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으로 하루를 재해석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생각했다.
언제부터인가 커피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저 습관처럼 아침에 출근 길에 커피전문점에서 한 잔을 건내받아, 카페인의 효과만을 기다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그레첸 루빈 저자의 '파이브 센스'는 잠들어 있던 감각의 문을 하나씩 열어주는 열쇠 같은 느낌을 준다. 행복 연구의 대가로 알려진 저자가 어느 날 안과를 방문한 후 깨달은 것은, 우리가 얼마나 머리 속 생각에만 갇혀 살아가고 있는지였다.
시각을 잃어 앞으로 무지개 색이 넘치는 거리 풍경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은 오히려 삶을 무지개 색 가득한 아름다운 채색의 시간으로 밝혀줄 수 있다.
루빈은 의사로부터 "근시가 심해 망막박리 위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보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날 집으로 걸어가며 뉴욕 거리의 색깔과 질감, 사람들의 표정과 건물의 디테일이 생생하게 다가왔다는 그의 경험은 나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저자는 시각을 '전경 시각(foreground vision)'과 '배경 시각(background vision)'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은 배경 시각으로, 자동적이고 습관적인 시선이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전경 시각을 사용할 때, 즉 색채와 형태, 빛과 그림자에 주의를 기울일 때 세상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며칠 전 점심시간, 사무실 근처 작은 공원에서 벤치에 앉아 '보기 명상'을 해봤다.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책에 쓰여있는대로 '의식적으로' 보는 것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의 패턴, 벤치 팔걸이의 페인트가 벗겨진 모습, 멀리서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는 회사원들의 다채로운 옷 색깔. 일행과 떨어져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의 휴식이었지만, 세상에 새로운 렌즈를 끼워 넣은 듯한 청량감이 머리를 개운하게 해준다.
"소리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색맹인 채로 미술관을 걸어 다니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 인상깊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소리에 둘러싸여 있지만, 정작 '듣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책에서 등장하는 '오디오 약국' 개념이 흥미로웠다. 특정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치유용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필요할 때마다 활용한다는 것이다. 나도 따라해 보기로 했다. 노래목록을 정하려고 머리 속 음악들을 헤집을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스트리밍 서비스에는 용도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활력 충전용', '마음 진정용', '집중력 향상용' 등으로 분류된 음악 중 취향에 맞는 목록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침묵 속에서 소리 찾기' 연습이었다. 매일 저녁 10분간 눈을 감고 귀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조용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집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소리들이 들렸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위층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아, 이건 소리가 아니라 공해지만), 창밖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까지.
저자는 후각을 '기억과 감정의 문'이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냄새는 뇌의 변연계와 직접 연결되어 있어서 다른 감각보다 훨씬 강력하게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지난달, 엄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 냄새를 맡는 순간 갑자기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초등학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항상 맡을 수 있었던 그 따뜻한 냄새. 그때의 안정감과 포근함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냄새 하나가 30년 전 기억을 이토록 생생하게 불러일으킬 수 있다니.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무향'도 사실은 하나의 향이라는 지적이었다. 무향 세제나 로션을 사용할 때도 우리는 어떤 냄새를 맡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 집안의 '무향' 제품들을 다시 맡아보니 정말 각각 다른 미묘한 냄새가 있었다.
저자는 각각의 감각을 개별적으로 단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오감을 통합적으로 활용할 때 진정한 '감각적 삶'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며 따뜻한 온도를 느끼고(촉각), 원두 볶는 고소한 냄새를 깊게 들이마시며(후각),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쓴맛과 단맛의 조화를 음미한다(미각). 카페 안의 은은한 조명과 창밖 노을의 색채를 바라보고(시각), 잔잔히 흐르는 재즈 음악과 에스프레소 머신 돌아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청각).
이런 모습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평안함 속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흥분과 안심을 동시에 경험하는 치유의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순간은 정말로 현재에 온전히 있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머릿속을 맴도는 걱정과 계획들이 잠시 멈추고, 지금 이 순간 내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집에서도 오감을 활용한 하루의 마무리는 저마다 가능한 방법을 탐색해볼 가치가 있다.
오감을 깨우는 것은 단순히 삶의 질 향상뿐만 아니라 실제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감각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 자체가 뇌를 자극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며, 면역력을 향상시킨다.
또 다른 포인트는 오감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같이 음식을 나눠 먹고, 향기를 함께 맡고, 음악을 같이 듣고, 서로의 손을 잡는 행위들이 모두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에서 의식적으로 '감각적'으로 보내려고 노력하는 시도는 누구나 충분히 해볼만 하다. 가족과 함께 요리할 때는 재료의 냄새와 촉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산책할 때는 새소리나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걷는다. 지인과 만날 때도 맛집 탐방보다는 함께 감각을 나누는 경험들을 우선시하는 음식점을 검색해보는 즐거움도 괜찮지 않을까?
오감을 깨우는 것은 단순히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그것은 현재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방법이고, 일상의 작은 기적들을 발견하는 능력이며, 나와 세상 사이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과정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오감을 의식하며 살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경험들을 쫓아다니는 대신, 이미 내 곁에 있는 풍부한 감각적 세계를 더 깊이 탐험해보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방법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 구절, "뇌는 하늘보다 넓다(The Brain is wider than the Sky)". 우리의 의식이 무한히 넓을 수 있다면, 그 첫걸음은 바로 우리 몸이 가진 오감을 온전히 깨우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