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꽁꽁 묶어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기
임상심리학자 키렌 슈나크 박사의 “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우리 시대 가장 보편적인 감정이자 은밀하게 퍼져있는 고통인 불안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도 따뜻한 해답을 건내준다. 20년 이상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불안을 단순히 없애야 할 부정적 감정이 아닌, 우리 내면의 신호로 재해석하고 불안과 새로운 관계 맺기를 제안하고 있다. 불안의 신경학적, 생리학적, 진화적 필연성을 설명하고, 실질적인 극복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고 있다.
슈나크 박사가 제시하는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바로 '데몽타주(demontage)', 즉 불안의 해체다. 영화의 몽타주가 여러 장면을 이어 붙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듯, 우리의 마음은 단편적인 기억, 부정적 감정, 미래에 대한 두려운 이미지의 상상 조각들을 긁어 모아 불안이라는 거대한 그림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결과물은 실체가 아닌 우리 뇌와 감정이 얽힌 왜곡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래서 작가가 알려주는 불안을 다루는 첫걸음은 이 거대한 심리적 콜라주를 하나씩 떼어내는 작업이다. 내가 느끼는 불안이 실제로 존재하는 위험인가, 아니면 상상이 증폭된 것인가를 구별해야 한다. 이는 불안을 적으로 규정하고 처절한 전투에 임하는 방식이 아니라, 불안의 구조를 하나씩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해보는데서 시작된다. 외과의사가 종양을 제거하기 전에 그 구조와 위치를 면밀히 파악하듯, 우리도 불안의 구성 요소를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원인과 규명을 시작해야한다는 것이다.
책에서 제시되는 불안 극복의 핵심 전략은 '유연성'과 '수용'이다.
이는 현대 심리치료에서 가장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평가받는 수용 전념 치료(ACT,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의 핵심 원리이기도 하다.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태도, 그리고 불안을 억누르기보다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을 골자로 한다.
'분홍색 코끼리' 실험을 들어보자. 우리가 의도적으로 분홍색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쓸수록, 오히려 머릿속에 그 이미지가 더 선명하게 떠오르게 된다. 불안도 마찬가지다. 불안을 억압하고 밀어내려 할수록 불안은 더욱 강력하게 우리읠 삶을 지배하고 제어한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 불안과 좋은 관계를 맺는 일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치유의 형태와는 많이 다르지만 책장을 넘겨갈수록 오히려 이런 접근태도가 현실에 기반한 극복의 단계라는 확신이 들 것이다.
수용은 단순히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다. 자신의 내적 경험을 조작하려 하지 말고 그대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 이를 무시하거나 기분을 바꾸려 노력하고 애쓰는 대신 "아, 지금 나는 불안하구나"라고 인정해보자. 이러한 태도는 마음챙김과 수용의 과정을 통해 도달할 수 있디고 저자는 조언하고 있다.
불안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성을 싫어하지만, 삶은 언제나 주사위를 던지는 행위와 같다. 그러나 저자는 인생이 러시안 룰렛은 아니라고 말한다. 불확실성은 위험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바라봐야 한다. 불안을 없애는 대신, 불확실성을 견디는 근육을 기르는 조언이 등장한다. 마치 운동으로 근육을 키우듯, 작은 불확실성부터 시작해서 점차 더 큰 불확실성을 견디는 연습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예측하려는 욕구를 내려놓고, 삶의 예측 불가능성을 받아들일 때 역설적으로 더 큰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빠지기 쉬운 완벽성에 대한 통제는 실제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무시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은 끊임없는 불안의 원천이 되고 만다. 유연하게 대처하는 태도, 즉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이 불확실성 속에서 균형을 잡는 핵심요소라고 볼 수 있다.
책에서는 이론적 설명 뿐 아니라, 임상 현장에서 검증된 구체적 기법들이 제시되어 독자가 실행을 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제시한다.
첫째, '감정에 이름 붙이기'다. 막연한 불안을 "지금 나는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수행 불안을 느끼고 있다"처럼 구체화하면 그 감정이 더 관리 가능해진다.
둘째, '자기 연민 실천'이다. 불안을 느끼는 자신을 질책하는 대신, 친구를 대하듯 부드럽게 위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괜찮아, 이 또한 지나갈 거야"와 같은 자기 위로의 말을 기록하고 반복해서 읽는 것도 효과적이다.
셋째, '생산적 주의 분산'이다. 이는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의미 있는 활동으로 주의를 옮기는 전략이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현실로 복귀하는 실용적인 방법이다. 예를 들어 불안이 엄습할 때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몰두하거나, 타인을 돕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넷째, 불안의 긍정적 기능을 기억하는 것이다. 불안은 우리에게 위험을 알리고 대비하게 만드는 적응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적절한 수준의 불안은 우리를 더 신중하게 만들고 더 나은 준비를 하게 한다. 문제는 과도한 불안이지, 불안 자체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제목 중에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표현이 있다. 이 시적이면서도 정신분석학적인 제목은 불안이 단순한 심리적 불편함을 넘어 우리 존재의 근간을 흔드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정확히 포착한다. 우울증, 미래에 대한 불안이 얼마나 평상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황폐하게 만드는지, 제목 하나만으로도 잘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나의 경우를 돌이켜보면, 불안감이 평균이상으로 삶을 지배했던 것 같다. 조직의 리더로서 조직을 이끌면서 성과를 내기 위해, 그리고 경쟁사 또는 협력사와 좀 더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냈다. 시나리오 중에는 성공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안 좋은 최악의 경우까지도 고려해야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부정적 편향에 빠지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경험했던 것이 바로 슈나크 박사가 말하는 '인지 왜곡'과 '최악의 시나리오 자동 상상'이었음을 깨달았다. 리더로서 책임감과 신중함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과도해지면 부정적 편향의 덫에 빠진다. 그래서 보니까 매사에 삶에 대해서 자신감이 건축되는 듯했지만, 때로는 불안이 지배하면서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해서 과도하게 걱정하거나, 과거에 잘못 선택한 것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반복하며 단념하는 모습들이 자주 나타났다.
더욱 문제적이었던 것은 이런 사고 과정을 자연스러운 사고 과정으로 인지하고, 자신의 강점으로 착각했다는 점이다. '나는 신중하고 철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과도한 걱정을 긍정적 특성으로 포장했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처럼, 이는 불안을 없애야 할 적으로 여기는 대신 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위험한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 빠지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이 불안을 평상시에 달고 사는 상황에 처할 수 있고, 여기서 큰 장애가 있다고 스스로 진단할 수 있을 것 같다.
건강염려증도 그 연장선이었다.
평소에 넘어갈 수 있는 작은 신체 증상도 "혹시 이게 문제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나?"를 고민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슈나크 박사가 말하는 '질병불안'이라는 그림자였다. 회피 행동도 나타났다. 건강검진을 미루거나, 특정 증상에 대해 정보를 과도하게 검색하는 안전 추구 행동이 오히려 불안을 강화시키는 연료가 되었다.
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는에서, 우리는 불안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그것을 수용하며,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고, 비로소 불안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나는 여전히 불안을 느낀다. 하지만 이제 그 불안은 나를 잠식하는 우려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내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이고, 나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내면의 목소리다. 불안과 싸우는 대신, 불안과 함께 춤추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혼을 깨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 불안은 우리를 피폐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다루면 우리를 더 깊고 성숙한 존재로 성장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다. 불안을 느끼는 것은 약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무언가를 신경 쓰고 있으며, 살아 있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