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젠틀우먼 26화

26 재회

“아저씨, 그를 데려와요. 완벽하게 제압된 상태로 내 앞에.

by 김은주

그녀는 웅크린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포근한 침구의 감촉이 뺨에서 느껴졌지만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따스한 불빛이 느껴졌다. 바람은 없다. 청결한 공기가 핏덩이로 꽉 막힌 코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 살아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죽었다. 죽어서 주님 앞에 누운 것이 분명하다.

차 트렁크에 던져졌을 때가 떠올랐다. 온몸의 뼈마디와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그보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 머잖아 더 지독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닫자 영혼이 산산조각 났다. 따뜻하고 비릿한 피가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 갔다. 얼굴을 세게 맞아 입안이 찢어졌고 코뼈도 부러졌다. 오치상은 노련한 경찰답게 어디를 때려야 고통이 배가 되는지 잘 알았다. 그는 마지막 반항을 하는 그녀의 등 뒤, 신장 부위를 주먹으로 때렸다. 칼에 찔린 듯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지만 이내 모든 것이 새카매졌다.

루시아 수녀는 눈을 뜨기 위해 애를 썼다. 머릿속은 자욱한 안개가 낀 듯했고 몸은 조금이라도 뒤척이려고 하면 조각난 관절이 비명을 질러 댔다. 온몸을 바늘로 구석구석 찌르는 것처럼 고통이 촘촘하게 느껴졌다. 죽은 게 아니라면 이 고통은 대체 뭘까. 차라리 다시 정신을 잃고 싶을 만큼 아프다. 이가 딱딱 맞부딪쳤다. 기절한 채 덜컹이는 어둠 속에서 제발 이대로 목숨이 끊어지길 빌었던 때처럼 고통스럽다.

“…수녀님.”

세하는 루시아 수녀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눈사람처럼 녹아 버릴까, 설탕 과자처럼 부서질까. 차마 수녀의 몸에 손을 대는 것도 망설여졌지만, 그녀의 존재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괴물로부터 살아남아 자신 앞에 처참한 모습으로 나타난 늙고 약한 여자가 무사히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두 손과 가슴으로 느끼고 싶었다. 수녀를 끌어안자 세하가 입은 주름진 흰색 블라우스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수녀는 그 소리에도 온몸을 떨었다.

김재화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세하는 천사처럼 수녀를 안고 있었다. 흰옷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와 주님의 가련한 종을 거두러 오는 천사. 하지만 그 천사는 눈을 감는 대신 두 눈을 크게 뜨고 선한 자에게 벌어진 일을 전부 눈에 담고 있었다. 김재화는 이 일의 결말이 곧 다가올 것임을 직감했다. 무섭도록 강력한 직감에 온몸이 뻣뻣해졌다.

“이제는 제가 지켜 드릴게요.”

루시아 수녀는 눈물을 흘렸다. 세하의 손길이 눈가를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 많은 것을 인내한 아이. 내가 가져 본 적 없는 아이. 하지만 내 아이와 다를 바 없는 아이. 죽어서도 지키고 싶었던 나의, 소중한 딸 주희.

“곧 의사들이 들어와서 돌봐 드릴 거예요. 안심하세요.”

루시아 수녀는 애써 뜨려던 눈을 다시 감았다. 주님 곁은 아니지만 천사의 음성을 들으니 고통스러운 마음이 차츰 가라앉고 고요가 찾아왔다. 루시아 수녀는 세하의 말을 믿었다. 단어 한 음절까지 완벽하게.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 마태오 복음서 25장 13절.”

세하는 성경을 펼쳐 김재화 앞에 놓았다.

“그건 수녀님과 저만 아는 약속이었어요. 만약 수녀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구절을 펼쳐 놓기로요.”

김재화는 오치상이 별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다음 루시아 수녀를 자신의 오두막으로 데려갔다. 빠르게 응급조치를 한 다음 차에 태워 우선 수녀회로 향했다. 세하의 지시였다. 수녀회로 가는 동안 세하에게 루시아 수녀의 상태를 알렸다. 세하는 원장실 벽시계 안을 확인해 보라고 했다.

루시아 수녀는 언젠가 닥칠 일에 대비해 세하의 조언대로 벽시계 안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 원장 수녀실 전체가 담기는 각도였기 때문에 오치상이 칼로 수녀의 목을 찌르고 얼굴과 가슴, 복부를 무차별적으로 발로 차는 장면이 모두 녹화되었다. 김재화는 영상을 보면서 몸에 한기가 드는 것을 느꼈다.

