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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멍 Oct 17. 2021

04_시작할 수 있다는 행운

잘 되었든 못되었든 간에 기회를 얻었고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본격적으로 실내를 꾸미기 시작

평일엔 서울에서 주말엔 단양에서 

*이번 글에서는 그저 제가 반복적으로 가구를 주문하고 받고 조립했던 사진들이 주를 이룹니다.. 


이 기간에는 주로 주말마다 집으로 내려갔다. 주말 내내 배송 온 가구들을 설치하고 조립하고 또 치수 재면서 새로운 가구와 물건들 주문하고..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는 서울에 있는 동안 최대한 다 생각해두고 집에 와서는 치수만 체크하고 최저가만 디깅하다가 보이면 바로 주문했다. 그리고 이 과정을 반복 또 반복했다..



1. 정화조 공사

아버지가 정화조 공사 시작했다고 보내주신 사진. 서울에서 이 사진 받아보고는 아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구나 싶어서 괜히 두근두근. 정화조 공사는 포크레인을 집으로 부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2. 물탱크 FLEX

네이버에 '정화조 공사' 키워드로 지역 주변의 업체를 찾은 뒤에 전화해서 물탱크 용량을 말한 뒤 견적을 물어보고 공사 일정을 잡는 방식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것 같다. 물론 주변에 지인이 있다면 그것이 베스트.



3. 테이블 조립 

테이블 가로 지름은 1000로 4명이 넉넉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이즈로 골랐다. 물론 1100도 고려했는데 2명이 왔을 때 너무 텅 빈 느낌이 날 것 같은 점이 컸고 벽면 사이로 의자를 움직일 수 있는 거리와 의자 뒤로 지나다닐 수 있는 동선 폭이 좁아져서 1000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담이 높지 않은 편이라 밖에서 안이 보일 수도 있는 점을 감안해서 불투명한 쉬폰을 속 커튼으로 달아 프라이버시는 보호하면서 채광은 들어오게 했다. 거기에 겉으로는 암막 커튼을 달아서 필요에 따라서는 완벽하게 닫힐 수 있게 해 뒀다.





4. 조명 설치

그리고 대망의 조명 교체. 지붕 뚫고 난리 났다. 작동 원리와 천장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나는 그냥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분이 시키는 것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수행했다. 한 시간 정도 씨름하고 결국 설치 완료.



5. 선반장 조립

이 선반장 조립이 거의 1시간. 아버지랑 하나씩 맡아서 작업했다. 아주 어렸을 때 말고는 아버지랑 같이 이렇게 뭔가를 함께 만든 기억이 없었는데 의도치 않게 좋은 추억 하나 만들었다. 아버지가 아직까지 나보다 조립이 빠르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근데 좋은 추억은 추억이고 인간적으로 허리가 아프고 힘들었다. 아버지가 같이 도와주셔서 다행이지 혼자 했으면 '아 다음 주에 와서 다시 해야겠다'하고 포기했을 듯. 



6. 수건걸이 

여러 명이서 펜션 갔을 때 이런 경험 꼭 있지 않나. 저녁에 씻고 나서 수건 걸어둘 마땅한 곳이 없어서 누구는 의자 위에 누구는 소파에 걸어두고 결국 다음날 아침에 과연 무엇이 내가 사용했던 수건인지 헷갈린 경험... 개인적으로 그런 경험들이 너무 불편했어서 그러지 않기 위한 고민을 많이 했다. 권장사양은 화장실 바로 앞에 수건 거는 용도의 개별 행어가 있다. 구분이 가능한 옷걸이 4개가 있어서 각자 사용한(할) 수건을 구분 지을 수가 있고 다 쓴 수건은 바로 정리할 수 있도록 빨래통을 설치했다. (참고로 gjsy는 권장사양의 이니셜..)


