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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작몽상가

이상하게도 네가 보고 싶더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순히 보고 싶다는 말은 어린아이의 어리광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땐 그립다는 감정은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의 그리움은 그렇지가 않아.

되게 복합적이고 말로는 다 채워지지 않을뿐더러 머릿속에서는 한 편의 그림이 그려지는 그런 감정이야.


마음의 골에 흐르는 물이 있는데 그 기류가 갑자기 세지기도 하고 중간 어딘가에서 흙이 씻겼는지, 무언가 쓸려 내려온 건지 갑자기 물 색깔이 잿빛으로 변하고 자잘 자잘한 알맹이들이 뒤섞여.

그렇게 지저분해진 물이 점점 하강하다 급속도로 작은 골짜기를 만나면 물길이 좁아지면 그때 숨통이 조여와. 답답하고 턱 막히는 불편함에 안절부절못하다 보면 다시 또 다른 길을 만나서 탁했던 물은 조금 넓은 길로 들어서게 되고 다시금 맑아지다가 물살이 느려지고 또다시 탁해지기를 반복해.


물에 손을 넣어 흐르기를 멈추려고 해도 틈새로 계속해서 빠져나가니 어떻게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더라.

그래서 나의 힘으로는 , 내 작은 손바닥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기가 죽어 단념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단념이 체념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다다르지.

그래서 무기력해진 상태로 물속의 돌멩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골짜기는 다시 조금 잔잔해져.


그렇게 계속해서 순환되고 반복되는 , 어디론가 계속 흘러가고 내려가는 골짜기의 물이야 말로 그리움이며,

나는 이제야 그리움이라는 것은 단순한 보고 싶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


그리움 속에 보고 싶음이 속해있는 게 맞겠지.

그런데 과연 정말로 그럴까 하고 조금 의심이 가는 부분도 있어.

마침내 보고 싶었던 너를 보고 나서도 이 마음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사실 단순하게 얼굴을 보는 것이 최상책은 아니었나 봐. 마주 보는 건 골짜기의 흙탕물을 잠시는 가라앉힐 수는 있게 해 주지만

그게 어쩌면 잠시의 눈속임 같은 것 같아.

보고 또 봤지만 그리움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잖아.

그래서 나는 보고 싶은 마음과 그리운 마음은 같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어. 그리고 나는 네가 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 너를 그리움의 영역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네가 더 의미 있어졌어.


아마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게 정말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히려 계속 지속되며 그리운 게 아닐까.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해 줄 수 없고, 그래서 너를 날것으로 두고서는 고스란히 지켜보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결국은 그리움의 상태가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고. 음 아니면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아서일까. 그게 너무 많다 보니 말했듯이 손바닥으로는 흐르는 물을 막지 못하게 되다 보니 자꾸 아쉬워서 더 그리워지는 걸까.

생각이 자꾸 이랬다가 저랬다가 갑자기 낮이 됐다 다시 밤이 됐다를 반복하다가 나는 그 안에 지쳐서 새벽 속에 머물러.




네가 하루하루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런데 오늘 하루 행복하게 보내라는 말은 거리감이 적당히 있는 사이에서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생각을 했어.

부정적인 의미가 절대 아니라, 그 말은 진실로 상대의 기분이 좋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우 쾌적하고 아주 따뜻한 인사인 것은 맞고 참으로 좋은 말인 것은 분명해.

어찌 보면 부가적인 말이라 꼭 해야 하는 말은 아니지. 그래서 굳이 안 해도 되지만 근데 또 굳이 하게 되면 서로 기분이 좋고 덕을 쌓는 너무 너무나 좋은 그런 말.

행복하세요 라는 말을 듣고 기분 나쁜 사람은 절대 없는 거잖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좋은 점만 있다 보니 가끔은 슬프게도 인사치레 정도로 쓰여버리기도 하는 말.

말이라는 것은 이렇게 이중적인 부분이 있다는 게 모순이지. 진심을 담기도, 진심을 해쳐버리기도.

결론적으로 나는 너의 행복을 빌어.

이토록 친절하고 예쁜 말을 두고 나는 하지 않아.

뭐 요즘말로 오글거리고 비유가 좋지 못하기도 하고.

그냥 오늘도 늘 그랬듯이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너답게 잘 보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왜냐면 그게 너에게는 더 어울려.

더 웃긴 건 사실 이렇게 세세하고 다정한 말을 생각으로는 길게 하지만 막상 네게 말할 때는 '잘 보내'라고 축약돼서 나온다. 짧고 정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네가 나에게 있어서는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사람인 것 같고, 그만큼 나는 너를 알고 있다는 뜻 같아서 감사하고 기분이 괜찮아져. 무엇보다 네가 평소처럼 잘할 것이라는 믿음도 담겨있어.


'행복하게 보내'와 같이 기쁨이 팍팍 튀기는 느낌의 말은 아니지만 나는 잘 보내라고 세 글자 말하는 게 좋더라.

실은 그게 나름대로는 너에 대해 더 배려 깊은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임을.


네가 그 마음을 알까?


몰라도 돼. 나는 네가 어떻든 괜찮아.

나는 나의 온전한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관계 속에 포근히 머물다가 갈 때가 되면 또다시 지나가는 그런 사람이라서 괜찮을 것 같아.


그런데 계속 말을 덧붙이다가는

조금 쓸쓸해질 수도 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비추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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