“결국 이런 날이 오네요, 아저씨.”

김재화가 거칠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언제 끝이 날까요. 그들에게 끝이란 게 있을까요?”

세하는 가만히 김재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난 그만 가 봐야겠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어.”

“엄마는 돈 때문에 별장에 계속 갔어요. 난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네 엄마는 널 지켜 주려 했어. 내가 아는 건 그뿐이다.”

“난 정말 거기가 싫었는데.”

괴물의 저택. 그 집에는 좋은 것들이 많았다. 아름다운 무늬의 홍차 잔과 티팟, 올리브그린 색깔의 폭신한 양탄자, 이름 모를 화가가 그린 풍경화에 마음을 빼앗겼다. 커튼마저도 고상하고 우아한 패턴이었다.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엄마를 따라 저택을 감상했다. 하지만 거기에 사는 건 공주나 요정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그만 가 보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사랑해요.”

세하는 김재화의 등에 대고 말했다. 작은 파랑새 같던 열 살 소녀는 이제 없다. 김재화의 시큼한 땀에 젖은 품에 안겨 그날 저수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똑똑히 지켜본 그 소녀는.

…나도 마찬가지야.”

“알아요. 엄마를 사랑한 건 나만이 아니었죠. 우린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었어요. 아저씨도 그렇게 믿었나요? 그래서 날 목 졸라 죽인 다음 저수지에 버리지 않았나요?”

“그만 가겠다.”

“아저씨, 그를 데려와요. 완벽하게 제압된 상태로 내 앞에.”

김재화는 절대 세하의 명령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절대.


오치상은 어둠에 익숙해지려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팔과 다리는 묶인 채 의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고개를 내려 발을 보려고 했지만 어둠 속이라 흐릿하게 형체만 구분이 될 뿐이었다. 숨을 크게 내쉬었다가 들이쉬었다. 청결하고 차가운 공기가 어둠 속을 흘러 다녔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일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별장에서 강희건과 와인을 마셨다. 기분이 찜찜해서 그냥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오늘의 노고를 충분히 치하 받고 싶었다. 강희건은 마음을 읽은 것처럼 달콤한 소리를 해 댔다. 그가 권하는 대로 피처럼 붉디붉은 적포도주를 들이켰다. 한 잔도 아니고 한 모금에 30만 원쯤 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역겨웠지만 그게 수녀 때문인지 앞에서 호방하게 웃는 이 남자의 돈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늦은 밤 직접 SUV 운전대를 잡았다. 아내에게 전화가 오는 것 같았지만 무시했다. 맞은편에서 차가 한 대 달려왔다. 라이트가 강해서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차는 오치상의 SUV 앞에 아슬아슬하게 멈춰 섰다. 누군가 내려 창문을 두들겼다.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었다. 남자는 깊고 낮은 목소리로 뭐라고 말했다. 제대로 들리지 않아 고개를 조금 더 내밀었다. 그다음 순간, 정신을 잃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자 분노와 좌절감이 솜씨 좋은 복서처럼 그의 복부를 주먹으로 갈겼다. 단단한 바위 위로 몸을 던진 것처럼 미칠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또다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어둠 속, 팔다리가 묶인 채였다. 오치상은 꼼꼼하게 묶인 몸을 힘껏 비틀었다. 더이상 이대로 버티기 힘들었다.

“저기, 도대체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조명이 들어왔다. 지나치게 밝은 빛이 눈을 찔렀다.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눈이 아팠다. 어느 정도 불빛에 적응이 되자 눈을 떴다. 눈앞에 대형 모니터가 있었다. 검은 모니터 화면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잠깐 동안 꿈이 아닐까 했던 헛된 기대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공포였다.

잠시 후, 모니터가 켜졌다. 그리고 영상이 재생되었다. 루시아 수녀를 폭행하는 장면이었다. 원장 수녀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수녀의 베일을 끌어당겨 칼로 그녀의 목을 찌른 다음 잠깐의 대화 후에 쓰러진 수녀를 무차별적으로 주먹으로 내려치는 것까지 전부 녹화가 된 영상이었다. 영상의 화질이 아주 선명했다.

“잠, 잠깐….”

곧바로 다른 영상이 재생되었다. 오치상의 얼굴은 놀라움과 분노로 검붉어졌다. 놀랍게도 아내였다. 약간 흐릿한 영상 속에서 아내는 울부짖었다. 아내는 두 손을 모아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머리는 잔뜩 헝클어지고 옷은 풀어헤쳐진 상태였다. 문득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돈을 노리고 아내를 납치한 놈의 전화였던가? 너무 놀라 말라붙은 목구멍에서 힘없는 신음만 새어 나왔다.

