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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y 창작몽상가

너무도 힘든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담담하고 여유로운 거야?

라고 물었던거 기억하니.



운전대를 두 손으로 붙잡고 있던 너는 내 질문에 말로써 대답을 바로 하지 않았어. 운전 중의 오묘한 타이밍이 그랬던 걸까 아니면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의 첫 시작을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일까.


너는 두 손으로 운전대를 툭 치고는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어.

그다음에 신호를 슬쩍 살피면서 잠시 후 나한테 그랬지.


시간이 너무 많이 지속되다 보니까 이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냥 받아들이다 보니, 받아 들여야만 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거라고.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너라도 그 상황이라면 나처럼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했지.

그러면서 운전대를 감싸던 두 손을 살짝 놓으면서 입가와 눈가에 미소를 계속 띤 채로 어깨를 추켜올려 들썩하며 나를 한번 바라보고 찡긋하던 너를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런데 네 살짝 올라갔다 내려온 어깨는 몸짓, 대답과는 또 다른 진실을 말하는 것 같았어.

사실 아직도 네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을 무의식적으로 털어놓는 것으로 보였지만 애써 감춰내려 하는 너의 웃고 있는 눈빛으로 나는 진심을 읽어버렸어.

그래서 내 마음이 한순간 너무 무거워져 버렸다.


정말 많이 아팠던 사람은 결국엔 덤덤해지게 마련이고, 덤덤한 사람은 말을 선뜻 내지 못해. 왜냐면 그 순간에 머릿속에서 참 많은 것들을 삭혀내느라 말보다는 가장 먼저는 몸으로 반응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 같아. 그리고 몸은 말과는 다르게 거짓말을 잘 못하는 편이지.


그래서 내가 괜한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가도 그때 나는 나름의 위로를 해야 하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는데 똑똑하게 생각나는 말이 없었고 감정을 빼고 이야기하는 네가 대단해 보여서 정말로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해졌기도 해서 새벽의 기운을 빌려서 그냥 물었던 거야.

그래서 사실 대답을 꼭 들으려고 물었다기보다 네가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게 더 컸었던 거 같다.


그때는 새벽이었고 우리는 조용한 차속에서 내내 창 밖의 깜깜한 새벽의 고요한 가로등 불빛을 배경으로 둔 채 왠지 모르게 웃음기를 적당히 빼고서 이야기를 나눴었네. 그날의 새벽의 하늘은 한밤중처럼 까만색이었어. 그러다가 그 이야기를 꺼내게 된 너의 주변이 바깥의 가로등 빛보다 더 진한 오렌지색으로 물들어서 내 동공을 쿡 찌르는 것 같았지.


그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의 창밖은 자생적인 빛이라곤 하나도 없이 무기력했고 축 쳐져있는듯한 가로등만 덩그러니 여기저기 켜져 있고 습한 바람소리만 실속 없이 들릴 것 같은 숨 죽은 새벽 세시의 차가운 도시의 도로 한복판이었다는 것이 나의 기억을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우리가 원래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가 아니었는데, 새벽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던 걸까 아니면 시간 속에 무르익은 우리가 만나 마침내 그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걸까.



우리가 6년 만에 만났나. 일 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 한데, 사실 어찌 보면 서로에 대해서 잘 아는 사이가 아닌데도 계속해서 연락이 닿고 이렇게 얼굴까지 보게 된 건 이미 우리 사이에 서로에게 안정감을 주는 무언가 또는 어떠한 연결 코드가 있긴 했다는 말 같아. 사람의 관계라는 것은 억지로 다뤄지는 것이 아니잖아.

나는 우리가 거의 연락도 안 하고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니지만 그날의 대화로써 네가 그전보다 너무 많이 좋아졌고 존경스러워. 볼수록 괜찮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볼수록 실망하는 사람이 있는데 너는 그 전자겠지.

아주 오랜만에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는 생각을 너에게서 했다.

너도 세월에 변한 건지 원래 그랬는데 내가 몰랐던 건지 그 조차도 모를 만큼 사실 우리 사이에 그럴 만큼의 시간과 계기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라도 너의 진가를 알게 되어서 오랜만에 옛 인연 속에서 새로움을 느끼게 된 좋은 경험이었어. 그래서 너를 다음에도 꼭 봐야겠는 사람으로 정해버렸다.



조심스럽지만, 혹시 너는 그 일로 인해 순간에 집중하는 법을 알게 되고, 매 순간순간을 감사하고 소중하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덕분일까? 그 노력이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닿아버리더라고. 나는 너를 만나는 내내 마음이 정말 편안했어. 사실 나는 연기를 정말 잘해서 사람들 앞에서 늘 하나도 불편하지 않아 보이곤 하는데 사실은 누구보다도 불편하고 예민해. 그래서 진실로 내가 나 자신으로로 머물 수 있는 관계가 손가락에 꼽히거든.

그런데 네가 내가 연기를 하지 않게 이끌어줬더라고.


어쩌면 우리가 안 본 세월이 길어서, 그리고 그전에도 오래된 관계가 아니었기에 할 말이 그다지 없어야 하는 사이가 맞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재미있었고, 엄청나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우린 저녁 내내 웃었어. 오히려 되게 가벼운 척 장난처럼 털털하게 이야기하고 실실 웃고 있지만 네가 툭툭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에도 숨길 수 없는 다정함과 사려 깊음이 묻어나서 속이 쇠약한 나에게는 정성스레 달여진 약 같았어.

그리고 네가 집까지 운전하여 데려다준 덕분에 나는 네 눈앞에서 아주 잘 귀가했는데도, 다음 날에 집에 잘 들어갔냐고 어제는 즐거웠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네 연락에 나는 또 한 번 다정함의 초과에 감동은 물론이거니와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그래서 더욱더 너에게 닥친 지금의 힘든 일이 참으로 부당하다.

있잖아 나는 나중에 너에게서 이후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중이야. 너무 힘들 땐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해소가 되기도 하잖아. 물론 본질적인 것은 계속 너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돌덩이가 될 수밖에 없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고, 이 말밖에 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게 애석하고 그냥 이런 말을 써내려 가는 것이라면 아예 안 하는 편이 낫겠지. 그래도 난 한 글자 한 글자 적으면서 네 생각을 하는 중이야.

네가 언젠가 나에게 그렇게 잠시라도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묵념하고 기도해 주는 것이 내가 너를 존중하며 위로하는 방법이 될 것 같아.


그러니 부디 건강 또 건강하고, 다음에 다시 만나면 너만큼은 아니겠지만 너와 비슷한 양의 다정함을 맞춰서 네 앞에 가도록 하려고.


나는 그럼 아까 말했듯이 나는 네가 소식을 주는 한 사람이 되길 정말 진심으로 바라며 이 자리에 있을 테니까 네가 하고 싶은 때에 그리고 하고 싶은 방식으로


편안하게 꼭 다가와주기를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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