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보는 아침
세상 모든 일이 뜻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우연과 모순적 상황이 더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어리석게도 분진처럼 일어나는 머릿속 생각의 가지는 사방으로 질서 없이 뻗어 나가 그 의지를 고집하게 된다. 뻗친 가지의 방향을 정하는 게 뿌리라면 나의 뿌리는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올라오는 '불안'이 기폭제다. 다시 말하면 '안전'한 상황을 유지하기 위한 집착이 나의 기본 베이스인 것이다. 불안한 마음이 발동되면 향에 불을 붙여 연기를 피우듯 계속해서 불안의 서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오른다. 시작점의 불안은 그에 근거한 스토리를 지어내고 눈덩이처럼 부풀어 올라 실제 일어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먹구름을 피우며 이미 무겁게 내려앉아있다. 불편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선 바로 이 부분을 마주 보기하며 끊임없이 뻗치는 생각의 가지를 쳐내고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딸내미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이 '불안'의 서사가 잠수함에 나를 태우고 바다 깊은 바닥으로 끌어내리듯 잠식시키고 마는데 그럴 때 옆에서 코를 골고 자는 남편은 신기한 생명체다. 내가 이상한 걸까? 혹여라도 갱년기 불면증으로 잠을 못 자는 걸까 하는 의구심은 야근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는 딸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법처럼 풀려나 잠이 몰려오는 걸 보면 역시나 나의 불안이 문제인 것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겁쟁이 빌리>는 내 모습이다. 걱정이 많은 빌리에게 할머니가 주신 선물은 손가락 한 마디 만한 꽤 작은 '걱정 인형'이다. 잠들기 전 인형에게 걱정을 한 가지 이야기하고 베개 밑에 넣어두면 인형이 대신 걱정 해 줄 거라고 건네주셨지만 빌리는 결국 자기가 떠넘긴 걱정으로 인형이 힘들걸 걱정하는 착하고 소심한 꼬마다. 착한 빌리는 걱정 인형들을 위한 인형을 계속해서 만들어 주고 걱정을 덜어낼 수 있었다는 귀여운 이야기인 이 그림책을 딸내미가 보더니 어느 날 내게 '걱정인형'을 선물해 줬다. 야근하고 늦게 들어오면 이 인형을 베개 밑에 두고 걱정 말고 자라는 말과 함께. ^^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티벳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