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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Jul 12. 2018

무례한 손님에게도 커피를 팝니다

나도 어딘가에선 ㅠㅠ그런 손님일까?

(아래 내용은 ‘핸드 투 마우스’를 읽고 “일”에 관한 소재로 에피소드를 작성한 것입니다. 글쓰기 강의에서 현재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에 관해 글로 써보라는 과제로 쓰게 되었습니다. 좋은 손님들이 더 많으세요. 부득이하게 과제하는 주에 힘든 일이 겹쳐서 오해할 소지의 내용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장사의 현장에서 어떻게 손님과 관계 맺을 것인가에 대해 정리하고 싶어 작성했습니다)


퇴사하고 이직을 준비하는 시간 동안 가족이 하는 카페에서 자비량 아르바이트를 한 지 4개월째다. 어느 날, 손님이 없어 하염없이 기다리던 중 아메리카노 5잔을 주문하는 일행이 들어왔다.


일행 중 한 명인 여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빽다방으로 가고 싶은데, 왜 여기에서 사먹느냐는 뉘앙스가 포함된 한 마디였다.

“빽다방에서 1,500원이면 사이즈가 이만한데 여긴...”          


평소 같았으면 한 귀로 듣고 흘렸을 말인데, 그날따라 비수처럼 꽂혔다. 당하지 않아도 될 비교를 직접적으로 경험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 역시 다른 매장 가서 충분히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다. 손님에게 맞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 때문일까?  


좋은 커피콩을 구매해서 나름 철학을 가지고 가게를 운영하며 똥줄 빠지게 겨우 버티고 있는데 김이 샜다. 브랜드를 먹고 사는 시대에 개인이 하는 카페로 손님들의 마음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카페 하는 주인치고 스타벅스 같은 매장을 운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장만 내면 사람이 몰려오는 마법 같은 스타벅스를 지나칠 때마다 그런 매장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이미 계산은 끝났고, 팔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었다면 “손님, 잘 몰라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같은 돈이라도 원재료 가격부터 달라요. 여기서 사먹기 싫으시면 빽다방 가세요”라고 나도 터진 입으로 말해주고 싶었다.                     


다른 가게와 가격을 비교하며 말하는 손님이 있어도 나는 한 잔이라도 더 팔아야 하는 입장이다. 듣고도 못 들은 척했지만 마음은 이미 뒤집어졌다. 손님은 자연스럽게 ‘갑’이 되고, 나는 하루 목표한 분량을 팔아야 하는 ‘을’이니 말을 아껴야 한다.                      


뒤이어 아이스 카페라떼 1잔과 아메리카노 9잔의 주문이 들어왔다. 빽다방 이야기에 마음은 묶여있지만 스피드하게 주문을 처리해야 한다. 일정량의 얼음을 채워 넣고 물과 에스프레소를 담아내는 과정을 4개월째 반복하지만 실수투성이다. 아이스 음료를 제조할 때 마음이 급하면 컵에 얼음을 넣다가 바닥으로 떨어지기 일쑤다. 얼음이 녹으면서 바닥에 물이 흥건해지니 되도록 떨어뜨리지 않는 게 청소를 줄이는 방법이다.           


단체손님이 떠나고 자리에 앉자마자 무례하게 행동한 익명의 여자 손님 때문에 복잡했던 마음이 욱하고 터져버렸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당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회사 다닐 때와는 전혀 다른 삶의 현장이다. 회사에서는 고객의 불평불만을 직접 듣는 일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상사의 잔소리를 듣고 어떻게 상처받지 않고 넘어갈까 하는 게 고민이었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을 때면 마음이 단단해질 때까지 얼마나 감정의 부대낌을 겪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직장 다닐 땐 상사 때문에 시발비용(스트레스를 받아 지출하게 된 비용)을 썼다면, 장사하면서는 목표한 금액을 벌지 못했을 때 시발비용을 먹는 걸로 지출한다. 장사하다가 손님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을 땐 맛있는 점심을 사먹는 게 유일한 해소방법이다.           


장사는 낭만적이지 않다. 회사 다닐 때는 보장된 점심시간이 있었지만 자영업자에겐 보장된 시간 따위는 없다. 문을 닫고 자리를 비우려고 하면 손님이 꼭 온다. 멀리 가지 못하니 주3일은 건너편 밥집에 가서 제일 저렴한 7,500원의 우동이나 덮밥을 먹는다. 커피보다 5배나 비싸지만 가게 동정을 살피며 밥을 먹어야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장사하는 사람에게 손님은 양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존재다. 가장 힘이 나도록 도와줄 때도 있지만 도를 넘는 불편함을 줄 때도 있다. 손님은 장사에 있어서 없어선 안 될 존재이기에 ‘어떻게 좋은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해 자주 고민한다.     


