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이었기에 그 이유가 충분했던 불편함 에레미또 호텔
불편했다.
즉흥적이고 예민한 감수성의 아내의 변덕은 항상 통제되고 계획적인 것을 추구하는 나를 불편하게 한다.
제노바의 아침을 서둘러 떠난 우리는 일정상 지나쳐왔던 칭퀘떼레를 여행하기로 했고, 시간 관계상 마을을 다 들리지 못하고 사진만 몇장 찍어보기로 했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경관은 이내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어느새 우리는 배위에 몸을 싣고 바닷가 다섯마을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바닷가가 고향인 우리에겐 이미 익숙한 풍경들이 펼쳐졌고 눈앞의 풍광은 경포대 였다가 태종대 이기도 하고 동백섬 이었다가 오륙도 이기도 하며 나타나고 사라져갔다.
바람과 파도를 마주하며 셔터를 누르고 흔들리지 않으려 김볼을 꼭 쥐었다. 그러하기를 세시간 남짓후에 뭍으로 닿을수 있었고 기분나쁘지 않을 정도의 어지럼증이 가라앉을 즈음에 나는 우리가 돌아갈 배가 너무 늦은 시간에 있다는 얘길 듣게 되었다.
불편했다.
그러려니 적응했던 그 시간들이, 그 예정치 않았던 일정들이, 애써 눌러 진정시켰던 불편감이, 스멀스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역정이 나려했고 다행히도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에 그 역정을 외면할 수 있었다. 서둘러 찾아간 근처의 아이스크림 가게주인은 친절하게 몇가지 방도를 알려주었지만 불행하게도 어느것 하나 우리에게 적당한 해결책이 되어주질 못했다. 마침 눈에 들어온 길가에 세워진 택시에서 전화번호를 찾아볼수 있었고, 그 번호로 전화를 했지만 우리가 있는 곳에서 배를 타기전 차를 주차해둔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무려 150유로의 교통비를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역정이 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해결책은 정해지지 않았고 불편한 마음을 다스리며, 아쉬운 마음에 구글맵이라도 켜 보아야 했다.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을 대중교통으로 가는 법을 검색했고, 다행히도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며 1키로미터 남짓의 발품을 팔면 갈수있는 방법이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것이 현명한것은 당연했고 우리는 서둘러서 버스정류소를 향했다.
노부모님을 모신 여행이었기에 더 염려되고 조심스러운 것이리라...
버스 정류소를 향해 달리다시피 걷는 내 잰걸음이 계속 절름발이처럼 속도를 늦추며 박자를 놓치게 되니...
이태리에서 타게되는 첫 버스.
우리가 그 탑승절차를 알리가 만무하고, 대책없는 상황에선 주변의 도움만이 살길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친절한 빠트리찌아 아주머니가 서툰 영어로 상냥하게 버스표를 사는법부터 내려야할 정류소까지를 기사님께 물어 옆옆이 우리를 도와 주었다. 너무나 고맙고 정다운 이태리 주민들...
'잰걸음으로 750미터를 걸어야 기차를 탈수 있다.'
'이 거리를 9분에 걸어야 기차시간을 맞출수 있다.'
노부모님이 염려되지만 일단을 걸어보기로 한다. 내가 앞장서 네비게이터가 되고 아내는 뒤에서 부모님을 챙기며 쫓듯이 걷는다. 다행히도 기차역은 생각처럼 멀지않았고 서둘러 도착한 역전 발권기에서 표를 구해본다. 아뿔싸;;; 동전밖에 받지 않는구나;;;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역정이 또 차오른다. 근처 매점에서 동전으로 교환을 시도하지만 여행지 기차역주변 매점에서 동전교환을 하고자 하는이가 어디 나 뿐이더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절 당한다.
그러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버젓이 역무원이 있는 매표소가 날 비웃는다. 바로 옆에 매표소를 두고 이 난리를 치고있는 어리석은 내모습도 아내의 변덕때문이라고 옹졸한 역정이 난다.
