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을 했다.
늙은 고양이는 놀아주지 않아도 되는 줄로.
쥬도가 이미 노년기에 접어들고서야 우리가 만났기 때문인지 그는 아주 얌전하고 항상 조심스러워 보이는 발걸음부터가 내가 추구하는 생활 패턴에도 잘 맞았던 것 같다.
어쩔 때는 흡사 아주 작은 호랑이와 같이 머리를 아래로 조금 내리고 눈은 위로 치켜뜬 채로 꼬리를 늘어트리고 슬금슬금 ,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닌다. 워낙 느릿느릿 여유롭게 다녀서 호냥이, 하얀 호랑이 같아서 백호라고 애칭도 붙여줬다.
쥬도가 집에 오고 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숏츠, 동영상은 온통 고양이들이 되었다.
영상들을 보면 보통 어린 고양이들이 참 활동적이고 말썽들을 정말 많이 부린다.
어떤 경우는 집안 꼴을 전부 난리로 뒤엎어 버리기도 하고, 어딘가에 올라가서 물건들을 다 흩트리고 어쩔 때는 살림살이를 망가트리기도 한다.
나는 그 영상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내 고양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하지만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꼈다.
무엇보다 나는 쥬도의 어린 시절, 활동이 왕성한 시기의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까.
쥬도는 어땠을까?
종의 특성상 얌전하기로 알려져 있어서 영상 속의 고양이들처럼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내 고양이가 집안을 저렇게 만들어 놓으면 나는 어떤 반응을 할까.
그런 성격이었다면 우리가 같이 살 수 있을까.
사실은 어릴 때 그들 못지않은 냥아치(?) 였다가 크면서 성격 숨기고 개과천선하고 철든 것은 아닐까 등을 상상하며 혼자 웃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어릴 적 모습은 얼마나 예뻤을까 싶어 검색해 보기도 한다.
그 사진을 보고 나서 그냥 저런 짓을 해도 같이 살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정말 사랑스러웠다.
동영상 속에는 집사가 고양이와 사냥놀이를 해주는 모습도 참 많다. 어느 날 그런 류의 영상을 보다가 나는 왜 쥬도르 놀아주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긴 했지만 워낙 조용하고 얌전하다 보니
나에게는 그냥 혼자 잘 지내는 고양이. 귀찮게 하면 안 되는 아이라고 단정 지어 버렸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물건의 포장지를 뜯으면서 기다란 노끈 같은 것이 나오게 되었는데 한 번에 치우려고 대충 거실에 밀어 두고 청소를 시작했다. 한참 버리고 쓸고 닦고 집안일에 심취했는데 내 귓속에 뭔가 툭탁 툭탁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 너무 이상해서 가보게 되었다.
쥬도가 포장지에서 나온 노끈을 솜방망이로 툭툭치고 입으로 앙앙 물고 난리가 났다.
나는 순간 여러 영상에서 보았던 고양이들과 집사들이 합작을 해서 함께 놀고 웃고 있던 영상들이 스치면서 '아 내가 무지해서 놀아 줄 생각을 정말 못했고, 얼마나 놀이가 하고 싶었으면 내가 해주지 않으니 하다못해 혼자 찾아서 하는 건가 싶어' 갑자기 너무 미안해졌다.
그 꼴로 청소를 내팽개치고 얼른 그 노끈을 잡아서 왔다 갔다 해주었더니 그 얌전하던 고양이는 어디로 가고 그 끈을 잡으려고 점프를 하고 달리기를 하고 앞발로 끈에게 펀치를 날리며 아주 흥분을 했다.
그러다가 신이 났는지 혼자 호로롱 소리도 내고 한 바퀴 돌기도 하고 복도 끝에서 거실까지 전력 질주를 하기도 했다.
신기하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쥬도의 그런 모습을 처음 봤다.
아무리 노년기의 고양이도 사냥놀이를 해주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사냥놀이를 하면 고양이는 묵혀둔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인지능력과 집중력 향상에 좋다고 한다. 그리고 특히 근육을 강화시켜 주고 유연성 유지에도 좋다고.
이렇게 좋은 점만 있는 중요한 활동을 몇 달 동안 해주지 않았다니.
미안하다. 아무런 준비도 안 돼있던, 고양이에 관심도 없었고 그 분야에 완전히 무지한 사람이 갑자기 고양이를 맡게 되다 보니 부족하고 배워야 할 점이 너무 많네.
자격이 없었으니 그 자격을 만들어내기 위해 나는 더 노력해야 한다.
그 이후로도 쥬도는 내가 해주기 전에도 자신이 놀이가 필요하면 알아서 찾아서 하기도 했다.
내 노트에 붙어있는 페이지 표시 끈, 쓰레기봉투 밑에 항상 달려있는 빨간 끈과 혼자 사투를 벌인적도 있고 삐져나와 있는 핸드폰 충전 케이블도 매우 좋아했다. 식탁에 올려져 있는 물건을 앞발로 툭툭 쳐서 떨어트린 다음에 밑으로 내려가서 그 떨어진 물건을 굴려가면서 놀기도 하고.
