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의 딸이었다. 그 아이가 지금 내 곁에 없어서 다행이다. 그녀는 자신의 두피가 뜯어지도록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그의 관심이 혹시라도 딸에게로 옮을까 봐 저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딸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에게 끌려가는 동안 어떻게든 아픔을 덜기 위해 두 손으로 그의 오른팔을 더듬으며 허우적거렸다. 몸에 눌린 잡초들이 짓이겨지면서 싱그러운 풀 냄새가 피로 막힌 콧속으로 훅 밀려들어 왔다. 아직은 살아있다. 모든 것이 망가졌지만 그래도 아직, 죽지 않았다. 하지만 팔꿈치와 무릎, 어깻죽지와 옆구리의 통증 때문에 그의 오른팔을 잡는 걸 포기하고 싶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
감색 원피스가 둘둘 말려 허리까지 올라왔다. 허리에 묶어둔 리넨 앞치마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종아리와 허벅지에는 그에게 짓눌려 생긴 멍과 상처가 선명하다. 근육이 파열됐는지 통증이 밀려온다. 아픔보다도, 원피스가 신경 쓰인다. 이렇게 밝은 태양 아래 상처로 가득한 몸뚱이를 그대로 내놓고 있다니. 그가 보기 전에 원피스를 내려 자줏빛 멍이 든 몸을 가리고 싶다. 이미 욕망을 모두 발산한 그는 다행히 드러난 몸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머리통이 타는 것 같은 화끈거리는 열기가 성한 곳 없는 몸뚱이를 감싼다. 맹렬한 불길 속에 통째로 내던져진 것 같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 그녀는 퍼덕거리는 것을 멈추었다. 그의 오른팔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도 그만두었다. 대신 눈앞에서 팔랑거리는 흰 나비를 바라보았다. 나비는 땀으로 번질거리는 그의 다리에 붙어 날개를 펼쳤다.
나를 구해 줘.
도와줘.
내 딸에게 어서 도망치라고 말해 줘.
숨을 깊이 들이마시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코피가 흘러 입으로 들어왔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얼굴 가까이 끌어당겼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했던 남자는 이제 없다. 짐승처럼 커다란 육체를 지닌 남자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모든 상황을 게임으로 여기는 것 같다. 얼굴은 땀에 번들거리지만 지친 기색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는 새어 나오는 미소를 감출 생각이 없다는 듯 희고 고른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왜 몰랐을까.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다. 그가 부러뜨린 이빨과 손톱으로 그를 물어뜯고 할퀴고 싶다. 피가 말라붙은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 멀게 만들고 싶다. 그가 폐부 깊숙이 내지르는 비명을 듣고 싶다.
하지만 그럴 기회는 없을 것이다. 너무 늦었다. 이곳에서 그녀가 당한 일은 세상 누구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맥이 풀렸다. 그가 그녀를 향해 뜨겁고 역겨운 숨을 내뱉었다. 그녀는 구역질을 못 이기고 피와 위액을 남자의 가슴팍에 토해 냈다.
"너 같은 년은 쌔고 쌨어."
그는 그 한마디만 내뱉고 그녀를 내동댕이쳤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두 남자가 그녀의 머리와 양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물속에 처박았다. 곧 그녀의 무덤이 될 곳이었다.
순식간에 찐득한 피로 막혔던 코와 입으로 미지근한 담수가 흘러들어 왔다. 그녀는 물을 먹지 않으려고 숨을 참았다. 그리고 머리를 물 밖으로 빼려고 다리를 세차게 휘저었다. 뭐라도 발에 닿기를 바랐지만 발은 무언가에 걸렸다가도 금세 빠져나왔다.
서서히 힘이 빠졌다. 물을 공기처럼 들이켰다. 공기 대신 물이 혹은 물과 뒤섞인 공기가 한꺼번에 코와 입으로 들어왔다. 물은 꼴깍꼴깍 잘도 넘어왔다. 잠이 오듯 편해졌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어디선가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쏟아지는 햇빛처럼 찬란하게 빛나던 어떤 날이었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 것은 그것뿐이 아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딸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입을 벌렸다. 앞으로 영원히 부르지 못할 그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젠 끝이다. 눈앞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빛 속에서 딸의 얼굴이 얼핏 보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암흑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