다행히도 기차에 몸을 실었다. 버스비와 기차표값 모두 네명분이 22유로... 택시를 탔더라면 대체 얼마를 손해를 봤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간사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기차는 쏜살같이 달려주었지만 예정했던 출발 시간은 벌써 한참이 늦어진터였다. 차를 주차할때 예약해두었던 주차 시간을 훌쩍 넘긴터라 혹여나 딱지라도 끊기지 않았을까 마음이 조급했다. 다행히도 예약했던 시간보다 늦은 시간에도 주차딱지가 끊기지않아 잠시를 또 좋아라하고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인 파브로 지방의 에레미또 호텔로 향했다.
출발시간은 오후3시 도착 예정시간은 7시...
예약한 호텔이 산속에 있어 해가지면 찾아오기 힘들거라고 호텔 홈페이지에 나와있었기에 마음은 더 조급했다. 고속도로에서 처음으로 이태리 현지사람들처럼 차를 몰았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운전을 했지만 미국생활에 이미 익숙해있어서 가급적 무리한 운전을 하지않고 살았었는데, 지금은 그럴수가 없었다. 무작정 140-160km의 속력으로 차를 몰았다.
이때는 과속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몰랐다.
파브로 지역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차는 도착지점을 쫓아 구글맵의 경로를 밟아가고 있었다. 해가지고 어둠이 깔렸고 우리가 차를 몰고 가고있는 길은 전설의 고향 세트장 속으로 변해 있었다. 혹은 망우리 공동묘지 가는 길이거나... 어쩌면 그리도 해는 빨리 떨어지는지... 달은 또 왜 하필 초승달인지... 을씨년스럽고 으스스한데, 결국 우리는 길을 잃었다...
길을 잃고 산중턱에 서 있는 우리... GPS는 수신불가 상태에 구글맵(다행히 오프라인맵은 받아왔지만)엔 우리 위치를 찾지 못하는 포인트가 헤매고 있다. 아내와 나의 눈은 촛점을 잃었다. 더 좁은 눈앞의 길로 차를 몰고가면 돌이킬 수 없을것만 같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최서방, 차를 돌리게. 더는 안되네...” 어머님이 침묵을 깨고 말씀을 하신다. 그랬다. 거기서 차를 돌리지 않았으면 어땠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오싹하다.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 왔던 길을 돌아가며 전화기에 안테나가 얼마나 잡히는지 신호를 살핀다. 다행히 불빛이 밝고 길목의 폭이 확보된 곳에 다다르니 전화기의 안테나가 잡혔다.
'살았다!' 싶었다.
호텔로 전화를 하고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호텔 담당자는 퉁명스레 "그래서 일찍오라고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냐?"며 핀잔을 준다. 구글파이 전화만 믿고 따로 로밍 서비스를 받아오지않은 것이 실수라면 실수 였다. 구글파이 서비스가 이태리에서 전혀 작동을 하지 않았고 덕분에 우리는 보다폰 심카드를 별도로 구매해야 했다. 오늘 호텔은 아내가 예약을 했던터라 아내에게 보내진 이메일을 수신할수가 없었다. 이메일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불친절한 호텔직원에게도 연신 쏘리를 얘기하며 굽신거려야 했다.
다행히 호텔 담당자가 파브로 역으로 나와주기로 했고, 우리는 그곳에서 파브로역으로 차를 돌려 몰았다.
희망이 보여서였을까? 또 역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오늘의 모든 난리가 아내의 변덕에서 온거라고 생각되면서 화가난다. 그런데 또 지금생각하면 그 덕분에 잊지못할 여러가지 여행의 추억을 쌓은 것 일텐데... 아무튼 그 순간은 옹졸하게 골이 나있었다.
파브로 역으로 호텔직원이 와주었고 우리는 호텔직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다시 차를 몰아 산길을 접어들었다. 그때 알았다. 애시당초 구글맵이 알려준 길로는 갈수 없었다는 것을... 꼬불꼬불 산길을 40여분을 올라간다. 밤길에 차한대가 간신히 다닐수 있는 모레먼지 날리는 비포장길을 간다. 우리를 에스코트 하고있는 호텔에서 온 차는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써서 원래 색깔을 알아보기 쉽지 않았고 우리차 역시 점점 회색으로 변하면서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에레미또.
