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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ug 17. 2022

집에서 먹는 제주도식 백반

원래 제목은 "정성을 다한 한상"이었는데 바깥양반이 이걸로 하라고...

 제주도에서 올라온 다음날 나는 몸살을 앓았다.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그것도, 중부지방을 휩쓸어 간 폭우를 뚫고 운전을 하느라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학교에도 잠시 나가 일을 보고 왔으니, 코로나가 의심될 만큼 고열과 통증이 찾아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타이레놀까지 먹고 하루를 푹 쉬고 다음날 겸사 겸사하여 장을 보고 왔다. 두둑히 장을 봤다. 곧 개학을 하고, 이제 긴 동반육아는 끝이 날 것이었다. 바깥양반은 제주도에서 먹었던 반찬 몇가지에 대해서 입맛을 다셨고, 나는 나대로 입맛 다시는 반찬이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집밥. 그것도, 정성을 다한 한 상을, 차릴 시간이 되었다는 것.


 몸살은 나았지만 그렇다고 몸사 정상인 것도 아니었다. 목요일 새벽 5시에 집에 와 짐 정리를 마치고 여섯시반에 잔 이틀 뒤, 토요일까지도 체력은 한 60% 정도 상태였을까. 게다가. 그렇다고 아직 쉴 수 있는 것도 또 또 또 아니었다. 아버지 생신이었고, 그래서 대여섯시간이나 외출을 또 한 것이다. 집에는 어찌어찌 왔지만 아이를 보다가 혼절하다시피 우리 모두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일어나 주섬주섬, 차례차례,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백반. 반찬의 힘. 그리고 밥의 힘. 나는 아내에게 일찌감치 예고를 해두었다. 토요일은 점심에 가족모임도 다녀오게 되었으니 일요일 점심 한끼는 내가, 맛있게 차려주겠다고. 오늘을 기다리며 체력이 되는대로 하나, 둘 반찬을 했던 것이다. 그것도 정말 쉽지는 않았다. 마침 엄마가 볶음멸치를 주셨다. 이리 반가울데가. 덕분에, 중멸치로 할뻔했는데, 보자 잘잘한 볶음멸치로 꽈리고추 볶음을 할 수 있었다. 모두의 사랑을 받는 꽈리고추볶음. 그리고 꽈리고추찜도 같이 만들었다. 토요일까지 정신이 없어 사진 같은 건, 찍지 못했다. 그런데 파기름을 내야 하는, 그리고 고추를 따로 쪄서 양념장에 무쳐야 하는, 멸치볶음과 찜이 이렇게도 힘든 것이더냐.


 나는 이때쯤 백반이 왜 맛집을 찾아보기 어려운지, 왜 백반이 사라져가는 메뉴인지를 실감했다. 고작 단 한통의 꽈리고추찜을 만드는데에도 이리 힘이 드는데 하루 종일 장사를 해야하는 분량의 일고여덟가지 반찬을 매일 만드는 삶, 그것은 아득히도 상상이 가지 않는다. 고행의 삶이 아닐까. 그저, 수익이나 효율성을 생각하기보다는, 밥 한상은 이래야 한다는 고집으로 아득바득 지켜자는 고집이 백반상인듯 싶다. 찌개, 국, 실망스럽지 않을 메인디쉬 하나.

 이제나 저제나 반찬을 만든다. 만들다 보니 중간에 쓸만한 요리도 하나 해본다. 가지튀김. 멋들어진 요리다. 가지 다섯이 한 봉지에 든 놈을 1900원 정도에 샀다. 넷은 가지볶음으로 쓰고 딱 하나만은 튀김으로 만들어야지. 찹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섞어 가지를 묻히고, 제육볶음을 위한 앞다리살을 썰어내서 함께 튀겨낸다. 야 그런데 이거 정말 맛있다. 푹 익힌 가지튀김을 굴소스, 간장, 파기름을 배합한 소스에 볶아내면 쉬우면서도 고품격의 요리. 토요일 저녁은 이렇게 마쳤다. 바깥양반은 가지를 싫어하는 터라 고기 튀김만 몇조각 먹었다. 덕분에, 내가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토요일 저녁까지 완성된 반찬은 이랬다. 가지볶음을 만들기 전. 감자채볶음과 꽈리고추, 거기에 젓갈 하나로 맛깔난 밑반찬 세트가 완성. 사실 1학기에도 이렇게 밑반찬을 여러가지 만들어서 놔두긴 했는데 바깥양반이 잘 꺼내먹지 않았다. 반찬가게에서 사 올 정도로 좋아하는 반찬이던 메추리알 장조림도 해주고, 고기 장조림도 좍좍, 손으로 고기까지 찢어서 만들어줬는데 그런 반찬으론 바깥양반의 입맛에 맞추지 못한 모양.


