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톡톡> 리뷰
대학로 TOM 관에서 하는 코미디 연극 <톡톡> 을 보러 갔다. 연말이라서 그런지 관객들이 자리에 꽉꽉 차있었고, 꽤나 북적북적한 분위기였다. 공연 전 시놉시스랑 프리뷰 써놓은 걸 한번 보고 싶었는데, 추운 날씨 탓에 핸드폰이 툭 꺼져버려서 뭘 할 수가 없었다. 사실은 눈 오는 날 혜화까지 오느라 피곤했는지 뭘 하기가 조금 귀찮기도 했다. 그래서 "아, 몰라 그냥 봐." 하면서 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대었다. 그렇게 무대에 불이 들어오고 객석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스토리는 한 공간 안에서만 전개됐다. 공간의 일정함이 주는 지루함은 있었지만, 배우들의 찰진 연기와 대사로 충분히 무마시킬 수 있었다. 연극 <톡톡>은 각자 다른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곳에서 함께 집단치료를 받는 내용이다.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는 뚜렛 증후군, 뭐든지 숫자로 계산하려는 계산 강박증, 지나친 결벽으로 계속 씻고 닦아내는 질병공포증, 몇번이고 다시 확인하고 확인하는 확인 강박증, 같은 말을 두번씩 반복하는 동어반복증, 모든 것들이 대칭을 이뤄야 적성이 풀리는 대칭 집착증. 총 6명의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무대에 등장한다.
이들은 저명한 의사 스텐박사에게 강박증을 치료받기 위해 이곳에 모이게 되지만, 개인 치료가 아닌 집단 치료로 진행된다는 사실에 1차 충격을 받고, 스텐 박사가 타고 있는 비행기가 연착되서 언제 올지 모른다는 사실에 2차 충격을 받으면서 혼란스러워한다. 그때 계산 강박증을 갖고 있는 벵상과, 대칭 직찹증인 밥이 아이디어를 낸다.
"그룹치료, 그거 별 거 아니에요! 그냥 서로 모여서 자기 강박증에 대해 얘기하고, 그 강박증을 고쳐보도록 도와주고 응원해주기만 하면 돼요."
이전에 그룹치료의 경험이 있는 밥의 한 마디를 시작으로 6명의 강박증 환자들의 강박증 탈출 프로젝트도 시작된다. 6명의 환자들은 남 앞에서 쉽게 말할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경청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뚜렛 증후군을 가진 프레드가 눈에 띄었다. 항상 그가 목에 걸고 다니는 목걸이에는 자신의 강박증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다. 사람을 보자마자 그 목걸이를 내밀어야 된다는 게 참 안타깝게 느껴졌다. 60여 년 인생 동안 얼마나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했을까, 그로 인한 소외와 상실감도 어마어마했겠구나.
그럼 프레드를 포함한 이 사람들이 과연 이 강박증을 고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강박증은 하나의 정신질환이자 심리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분명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전에 프리뷰에 썼던 글에서는 "굳이 그걸 고칠 필요가 있을까..?"라는 말도 하긴 했지만, 중요한 건 그 강박증을 고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 6명의 사람들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비록 오랫동안 이 강박에 묶여 살아왔지만, 힘을 합쳐 고치려고 노력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돕는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강박에서 벗어나게끔 나머지 사람들이 돕는다. 동어 반복증 릴리에게는 말을 한번만 하게 하고, 계산 집착증 벵상에게 수학문제를 내면서 계산하지 않게끔 하고, 확인 강박증인 마리에게는 집에 가스를 잠그고 왔냐고 여러 번 질문을 한다.
아쉽게도 6명 모두 치료에 실패하게 된다. 평소 하던대로의 습관 때문인지 강박을 참는 3분의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진다. 그들은 강박을 고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좌절한다.
초등학생 때 유독 딸꾹질이 계속되던 날이 있었다. 그날은 학교 점심시간부터 집에 와 잠들기 직전까지도 딸꾹질이 멈추지 않았었다. 딸꾹질 너무 많이 해서 죽은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에 겁이 나서... 딸꾹질 멈추게 하는 온갖 방법을 시도해봤었는데... 정말 많은 것들을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서 결국 침대에 누워서 전쟁에 패배한 용사처럼 한숨 쉬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이상하게도 딸꾹질은 멈춰있었다.
그 이후 나는 이따금씩 찾아오는 딸꾹질에 대해 연구를 하다가, 그것을 멈추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그 해결책은 바로 "지금 딸꾹질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자!" 였다.
어느 날에는 또 딸꾹질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딸꾹질 보다 더 급한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숙제를 하느라 딸꾹질이고 뭐고 숙제에 완전히 몰두했었다. 그러고는 숙제가 끝나고 한참 뒤에서야 '아, 아까 딸꾹질 했었지...?' 라는 사실을 깨달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딸꾹질이 시작되면, 나는 다른 몰두할 것을 찾곤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어렸을 때 얻은 교훈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 연극에서 나는 과거 딸꾹질의 비유를 떠올리게 되었다.
'자신이 아닌 남들에게 집중할 때, 강박에서 벗어 날 수 있다?'
몇몇의 관객들을 발견했을 것이다. 밥이 릴리를 구하기 위해 그토록 싫어하는 선을 밟아가는 발걸음을 보았고, 벵상에게 화내면서 "집 열쇠고 뭐고 간에!" 라고 내뱉는 확인 강박증 마리의 대사를 들었다. 벵상은 선을 밟으려고 노력하는 밥을 응원하느라 시간을 계산하지 못했고, 병에 걸릴까 봐 악수하지 못하는 블랑슈는 울고 있는 릴리를 위로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관객들도 깜짝 놀랐고, 그들도 나중에 알아차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기뻐했다. "내가 그랬다고?!'라는 반응과 함께 말이다.
확실히 강박증은 확실히 정신적인 문제이다. 1차적으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인식하고, 그게 싫어하는 일이라는 2차 인식을 한 이후에야,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일이 일어나는지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순간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내가 아닌 타인을 더 생각할 때에 강박을 떨칠 수 있다.
나는 내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만, 내가 보고 있는 세상에서 나를 배제한다면?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뭔가 명상법 중에서 제3자 입장에서 세상과 나를 관찰하는 방법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됐든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이 극의 교훈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도 적용되는 듯하다. 개인적인 문제이든, 사회 구성원으로서이든간에 말이다. 어렸을 적 여러 번의 딸꾹질에서 얻었던 작은 의미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 조금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