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홍어삼합, 그리고 스시까지. 발효식품을 처음 먹는 사람 용기 무엇
한국의 음식 중에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몇 가지 특별한 요리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홍어다. 강렬한 암모니아 냄새로 인해 한국인도 반은 도저히 접근하지 못하는 이 음식이지만, 마니아층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별미로 여겨진다.
직장 초년생 시절, 지금도 여의도에 영업중인 홍탁집이 있는데 고참들이 자주 데려갔다.
점심메뉴도 있고 저녁 막걸리 술자리에도 가야했다. 처음에는 돼지고기만 낼름 먹다 욕들어 먹고, 어쩔 수 없이 먹기 시작했는데 도저히 못먹겠던 음식이 어느덧 익숙해지고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홍어라는 이름은 한자로 '洪魚'로 표기되는데, 몸의 너비가 매우 넓다(넓을 '洪')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 속에서 움직이는 모양이 바람에 너울거리는 연잎을 닮았다 하여 하어(荷魚), 가오리 같다 하여 분어(鱝魚), 수놈이 너무 음탕하다 하여 해음어(海淫魚)라고도 불렸다.
홍어의 식용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현존하는 지리지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경상도지리지」에 울산의 토산공물로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 토산조에는 홍어(洪魚) 또는 홍어(鴻魚)로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홍어를 식용한 역사가 매우 오래됨을 알 수 있다.
홍어를 삭혀서 먹게 된 것은 고려시대 말기로 추정된다. 왜구의 잦은 침입에 시달린 전라남도 흑산도 주민들이 나주로 이주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공도 정책을 펼쳐 섬을 비우고 주민들을 내륙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흑산도 주민들이 영산포까지 이동하는 데는 4-5일이 걸렸고, 냉장시설이 없던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홍어가 발효되어 버렸다. 버리기 아까워 용자들이 혹시나 하고 먹어보니 어라, 맛이 뛰어나네. 지금은 목포와 나주에 홍어 시장과 거리가 생길 정도가 되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홍어 먹다 큰 병을 얻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사람도 내성이 생기고, 음식 조리 방법도 변화되며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홍어의 독특한 암모니아 냄새는 홍어가 연골어류라는 특성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인 경골어류와 달리 연골어류인 홍어는 요소를 소변으로 배출하지 않고 피부에 저장해두는 방식으로 삼투압을 조절한다.
홍어가 죽은 후에는 피부에 저장된 요소가 효소에 의해 분해되면서 암모니아와 트리메틸아민이 생성되어 자극적인 냄새를 뿜는다. 이 암모니아 발효 과정에서 잡균이 죽기 때문에 홍어는 상온에서도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다
삭힌 홍어는 일로부터 열흘 정도가 지나면 암모니아가 본격적으로 생성되면서 특유의 부패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 한달 가량 숙성하는 홍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풍미가 더 진해지며, 암모니아 냄새도 강해진다.
홍어는 영양학적으로 매우 우수한 식품이다. 100g당 87kcal로 저칼로리 식품이면서도 다양한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주요 영양성분 (100g 기준)
단백질: 19.6g
칼슘: 305mg
인: 250mg
철분: 1.2mg
비타민 B12, 니아신 등 비타민 B계열 풍부
홍어는 어패류 중에서 칼슘이 가장 많이 함유되어 있는 칼슘의 급원으로, 홍어 200g이면 하루 필요량을 충족시킨다. 또한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여 심혈관 건강을 촉진하고 혈액 순환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물론 막힌 코도 한 방에 뚫어준다.
그런데, 가끔 먹으면서도 얘가 몸에는 좋은건가, 해가 되는건 없나 걱정이 들기도 한다.
홍어의 연골에는 관절염 치료제로 쓰이는 황산콘드로이친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노화로 인한 뼈 관절 개선에 도움이 된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연골어류다. 홍어에 함유된 유산균은 소화 과정을 원활하게 도와주고, 소화 효소가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어 식사 후 소화를 돕는데 효과적이다. 발효식품들의 공통 효능이다.
홍어에 함유된 아미노산과 콜라겐은 면역을 강화시키는데 좋고, 삭힌 홍어는 강알칼리성 식품으로 산성체질을 중화시켜 체질개선이나 성인병 예방에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쯤되면 피부미용에도 좋을 거 같긴한데, 무리해서 여자친구를 데리고 가는 실수는 없기를.
좋아하게 되도 문제, 싫어해도 문제.
홍어가 몸에 좋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주의해야 한다.
홍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두드러기, 가려움증,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단백질 함량이 높아 소화가 잘 안될 수 있으며, 특히 익히지 않은 홍어를 섭취하면 소화불량, 복통,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염분이 많기 때문에 고혈압이 있는 사람은 과다 섭취를 피해야 하며, 홍어 꼬리에는 조그마한 가시가 있는데 이 가시에 독이 있어서 섭취 시 주의가 필요하다.
홍어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홍어 삼합이다. 홍어 삼합은 삶은 돼지고기(수육)와 홍어회, 묵은 김치 세 가지를 합하여 만드는 요리로, 처음 삼합이 만들어진 곳은 광주광역시다. 그래서 홍어삼합은 '광주 삼합'이라고도 불린다.