 이다지 생고생을 해가며 밑반찬을, 그것도 몸이 극도로 지쳐있던 상태에서 한 것은, 제주도에서 다녀온 백반 투어 탓이 제일 크다. 맛있게 여러 백반집을 다녀왔으면 집에서도 그정도는 한번 차려주어야 직성이 풀린다. 나는 나대로 집밥 식단을 추가해서 좋고, 그 밥상을 받아먹는 바깥양반은 아직 제주도 여행의 기분에 젖어볼 수 있어서 좋고. 해볼만한 일이다. 대신에 마침 비도 오고 해서 남은 일요일과 광복절까지, 집에서 푹 쉬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완도에서 집으로 올라오는 새벽의 여섯시간 운전에 대해 두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대학원 생활을 2년쯤 하다보니 밤 새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다른 하나는, 그렇다고 그걸 후유증 없이 보낼 순 없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 마흔은 밤샘을 견디기 쉬운 나이는 아니다. 적절한 운동과 건강 관리 없이는.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제주도에서 먹었던 것처럼 생선구이, 그리고 제육볶음, 그리고...솥밥. 이 세가지 구색을 맞추어 정성을 다한 한상을 차릴 시간이다. 여기까지 오는데만도 이틀 간 반찬을 해야했다. 물론 그 반찬들이 그 사이 우리 밥상을 즐거이 해주긴 했다. 특히 가지튀김은 정말 최고였는데, 가지볶음과 함께 아무래도 자주 사다 해먹지 않을까. 꽈리고추와 함께 말이다.

 

어쨌든 생선구이를 위해 냉동실에서 흑조기를 꺼내, 튀김가루를 묻힌다. 바~싹 튀겨야 한다. 바~싹. 고등어가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당장 보이는 것이 이놈이니 어쩔 수 없지. 후라이팬에 기름도 넉넉히 붓고 바~싹 튀긴다. 바~싹 생선이 튀겨지는 꼬소한 내음, 꼬소한 소리. 그리고 그 곁에는 솥밥이 익어가는 소리.

 제육볶음은 하루를 간장과 설탕에 재웠다. 토요일 저녁에 가지튀김을 해먹느라 손질한 앞다리살을 따로 떼어두었던 것. 하여 이미 양념이 잘 배어있기에 대파와 양파 넣고 휘리릭 볶기만 하면 땡이다. 마늘 약간, 된장 약간 더 넣으면 좋았겠지만 제육볶음에 착수할 당시에는 이제 순발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약간 밋밋하긴 하지만 마법의 굴소스 덕분에 감칠맛 있는 제육볶음이 완성.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내가 썰어서 그렇겠지만, 투박한 스타일이다. 원래 제육볶음은 어? 이렇게? 어? 한 입 넣고 우적우적 씹으면서, 어? 삼겹살이 아니어도, 어? 살코기, 비계, 껍데기까지 씹히는 게, 최고라니까.

 올해 제일 잘한 일로 나는 이 솥을 꼽을란다. 인덕션 무쇠솥은 정말 마법의 아이템이다. 불린 쌀을 씻어넣고 10분 팔팔 끓여, 5분간 약불에서 뜸만 들이면 천상의 쌀밥이 완성된다. 여기에 가지밥 전복밥 등등도 생각을 해보았지만 다만 지금만은 아니된다. 지금은 백반, 하얀 쌀밥이 정답이다.


 15분의 솥밥의 조리시간은 야물딱지게도 생선을 바싹 튀길 시간 10분에, 그리고 제육을 볶을 시간 5분에 들어맞았다. 나는 생선을 튀기는 동안 쌀밥을 끓였고 제육을 볶는 동안 뜸을 들였다. 그리고 제육이 완성되었을 때,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누룽지까지 예쁘게 조성된 솥에, 숟가락으로 살살 밥을 뜬다. 두개의 작은 공기에 딱 맞는 분량의 밥. 그리고 여기에 당연히 물을 붓고 팔팔, 3분간 끓여둔다.

 그렇게 오늘의 밥상이, 하나 하나 나의 손에 의해 완성되었다. 정성을 가득 들인 한 상이다.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싶은. 이미 여러차례 빛을 발해 온 멸치볶음과 감자채, 꽈리고추찜은 물론이려니와 이번 밥상에 드디어 공개된 가지볶음 역시 내 입맛에 딱. 바깥양반은 멸치볶음의 멸치를 주로 골라먹었고 덕분에 나는 꽈리고추를 마음껏 먹었다. 바깥양반은 감자볶음을 주로, 나는 가지볶음을 주로 먹었다. 그리고 생선은 둘이서 하나씩, 제육은 내가 더 많이.

 

 바깥양반은, 내가 누룽밥을 국그릇에 떠서 내밀자 그것을 혼자서 홀랑 다 먹어버렸다. 내가 남은 반찬들을 먹어치우는 사이에 말이다. 이런 나아쁜. 그러나,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깥양반은 원래 백반, 다시 말하여 흰 쌀밥을 좋아하는 식성이고 나는 잡곡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잡곡파이기 때문이다. 하여 결혼생활 5년간 바깥양반은 집에서 흰 쌀밥을, 햇반이 아니고서야 정말이지 먹을 일이 없었던 것이고, 그것도 솥밥으로 먹을 일은 더더욱 없었던 것이며, 그로 만든 숭늉에 누룽밥은, 더더더욱 없었던 것.


 뭐 이쯤되면, 누룽밥을 혼자 싹 털어먹은 것 정도는, 이해해줘야할지 모르겠다. 하기사 밴밥의 주인공은 흰 쌀밥이더라도, 한찬 하나하나 어느것 허투루 만들어진 것도 아니니. 나 역시 뿌듯하게 한상, 잘 차려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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