7. 작은방 세팅

권장사양의 작은방. 개인적으로 이 방은 권장사양의 모든 공간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익숙하다고 (그래서 가장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고 싶었다. 뭔가를 비우기보단 채우는 방으로 쓰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여유를 느끼기 위해 시골에 왔지만 반드시 노트북을 열고 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이 방에 들어와서 서울의 어느 흔한 카페에 온 것 같은 기분으로 일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일을 마치고 방문을 열고 나왔을 만나는 시골이 더 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아 참고로 작은방은 집 모든 공간 중에 새소리가 가장 잘 들리는 방이다. 일하다가 졸리면 새소리를 들으며 낮잠에 드는 것도 색다른 경험일 듯.


하루 종일 정리하고 밖에 나왔을 땐 해가 질 무렵. 개인적으로 권장사양에 머무는 사람들한테 산책을 가장 권하고 싶은 시간대가 바로 해질 녘이다. 낮보다 밤이 빛나는 도시와 달리 시골은 밤의 역할을 결코 게을리하지 않으니까. 이른 저녁밥 지어먹은 뒤 에어팟은 집에 남겨두고 밖으로 나와 걸어보라고 하고 싶다.


7. 공간을 채우는 것에 대하여

앞서 구매한 물건들은 사실 요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제품들이다. 나로서도 아름답고 근사한 것들로 채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원래 집의 구조나 바닥, 벽지 등과 무난히 어울려서 선택한 점도 있고 무엇보다 예산을 고려한 탓도 적지 않다. 공간을 새것으로 채우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지 않을까. 공간의 70%까지는 새것으로 채울 수 있지만 나머지 30%는 각자의 서사가 있는 물건들이 있어야 밀도가 생기는 것 같다. 바꿔 말하면 그 30% 없이는 공간이 완성되지 않는 것 같은 기분. 이제 나머지 공간을 과연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관건일 듯싶다.




얼마 전 학교 후배의 부탁으로 후배가 준비 중인 교내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주제는 행복. 짧은 에세이 한편 보냈는데 워낙 글재주가 없는 탓에 도와준답시고 보내줬지만 이게 도움이 된 게 맞는 건가 싶다. (미안하다..) 아무튼 인상 깊었던 점은 작업 전과 후로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게 은근히 나 스스로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쓰고 보니 마침 내가 요즘 자주 하는 생각들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 같아서 브런치에도 공유 (내용은 TMI 발라내고 약간 바뀜)


안녕하세요, 처음 인터뷰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 똑같이 회사 다니면서 평소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회사일이 생각보다 많이 바쁩니다.


프로젝트 도움 요청을 처음 받았을 당시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부담이 되었다고 하셨는데 막상 글을 완성해나가는 동안의 마음은 어땠는지?

: 아직도 무언가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폐는 끼치지 않은 것 같다는 점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글을 보내줄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긴 합니다.


평소의 행복으로 소재를 선택한 이유가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편’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행복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을 함께 하셨었는데요. 요즘 가장 연습하고 있는 행복은 무엇인가요?

: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연습을 많이 합니다. 당연하다는 생각을 버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것들이 고마워집니다. 누리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누릴 수 있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다 보면 저는 그 순간이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 인터뷰에서 '지금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라고 하셨어요. 사람들의 일상에 작은 판타지를 만들어주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지금 인터뷰에서 그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 줄 수 있나요?

: 시골에 에어비앤비 오픈을 준비 중입니다. 누구든 '평일은 도시에서 치열하게 살고 주말엔 시골에서 한적하게 쉬겠다'라는 계획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프로젝트를 잘하고 있는지 자문자답을 해보겠다고 하셨는데 프로젝트 진행이 잘 되고 있는 것 같나요? 순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 80% 정도 준비되었습니다. 2주에 한 번 정도 시골에 내려가서 주문한 가구들과 소품을 설치하고 정리합니다. 순탄한지 아닌지는 오픈을 해보고 나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이나,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 미래의 저에게 한마디 하자면, 결과적으로 잘 되었든 못되었든 간에 기회를 얻었고 시작할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만큼은 감사한 마음은 잊지 않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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