아무튼 무언가 보이면, 원할 때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아서 놀이를 했다.
그런 면에서까지도 매우 독립적인 모습에 나는 정말 감탄했다.
혼자서 잘하는 씩씩한 고양이로구나.
물론 혼자도 조금씩 놀지만 사실 우리가 함께 할 때 쥬도는 더 좋아했다.
놀이를 해주면 갑자기 흥분하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서 러그를 붙잡고 벅벅 긁기도 하고 큰 소리로 야옹하면서 급발진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제는 쟁여둔 스트레스를 잘 풀고 있는 것 같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독립적으로 자신의 놀이까지 찾아서 나에게 알려준(?)
쥬도에게 그의 놀이 도구를 의미 있게 그가 직접 찾은 핸드폰 케이블과 포장지에서 나온 노끈을 같이 엮어서 잘 만들어주었다.
쥬도와 놀이를 하다 보니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
보통 앞발로 툭툭 치거나 앞발로 눌러서 움직이는 노끈을 잡으려고 하는데 어쩌다가 발톱에 걸려서 끈이 잡히게 되면 곧바로 입으로 물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작은 앞발의 끝을 만두처럼 동그랗게 모으는 듯해서 발바닥이 보이는 부분을 자신의 얼굴 쪽으로 놀잇감을 모아 온 뒤 어떻게 해서든 입으로 가져가려고 애를 쓰는 것이었다.
노끈을 쭉 따라가서 결국 하는 행동이, 잡으려는 행위였고 잡아서는 입으로 깨물기 위함이었다.
꼭 아기들이 뭐든 만지면 입으로 넣는 것처럼 하는데 아마 그것은 인간에게든 동물에게든 본능적인 부분인가 보다 싶었다.
인터넷에서 한 가지 배우게 된 게 있다.
레이저빔 같은 것으로 고양이를 놀아주면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빛으로 자극을 주기엔 좋지만, 그 레이저가 결국 그의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고양이가 금세 질려하거나 생산성 없는 자극만 시켜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지고 그다지 좋지는 않은 놀이라고 들었다.
하긴 사람으로 생각해 봐도, 아마 그런 놀이를 하다 보면 처음엔 즐겁고 흥미진진 하지만 결국 떠도는 빛을 직접 만질 수 없다는 좌절감, 박탈감, 허무함 같은 감정이 들어서 몇 번 하다가 질리는 게 당연하다.
어쨌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뭔가 끌리고 흥미로운 것이 있으면 일차적으로 만져볼 수 있어야 하고 또 나아가 입에 까지 넣어 보기도 해야 정복감과 성취감과 같은 게 느껴져서 만족스럽긴 하겠다.
고양이와 놀이를 하면서 든 조금 엉뚱한 생각 하나가 있다.
'손아귀에 힘이 없어 슬픈 동물'
쥬도가 노끈을 잡으려고 다부진 주먹을 예쁘게 모아 허공에서 열심히 자기 쪽으로 마구 쓸어내리는 것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네가 이 끈을 손으로 마음대로 꽉 잡을 수 있었다면 이 세상이 네게 얼마나 쉬웠을까.'
'지금보다 얼마나 더 독립적인 동물이었을까.'
그래서 나는 우리 인간이 갖은 최대의 강점 '손아귀의 힘'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정말 다행이게도 우리의 의지로 무언가를 직접 잡을 수 있다.
손이야 말로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인간이 동물보다 위대해진 이유가 바로 손이라는 부분에
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인간이 학습을 하고 발명을 할 수 있었던 것 더 나아가 계속해서 창작을 할 수 있는 이유까지도
결국엔 손이 아닌가.
정교하게 손을 놀릴 수 있고, 잡고, 만들고
그 손으로 덕분에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기도 하고,
동물들 전부가 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다면 지금 우리는 있었을까, 우리의 지구는 아주 엉망이 되어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정말 쓸데없고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손아귀의 힘에 대한 중요성과 감사함을 새삼 느꼈다.
손아귀에 힘이 없어 슬픈(?) 이 동물들을 위해
덜 슬픈 우리가 가진 그 힘을 그들에게 조금 보태주고, 돌봐주고 보호하며 더 많이 아껴주는데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과 사명감이 동시에 들었다.
손에 힘이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나는 알고 있다.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뚜렷한 힘을 쥐어 낼 수 없을 때가 올 텐데. 그때는 다른 사람이 가진 강한 손의 힘을 빌리게 될 것이고.
그래서 지금은 내가 가진 힘을 또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나누어야 할 때라는 것을 새기며.
나는 쥬도를 통해서 고맙게도 당연하게 여겼던 것 들을당연하게 넘기지 않고, 그에 대해 한번 더 사색하고 몽상하며 감사할 줄 아는 힘있는 자세를 갖춰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