시간, 간식을 주는 것 등이 사실 24시간이라는 하루에 주어진 시간 중에서는 아주 사소하고 적은 시간을 차지하지만 하루를 돌이켜보면 우리가 온전히 몰입을 했었던 순간이며 결국에는 그 순간들이 무척이나 감사하고 어느새 내게 정말 의미 있고 크게 다가와 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바로 나 자신을 마주하고 온전한 몰입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여겨질뿐더러, 사라지지 않는 어떠한 형태의 결과물까지 남는 행위이다 보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쥬도를 만나고 나는 다시 무언가에 차분히 몰입하는 방법을 배운다.
몰입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기타를 칠 때 만들어지는 손가락 밑의 굳은살과 같이 익숙해져야만 하는 행위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 좋아하는 것조차도 몰입이 되지 않던 오늘, 쥬도가 내 삶에 들어오면서 충만한 몰입을 체험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