그렇게 우리는 그 밤에 이 호텔에 도착했다.
너무 어두운 밤에 도착한 탓에 조명이 비춰주는 허락된 부분들만으로 호텔의 첫인상을 느껴야했고 그것이 날이 밝은 지금도 너무 아쉽다. 입구의 등이 따스하게 밝고 운치있게 우리를 반겼지만 그보다도 밝게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것은 하늘에 보석처럼 펼쳐진 은하수였다. 나는 은하수도 처음 보았고 은하수가 덩어리져 조금씩 회전하듯 움직인다는 것도 그날밤 처음 알았다. 돌처럼 굳어서서 한동안을 머리를 젖혀들고 장대한 우주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이날의 밤하늘을 잊을수가 없다.
쏟아지는 은하수를 등뒤로 호텔로 들어섰다. 체크인을하면서 느낀 로비의 첫느낌은 호텔이 아니라 와이너리 로비에 침대와 소파등이 놓여진듯한 모습이었다. '로비에 있는 침대라니? 설마 저렇게 노출된 곳에서 자야하나?' 싶었다. 다행히 그 곳은 그저 로비이자 여행객들의 쉼터였고 우리는 예약해 둔 방으로 안내 받을 수 있었다.
에레미또.
그 옛날에 수도원이었던 곳을 한 디자이너가 호텔로 개조했다한다. 아름다운 호텔로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해서 우리 여행동선 안에 일부러 들려보기로 하고 예약을 했던 곳이다. 좁은 복도와 오래된 돌들로 쌓아올린 집. 익숙하고 고즈넉한 결을 지닌 소품과 어느곳하나 직접적인 조명을 비추지않는 은은한 내부의 조도...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롭다. 하지만 좁고 불편하고 감추어져있는 곳이다.
좁은 호텔방안은 겨우 들어앉아있지 싶은 퀸사이즈 침대와 머리맡의 수도자의 상과 문구가 새겨진 팻말이 있고 점소등을 하는 소박한 전등들이 몇몇 구비되어있다. 한쪽구석으로 작은 쪽창문이 있고 그 아래 돌로 깍아 만든 사물을 놓거나 할수있는 공간이 준비되어있다. 돌을깍아 만든 세면대와 운치있고 소박한 황동 수도꼭지도 참으로 소담하고 멋스럽다.
화장실은 좁지만 물이 잘 나오는 샤워부스가 구비되어있고 헤어샴프와 바디샴프는 독특한 용기에 부어쓸수 있도록 정갈하게 준비되어있다.
밝고 흰 회백의 소담한 방에서 우리부부는 편안한 밤을 보냈다.
침대가 좁아서 였을까? 공간이 답답해서 였을까? 뒤척이듯이 자연스레 눈을 떴다. 조심스레 닫아놓은 쪽창 틈새로 빛이 보인다. 해가 떴구나 싶어 가만히 몸을 일으켜 쪽창을 열어 젖혔다.
눈 앞에는 산허리를 넘어 차오른 운무가 넘실대며 펼쳐져 있었다. 구름위에 서있는 듯한 황홀감이 펼쳐졌다. 아내를 깨워 밖에 나가자고 일러두곤 먼저 방밖으로 나섰다. 밤에 찾아들어온 방과 복도의 느낌과는 또 다른 공간을 본다. 여전히 간접조명으로 복도의 부분들을 밝히고 있지만 그보다 선명하게 복도 먼곳에 나있는 작은 창들사이로 햇살이 호텔안을 비춰준다. 여전히 너무 밝지않은 파리한 그 먼 햇살은 전혀 부담스럽지않게 가야할 길을 알려주고 있다. 호텔안의 복도는 좁지만 길지않고 계단으로 꺽여 이어져 내려온다. 그 계단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디뎌 내려오면 간밤에 만났던 침대가 놓여있는 생경스런 로비로 연결이 되어있다. 아침에 본 로비는 여전히 신비롭게 보인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의 로비에는 탁자와 소파 메트리스 같은 누울자리등으로 편안하게 이루어져 있다. 조용한 틈을 타 사진도 자유로이 몇장을 찍을수 있었다. 로비를 지나오면 식당이 보이고 식당을 지나쳐서 밖으로 나올 수 있다. 건물의 크기나 주변공간의 조성은 기성 호텔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라서 호텔에서 잠을자고 나왔다는 느낌이 아니다. 겪어본 적이없어 주장할 수 없지만, 왠지 산속 암자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고 난 후에 법당 마루를 나선듯한 느낌일것만 같다. 잔디밭 마당엔 야외용 의자 몇몇이 대수롭지않게 늘어 놓여있고, 누워서 책을 볼 수도 있을법한 간이 침대들도 몇몇이 옆쪽에 가지런하게 놓여있다.
