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잘 보냈다는 마침표는 그날 글을 썼는지 아닌지와 무관하지 않다. 채워진다는 느낌은 ‘쓰기’라는 행위로 귀결된다. 그러나 막상 뭔가를 쓰려고 하면 매번 알 수 없는 저항에 부딪힌다. 이 무의식적인 힘은 생각보다 강해서 쓰려는 의지를 밀어내고 회피하게 만든다. 쓰면서 안도하지만 쓰는 행위를 멈칫하게 만드는 자잘한 불안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그냥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묻는다.
아마도 그 이유를 찾는 길 위에서 ‘나’를 만날 것이다.
‘나’라는 사람.
스스로에게 부과한 의무와 그에 따른 책임의 무게에 짓눌리듯 사는 사람.
해야 할 일들을 부채처럼 펼치고 도장 깨듯 하나씩 지워가며 해내야 마음이 편한 사람.
가장 맛있는 건 아껴뒀다 나중에 먹는 사람(그래서 결국 제일 맛없을 때 먹거나 누군가에게 빼앗기거나).
참을성 테스트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아파도 진통제 안 먹고 오래 버티기 하는 사람.
발을 푹 담그고 첨벙 대며 즐기지 못하고 경계에 선 사람처럼 아슬하게 한 발로 버티며 선택권을 남에게 양도하는 게 어렵지 않은 그런 사람이 ‘나’라는 걸 발견한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어도 맘 놓고 누리지 못하는 집사 근성이 내 안에 내재돼 있다는 게 분하면서도 인정되는 바다.
‘쓰기’에 대한 상념이 어찌 이리로 흘렀을까.
하고 싶은 일보다 우선 해야 할 일들의 무게에 짓눌린 푸념들이 묵은지처럼 곰삭아 새싹이 오르듯 나의 쓰기에 날개로 돋치길 바라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