“모든 걸 말할게!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된 일인지 전부 말하겠어. 아내를 놓아줘. 제발!”

또다시 오치상이 루시아 수녀를 폭행하는 영상으로 바뀌었다. 덜덜 떨며 고개를 돌렸다. 두 영상은 12시간 동안 반복 재생되었다. 오치상은 물끄러미 영상을 보다가 울부짖기를 반복했다. 얼굴은 온통 눈물과 침,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세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치상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숨을 죽이고 여자를 관찰했다. 순간 누군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당신은 여기서 죽을 거야.”

세하의 목소리는 자못 부드러웠지만 얼음처럼 차가웠다.

“너 누구야….”

“내가 누구인지는 궁금하면서, 두 아이의 엄마이자 사랑하는 아내는 괜찮은지 궁금하지 않은가 봐?”

“그 여잔 아무것도 몰라. 모든 걸 다 자백한다고 했잖아. 그걸 원하는 거 아냐? 아니면 돈이야?”

“난 진실에 관심 없어. 하지만 강희건은 관심이 꽤 있을 것 같은데. 당신을 그냥 둘까? 그 사람 꽤나 철저한 스타일이잖아.”

오치상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단번에 파악했다. 그러면 이 눈앞에 서 있는 여자는 누구인가.

“어때, 뭔가 깨닫는 바가 있는 것 같은데.”

오치상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뱉듯 말했다.

“김재화가 우릴 속였군.”

오치상의 눈은 충격과 분노로 벌게졌다.

“넌 이인애의 딸이지.”

세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덕식, 주용훈… 전부 너야. 뭘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다 죽였어.”

세하는 오치상이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없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였다. 세하는 외눈박이 고양이를 떠올렸다. 털의 감촉, 말랑한 분홍과 회색의 발바닥, 곁에 와서 몸을 비빌 때의 온기. 그 아이는 좋은 점이 많았다. 물론 그 아이의 눈을 파내고 한쪽 다리를 다치게 한 인간은 관심이 없었겠지만.

“나도 죽일 건가?”

“물론. 하지만 쉽게는 안 돼.”

“그렇겠지. 이은애도 쉽게 안 죽었어.”

오치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세하를 응시했다.

“아주 독했지. 저수지에 아무리 머리를 처박아도 포기 안 했어. 살려 달라고 울더군. 아마 못 들었겠지만.”

세하는 당장 저 개자식의 뱃가죽에 칼을 쑤셔 넣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날 김재화가 널 살려 둔 이유가 뭐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뒤처리는 나와 조정배, 그리고 김재화 담당이었으니까.”

갑자기 그날 비명을 지르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던 김재화의 더럽고 뜨겁고 거친 손의 감촉이 떠올랐다. 그는 세하를 둘러업고 오두막으로 데려갔다. 세하는 오치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마음속으로 격렬한 비명을 질렀다.

“조정배도 자살한 마당에 이젠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귀찮은 존재가 하나 있었지. 어쩌면 너도 정희주를 만났겠군. 그년은 쉬지도 않고 킁킁대고 돌아다녔으니까. 난 걔한테 제대로 된 ‘경고’를 날렸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정희주가 루시아 수녀를 찾아간 걸 보고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지.”

세하는 고집 센 여형사의 얼굴을 떠올렸다. 희주는 거의 진실 문 앞까지 온 셈이었다. 이제 문을 열고 박주희를, 아니 박세하를 발견하는 일만 남은 상태였다.

“당신 아내는 지금 어떤 심정일까?”

마음껏 떠들던 오치상은 비로소 자신의 처지를 실감한 듯 세하를 노려보았다. 세하는 천사와도 같은 표정으로 오치상을 굽어보았다. 곧 닥칠 일을 조금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을 내려다보는 섬뜩하고 환한 미소.

“대체 어쩔 셈이야!”

“감금된 아내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 같아? 상상이 돼?”

오치상은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보여 주려는 거야. 당신처럼 타인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말이야. 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을 제일 혐오해. 동물도 자신의 동료나 자식이 죽으면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는데, 어째서 당신 같은 인간들은 그렇지 못하지?”