홍어삼합이 생기게 된 배경은 흥미롭다.
전라도에서 홍어가 빠지면 제대로 차린 잔치로 쳐주지 않았지만, 홍어는 값싼 생선이 아니었다. 잔치에 온 손님들이 홍어만 집어 먹으면 염치없어 보일까 봐 눈치를 보며 돼지고기와 김치를 함께 싸서 먹었다. 그런데, 먹다 보니 삭힌 홍어와 돼지고기 수육, 묵은 김치가 절묘한 조합을 이루면서 새로운 맛이 느껴졌다. 그래서 맛이 최상의 조합을 이뤘다는 뜻에서 홍어삼합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또다른 설에서는 반대의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돼지고기가 비싸서 홍어를 같이 먹었다는 주장이다. 둘 중 어떤 주장이 진실일까라는 진위 보다는 지역에 따라 두 음식의 상대적인 가격대가 달랐고 비용 믹스를 위해 같이 먹었는데 두 음식의 궁합이 딱 맞아 떨어진 케이스 아닐까 싶다.
일부에서는 홍탁삼합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확한 구분이 필요하다. 삼합(三合)은 홍어, 삶은 돼지고기, 익은 배추김치를 말하는 것이고, 홍탁(洪濁)은 홍어와 탁주(막걸리)를 함께 먹는다는 뜻이다. 홍탁은 주로 홍어무침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는 것을 말했다.
홍어와 비슷한 발효 생선 요리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스웨덴의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으로, 청어를 소금에 절인 통조림 음식이다. 일본의 발효 전문가가 설화 석고를 이용해 측정한 결과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악취가 심한 음식은 스웨덴의 수르스트뢰밍(8070AU)이고, 한국의 홍어회(6230AU)가 2위를 차지했다. 아쉽다, 2등이라니.
노르웨이에는 루테피스크(Lutefisk)라는 요리가 있는데, 말린 대구를 잿물에 담가 만든 전통 요리로 홍어와 마찬가지로 독특한 냄새와 식감을 가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노르웨이에서는 주로 주사위모양으로 잘게 자른 베이컨과 함께 먹는데, 이는 한국에서 홍어를 먹을 때 삶은 돼지고기를 같이 먹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아는 생선 초밥도 원래는 발효 음식이었다. 초창기 초밥은 나레즈시(熟れずし)라고 불리는 요리로, 지금의 초밥과는 다르게 생선 발효 식품이었다.
나레즈시는 깨끗하게 닦은 생선에 소금을 뿌려서 밥과 함께 돌로 눌러놓은 것으로, 밥이 발효되면서 젖산이 나와 부패 없이 장기간 보관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밥을 털어내고 생선만 반찬 삼아 먹었지만, 음식이 귀했던 시절에 밥을 버리는 것이 사치스러워 가마쿠라 시대에는 발효를 중간에 멈추고 밥을 같이 먹는 방법이 등장했다.
에도시대에 들어서는 발효를 생략하는 대신 식초를 부어 생산속도를 높인 초밥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했고, 1700년대부터는 발효시간을 줄이고 식초 첨가량이 늘어나면서 현재의 초밥이 탄생하게 되었다. 대중화에 성공한 케이스라고 연구해볼 만 하지 않을까?
홍어는 외국인들에게도 매우 충격적인 음식 중 하나다. 특유의 강렬한 암모니아 냄새와 삭힌 생선이라는 점에서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음식이다. 외국인들이 홍어를 처음 접하면 가장 놀라는 부분은 바로 강한 암모니아 냄새다. "화장실 세제 냄새 같다"거나 "코를 찌르는 향 때문에 먹기가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류 열풍과 함께 홍어도 해외에서 점차 관심을 받고 있으며, 유튜브나 SNS에서 외국인들이 홍어를 먹고 반응을 공유하는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도전 음식으로 여기기도 한다. 불닭 볶음면 챌린지 같은 상황이 발생하여 가격이 더 오르는 일은 막아야 한다.
현대에 들어 홍어는 단순한 지역 음식을 넘어서 한국의 독특한 식문화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1997년부터 홍어가 수입이 완전히 개방되면서 수입산 홍어가 급증했지만, 여전히 자연산 홍어의 희소성 때문에 고급 수산물로 분류된다.
특히 전라남도 목포와 신안 지역에서 잡힌 홍어가 최고급으로 여겨지며, 자연산 홍어 한 마리는 수십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홍어를 삭히는 과정에서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급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홍어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과 향수, 그리고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특별한 존재다. 비록 모든 사람이 즐길 수는 없을지라도, 그 독특함과 깊이 있는 맛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식문화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이 되면 여의도로 출동 준비를 해야겠다. 그런데 문제는 같이 갈 홍어 애호가들이 주변에서 찾기 어렵다. 한국인의 반은 커녕 10% 정도나 좋아하는거 아닐까? 전라도 목포 출신 후배도 홍어라면 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