눈을 돌려 내가 나온 호텔을 돌아본다. 호텔은 단단한 돌을 쌓아 지어져있다. 규칙적인 벽돌의 모양도 아닌 크고작은 여러 형태의 돌덩이 들이 이리저리 어우러져 벽을 세우고 있다.
돌로 지어진 산속의 수도원.
이렇게 말해야 옳지싶다. 여기를 호텔이라고 부르기엔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너무 먼 거리가 있다.
기분좋은 아침공기를 마시면서 호텔주변을 구경한다. 눈앞에 펼쳐진 운무도 기분좋게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 보고. 뒷담을 따라 살짝이 언덕을 올라가 보기도 한다.
사람들이 보인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 호텔에는 12개의 객실만을 개방한다고 한다. 12방이 예약되고 나면 만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호텔에 지나다니는 객들도 한눈에 안면을 익힐 만큼만 보인다.
누워서 책을 보는 사람, 앉아서 명상을 하는 사람, 요가를 하는 사람등 이곳에서는 '쉬고자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에레미또 호텔에는 인터넷이 되지않는다. 예약을 할때 호텔측에서 이 점을 미리 양해를 구한다. 어떤 곳에서는 심지어 전화 안테나도 잡히지 않는다. 이곳은 '쉬고자 하는 사람들'만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편안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 곳.
감추어진 곳.
가두어 진 공간.
호텔 에레미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목적으로 한 이들을 편안케 했다.
호텔에서 먹어본 아침상은 껍질 단단한 빵과 따듯한 커피, 향 가득한 따듯한 차한잔, 과일과 요거트... 이런 소담한 식단이었다. 우리는 아침을 포도나무 등걸이 드리운 야외에서 먹었다. 안면을 이미 익혀버린 쉼을 즐기던 사람들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면서 익숙하고 별스럽지도 못한 아침상을 함께 했다.
그 외에도...
에레미또 호텔에는 우리가 아쉽게도 체험해 보지 못했던 따듯한 물의 스파가 준비되 있었고(저녁에 예약을 하면 스파를 즐길 수 있다), 지하로 연결된 공간에는 제법 넓직한 요가를 하는 공간도 마련되 있었다. 또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기도를 올려보고 싶을법한 작은 기도공간도 꼭대기층에 준비되어 있었다.
아쉬웠다.
또 다음일정을 위해 우리는 늦지않게 호텔을 체크아웃해야 했다. 체크아웃을 하면서 혹시나 드론을 날려서 이 근사한 산속의 호텔을 찍을수 있는지 물었다. 조용해 보이는 종업원이 내실로 들어가 여부를 물어보았고 호텔주인의 허락을 얻고 나는 호텔주변을 드론으로 촬영할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의 여행숙박지를 선호하는 사람들을 위해 잘찍진 못했지만 그날 찍은 사진 몇장과 촬영한 호텔주변의 드론영상을 함께 올려본다. [Eremito Hotelito Del Alma] 호텔을 찾아보고자 하는 여행객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우리는 에레미또 호텔을 나섰다.
겨우 하루를 묵고 지나치기엔 애즈녁에 이 호텔을 들리는것이 아니었다고 꾸짖음을 들어도 할말이 없을 그런 경험 이었다. 에레미또 호텔은 적어도 몇일을 세상과 떨어져서 쉬고자 하는 여행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공간이었다. 다시 이태리 여행을 하게되면 그때는 별다른 일정이 없는, 이 호텔이 기다리는 손님이 되어서 이 공간을 다시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