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도와 함께 지내면서 달라진 것은 '시선'
어떤 것을 보고 느끼는 시선의 전환.
삶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그로 인해 파동이 일었다.
특히 '일방적인 것'은 늘 외롭고 초라하다고 느끼던 나에게 새로운 시선을 주었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집사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양이 집사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뜻하며, 고양이를 주인으로 삼고 수발을 드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양이가 독립적이고 도도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 사람을 '주인'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자신을 '모시는 사람' 정도로 여기는 인식에서 유래된 표현.]
집사라는 말에서 고양이가 나보다 실질적으로 높은 서열에 있다는 것을 나타냄을 알았고, 실제로 고양이와 생활을 해 보니 그 말의 의미를 몸소 이해했다.
정말인지 어떤 때는 막말로 귀중한 내 돈, 내 시간 내서 돌봐주는데 특별히 아무것도 안 하는 이 녀석은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해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원한다.
물론 말은 못하지만 그들은 어떠한 행동들로서 우리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강력히 주장하고 요구하기도 한다는 것이 고양이의 엄청난 매력이었고 참 신기했다.
나는 고양이의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주는 행복에 빠져버렸다.
그는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애써 보답하지도 않고 평소대로 자신의 삶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다져 놓은 일상생활을 여느 때처럼 고고하게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감격스럽다.
인간에게 받은 도움을 보답하려 하는 것도 물론 아니겠거니와, 보답하지 않는다 해도 그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는 행복이자 하나의 의미가 된다.
지지리도 불공평한 이 관계가 왜 자꾸만 더 좋아지는 걸까?
이제는 내가 이 갑질하는(?) 고양이게 바라는 점은 단지 건강하게 아프지 않고 먹이를 잘 먹고, 잘 걷고, 잘 싸기만 하는 것. 다시 말해 평소와 같은 일상을 도도하게 탈없이 계속 유지해 주는 것을 간절히 바란다.
이런 것을 보니 고양이가 나보다 서열이 높다는 것에 매우 확신이 든다.
우리가 서로 다른 방식, 그리고 다른 시선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지만 어쨌든 감정적인 면에서는 확실히 일방적인 관계가 된 것이 맞다.
동물은 인간이 느끼는 복합적이고 세세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전문가의 당연한 소견을 들으면서도 은근한 서운함을 느끼고 있는 나를 보며 확실히 알게 되었다.
뜬금없지만 자식이 없어서일까,
솔직히 모성애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모성애라는 말 자체에 너무나 큰 의미를 두고 부담을 얹어 놓았던 것도 있지만.
그런데 쥬도를 만나고서 어쩌면 내가 엄마를 조금 이해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내가 그에게 느끼는 감정이 모성애와 비슷한 감정일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레 생각해 보았다.
사람과 동물이 같다고 할 수 없지만 내가 쥬도를 위해 한 번씩 하는 행동이나 생각 속의 모퉁이에는
이상하게도 자주 엄마의 얼굴이 있었다.
'엄마도 나에게 이랬을까? 엄마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일방적인 것도 초라한 것만은 아니구나.
일방적이라는 것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면
최선을 다하며 흔들리지 않는 지조 있는 태도를 나타내기도 하잖아.
그 일방적인 모습이 나에 대한 엄마의 모습이었던 것 같아.
너무 고맙다.
고맙다는 말이 극히 경솔해 보일정도로
얼마나 벅차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어쩌면 모성애는 일방적인 방향에서 피어올랐는지도.
그래서 더 위대하고 존경스럽게 여겨지는 걸까.
사실 그렇게 위대한 엄마에게 내가 보답하고 돌려주는 방식은 애석하게도 엄마의 것과 너무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엄마는 계속해서 일방적인 방법으로 다 커버린 어른의 나를 계속해서 돌보려 한다.
그 속에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으며 엄마에게는 나의 그런 미흡한 모습이 평생 동안 바뀌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자존심에 어린아이 취급 당하는 것을 거부하여 우리는 끝내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아 감정이 상하는 일도 많다.
그런데 그 잘난 '어른'이 된 만큼 내가 엄마를 조금 더 많이 이해해 주면 되는데.
내가 받은 일방적인 것을 나 또한 일방적인 방식으로서 그대로 돌려주기만 하면 엄마에게 얻은 이 빚을 전부 되갚을 수 있는데.
그 방법이 사실 별게 아니라 조금 따뜻한 말 한마디, 배려있는 행동 한 가지 일 수 있는데
나는 왜 매 순간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좁은 사람이
되는 걸까.
반성을 한다.
쥬도를 통해 나는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지도.
그리고 덕분에 나는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은 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