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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Apr 18. 2019

상사는 내가 ‘잠깐’ 딴짓할 때만 나타난다.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하면 피로가 점점 쌓인다. 피로가 너무 많이 쌓이면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피곤하고 집중이 되지 않아 정신은 점점 안드로메다로 간다. 주로 오후에 그런다. 특히 점심 식사를 직후에 말이다. 그 상태 그대로 그냥 있으면 안 된다. 그 상태로 계속 일하면 어느 순간 정신을 놓거나 졸게 된다. 그럼 일을 실수하게 된다. 실수하면 큰일 나지! 피로는 풀어주어야 한다! 업무 효율을 위해서.

피로를 풀려면 스트레칭을 하거나 잠시 딴짓을 해야 한다. 잠깐이다. 계속 딴짓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잠깐이다. 흐트러진 정신을 가다듬을 때까지만 말이다. 3분에서 5분, 길어야 10분이다. 고작 10분 딴짓한다고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피로가 풀리고, 정신이 집중되니 피로가 쌓일 때마다 그 정도의 시간은 가져야 한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있다. 고작 10분인데, 아니 이제 막 딴짓을 했을 뿐인데 느닷없이 상사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딴짓 한 번 안 하고 정신없이 일했는데, 여태 안 나타나다가 어떻게 지금 딱 나타나지? 죽어라 일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꼭 이때 나타난다. 피로를 풀기 위해 기지개를 하거나 방금 포털 사이트 창을 띄워 검색어를 입력한 순간에 말이다. 귀신같다. 왜 하필 이때 나타나는 건지.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놨나? 도대체 어떻게 알고 나타난 거지?




정말 그렇다. 일에 몰입하거나 열심히 일할 때는 상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피로를 풀기 위해 잠시 딴짓을 하는 순간 여지없이 나타난다. 감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가 막힌 타이밍에 말이다. 상사들은 촉이 있는 걸까? 그저 볼일을 보기 위해 온 건데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맞았을 뿐일까?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상사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건 아니니. 그럴 만큼 한가한 상사는 없다(간혹 그럴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한 상사가 있긴 하다). 그런데 왜 꼭 타이밍이 그렇게 맞을까? 정말 신기한 일이다.

타이밍이 그렇게 맞는 거야, 일부러 맞춰서 온 게 아니니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여태 실컷 일하다 잠깐 딴짓을 했을 뿐인데, 계속 딴짓을 한 거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상사 입장에서야 내가 이제 막 딴짓을 했는지 한 시간 동안 그랬는지 알 길이 없으니 오해하는 게 당연하긴 하다. 그래도 어지간히 속 좁고 깐깐한 상사가 아니고서야 보통 한두 번은 이해하고 넘어가 준다. 정말 깐깐한 상사라면 한 번도 안 봐주지만.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기가 막힌 타이밍이 서너 번 반복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런 광경을 자주 목격하면 그때부터는 상사는 오해 아닌 오해를 한다. 오해는 의심과 불신으로 바뀐다. 일은 안 하고, 항상 딴짓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반복해서 걸리면 좋지 않다. 정말 딴짓은 피곤할 때 잠깐씩 할 뿐이고, 쉬지도 않고 아주 열심히 일하는 게 사실이어도 안 믿는다. 상사는 내가 일하는 걸 계속 지켜보는 게 아니니까. 상사는 지금 눈으로 본 게 전부다. 딴짓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하면 그걸 전부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상사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억울하다고 소리쳐봐야 소용없다. 항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빼박이다.

그래, 마음이 정말 넓은 상사라면 딴짓하는 걸 서너 번 보더라도 업무 성과가 좋으면 이해해 줄 것이다. 정말 피곤해서 정신을 다잡으려고 잠시 딴짓하는 거라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줄 것이다. 그래도 그 이상 걸리면 안 되겠지만. 하지만 업무 성과가 별로 좋지 않거나 성과가 들쑥날쑥하면 곤란하다. 상사는 딴짓하느라 집중을 못 해서 그런 줄로 오해한다. 아니면 그만큼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나.

딴짓도 눈치가 필요하다. 타이밍을 봐가며 딴짓해야 한다. 아니지. 정말 딴짓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니 말을 바꿔야겠다. 피곤하다고 아무 때나 피로를 푸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눈치를 봐서 이때다 싶을  때 피로를 풀어야 한다. 아니면 차라리 회장실을 가자. 그게 제일 오해가 없다. 너무 자주 화장실을 가면 안 되겠지만. 화장실 가기가 애매하면 물을 마시러 가거나. 그럴 여건이 안 되면 다른 좋은 방법을 찾자. 괜히 컴퓨터로 업무와 상관없는 엄한 사이트를 구경하거나 자리에서 넋 놓지 말자. 그건 잘못 걸리면 오해받기 쉬운 방법이다.




상사만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맞추는 건 아니다. 나도 용무를 보려고 상사에게 갔을 때 쉬고 있거나 딴짓을 하는 광경을 목격하곤 한다. 나도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리라. 그런 걸 보면 상사만 신기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상사들은 왜 꼭 직원이 쉴 때만 나타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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