“맛있어요”라는 손님의 한마디는 힘들게 일하다가 지쳐 있을 때 격려가 된다. 반면 1,500원인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본인들의 신세한탄이 시작되면 1,2시간 이상 불필요한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한두 번 그런 경험이 쌓이고 4개월 동안 일하면서 나만 아는 ‘단골손님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나만 아는 ‘단골손님 블랙리스트’에는 다섯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 ‘다짜고짜형’은 메뉴에도 없는데 자신을 위해 돈줄테니 만들어달락 내놓으라고 한다.


두 번째 ‘왕년에 해봤는데형’은 카페 경험이 있고 커피 좀 배웠다며 경험치를 뽐내려 한다.


세 번째, ‘선택장애형’은 손님이 많이 몰릴 때 이것 주세요 했다가 30초 안에 저걸로 바꾼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다시 처음 선택한 걸 골라서 메뉴의 혼선을 유발한다.


네 번째, ‘친한척형’은 가게에 한 번 정도 방문했는데 만들었을 때부터 온 것처럼 주인과 친밀감을 유독 강조한다. 친한 척하는 손님이 가고 나서 기억을 더듬어보면 딱 한 번 왔다 간 경우가 많아 당혹감을 경험한다.


다섯 번째, ‘죽치고형’은 멈추지 않는 수다가 이어진다. 테이크아웃 매장의 생명은 회전율이다.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저렴한 가격을 선택하고 자리값을 받지 않는다. 손님이 죽치고 있어버리면 저렴한 가격은 무의미해지고 끊이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매장에 ‘죽치고형’ 단골손님 부류가 오면 반갑긴 하지만 현명한 대처방법이 없어 난감할 때도 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찾아오는 '매너 좋은 부부'가 있다.


3,500원인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오랫동안 눌러앉아있는 손님이다. 매장에 부부가 나타나면 나는 낌새를 채고 점심을 먹으러 오후 2시에 나갔다가 3시쯤 돌아왔다.         


밥을 먹고 왔으니 당연히 새로운 손님인 줄 알았는데 부부가 턱하니 앉아 있어서 식겁했다. 부부는 1시간 동안 끝나지 않는 이야기 중이었다.   


매너가 좋은 손님도 무섭다. 상냥하고 배려심 넘치는 매너 뒤에 무엇이 숨어있을까 겁이 날 때가 있다.                  


어떤 날은 시험기간인 청소년 단골이 찾아왔다. 대기석으로 마련해 놓은 자리에 2시간 이상 앉아 있다 가는 유형이다.


그날은 시험기간이라며 음료 3잔을 마셨고 대학생 남자친구 이야기를 했다. 다음 손님이 오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13,500원을 벌려면 어쩔 수 없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이 오는 날엔 밥을 먹으러 자리를 피하거나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흐름을 끊는 꼼수가 필요하다.           


회사에서 점심시간마다 커피를 소비했던 입장에서 이젠 파는 입장이 되니, 손님이 다르게 보인다. 생각만큼 손님들은 젠틀하지 않았다. 가격이 싸면 싸다고 한마디 하고 비싸면 비싸다고 뭐라고 말한다. 커피가 진하면 진해서, 연하면 연해서 싫단다.  


왜 패스트푸드점에 와서 삭스5번가 같은 고급 백화점이나 자기 돈을 넣어둔 은행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그런 미소와 우아한 응대를 나에게 원하는가 말이다.              
by 핸드 투 마우스


내가 일하는 곳은 스타벅스가 아니다. 아메리카노는 1,500원이고 가장 비싼 메뉴는 4,500원인 테이크아웃매장이다. 나는 손님들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손님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비법서가 있다면 어떻게든 구하고 싶다.      


무례한 손님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이 있다고 해도, 돈을 주고받는 관계에선 무용지물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도가 지나친 이들에게 괜한 환심을 사고 싶지 않지만 한마디 잘못했다가 불친절하다며 일을 키우고 싶지도 않다.           


 


무례한 이들의 비교대상은 늘 거대한 프랜차이즈 매장이다. 뱁새인 개인 카페가 황새인 프랜차이즈 매장을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지기 딱 좋다. 혼자서 메뉴 개발, 청소, 계산, 음료제조, 로스팅, 홍보 등 하루에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이 넘쳐난다.


아무리 일을 쳐내도 일이 계속 기다리고 있다. 개인이 하는 가게들이 살아남으려면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고 돈을 줘서라도 미디어의 힘을 빌려 유명해지는 게 가장 손쉬운 선택처럼 생각될 때도 있다. 안타깝지만 마케팅 비용으로 쓸 돈이 없다.      


계속되는 투자와 건물주에게 내야 할 월세, 고정비용을 벌기 위해서라도 커피가 필요한 모든 손님에게 무조건 팔아야 한다.


몇 발자국만 걸으면 빵빵한 마케팅으로 무장한 프랜차이즈 매장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나는 무례함 따윈 가볍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며 오늘도 ‘손님’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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