“그게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당신한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냐. 내 아버지라는 인간도 그랬으니까. 그 인간은 엄마를 모욕했어. 끔찍한 일을 당하고 온 엄마를 의심하고 더럽다고 욕을 했어. 아내의 말을 믿지 않고, 믿고 싶은 걸 믿었어. 그게 상상력이 부족하고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들의 공통점이야. 자기가 믿고 싶은 걸 믿지.”

“내 마누라를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만약 당신이라면 어떨까?”

“뭐?”

“만약 당신 아내가 내 어머니처럼 그런 일을 당하고 돌아온다면 말이야.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면 말이야, 그 인간처럼 그냥 잊으라고 말할 거야?”

세하의 말이 끝나자 꺼져 있던 화면이 다시 켜졌다. 오치상의 아내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잘 안 되겠지만, 한 번 상상해 봐. 그 고통이 잊힐까? 잊고 싶다고 잊혀질까?”

“제발 부탁이야! 부탁할게. 시키는 건 뭐든 할게. 강희건을 죽이라면 죽이겠어. 당장 가서 쏘아 죽일게. 자수를 하라면 당장 하겠어. 빌라면 평생 무릎을 꿇고 빌게. 개처럼 네 발을 핥을게. 그러니까 제발 아내는 그냥 풀어 줘.”

“아! 강희건 일은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잘할 테니까.”

세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한테 용서를 빌 필요 없어. 당신이 용서를 구할 사람은 내가 아니잖아. 안 그래?”

오치상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나왔다.

“사랑하는 아내가 어떤 일을 당하는지 보면 그날의 내 기분을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이렇게 하는 날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지.”

세하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갔다. 오치상은 불안한 얼굴로 화면 속에 쓰러져 있는 아내를 지켜보았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눈물이 솟구쳐 나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입 안으로 들어오는 찝찔한 눈물 맛을 보자 살고 싶다는 의지가 맹렬하게 발동했다.

“제발, 제발!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했잖아! 제발 이 엿 같은 짓거리를 끝내. 아내를 가만둬. 아내를 해치면 널 찢어발겨 죽일 거야!”

화면 속 아내가 꿈틀댔다. 잠시 후 정면에 있는 문이 열리고 검은 복면을 쓴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들어왔다. 아내는 남자를 보고 발작하듯이 벌벌 떨었다.

“안 돼… 제발….”

남자는 여자를 거칠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단추가 반쯤 풀어진 상의를 거칠게 잡아 뜯었다. 남자는 반항하는 여자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여자는 얼굴을 얻어맞고 젖은 수건처럼 바닥에 널브러졌다.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엎드린 여자의 다리를 양손으로 잡아당겼다.

“안 돼!”

오치상은 눈을 감았다.


세하가 오치상에게 보여 준 영상은 가짜였다. 오치상의 휴대폰 속 아내의 동영상과 사진 데이터를 이용해 만든 일종의 ‘페이크 영상’이었다. 다소 해상도가 흐렸지만 판단력을 상실한 오치상을 속이는 데는 충분했다.

김재화는 탈진한 채 정신을 잃은 오치상을 끌고 나와 수술대 위에 눕혔다. 오치상의 입에서 게거품과 피가 흘러나왔다. 아까 발작을 하면서 혀를 깨문 모양이었다. 그리고 소변을 지렸는지 암모니아 냄새가 났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을 거야. 여기서 멈춰도 말이다.”

김재화는 수술대에 다가온 세하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라텍스 장갑을 끼고 미리 준비한 염화칼륨 주사를 집어 들었다.

“주희야.”

“이 상황을 끝내야죠.”

그리고 김재화를 응시했다.

“거의 다 왔잖아요.”

세하는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오치상의 팔에 망설임 없이 정맥주사를 놓았다. 동물실험을 하는 연구소에서는 실험용 고양이에게 염화칼륨 주사를 놓아 안락사를 시킨다. 물론 그 전에 마취를 먼저 시킨다. 그게 법으로 정해진 방법이다. 마취 후 염화칼륨 정맥주사.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소는 마취라는 번거롭고 돈이 드는 과정은 생략하고 바로 염화칼륨 주사를 놓아 고양이를 죽인다. 고양이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친다. 세하는 이 방법을 택했다. 내 어머니의 숨통을 끊은 자에게 딱 알맞았다. 오치상도 대부분의 실험실 고양이처럼 고통스럽게 죽고 쓰레기봉투에 담겨진 채 소각될 것이다.


raghavendra-v-konkathi-v9Idw3hqkb4-unsplash.jpg


keyword
이전 25화25 미친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