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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같이 살고 싶었는데 돌같이 산다.

이게 인생인가

by 언젠가

나는 꽃을 좋아한다.

꽃꽂이 취미반에서 시작해 둘째를 업고 수업을 다니며 플로리스트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좋아한다는 이유로 업을 삼아 생계를 마련하기에는 나 자신이 치열하지 못하고

샘이 밝지 않아서 꽃집 창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진지하게 고려하기도 했었다.

모든 종류의 꽃은 고유한 색과 향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 꽃들을 가까이하며 즐기며 살고 싶었다. 꽃 속에 둘러 쌓여서 꽃처럼 살고 싶었다.


식탁 위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손봐줘서 가지런한 줄기에, 화병에 물이 깨끗하게 유지되는 상태로 파스텔톤 꽃들이 꽂혀있고,

해가 잘 드는 부엌 창가에서 cathkidston의 장미, 데이지, 블루벨 패턴들이 프린트된 앞치마를 두르고 쿠키를 굽는 일상. 버터가 듬뿍 들어간 쿠키나 스콘을 구워내며 오븐에서 퍼져 나오는 그 따스한 온기와 고소한 향기를 만끽하는 순간들로 이루어진 일상. 내가 이루고 싶은 일상이었다.

그런데 나는 매일 아침 허둥지둥 일어나서 가장 먼저 잡히는 옷을 겨우 몸에 꿰어 입고 뛰어나간다.

퇴근을 하면 머리를 올려묶고 아이를 돌보며 집안일을 한다.

주말엔 새로운 일을 진행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교육을 들으러 간다.

돌멩이처럼 굴러다닌다. 빠르게 데굴데굴.


빠르게 데굴데굴 구르다 우왕좌왕하며 넘어지기도 하고 얼굴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꽃을 사랑했다. 꽃같이 살고 싶었는데 돌같이 산다.

그런데 어느덧 이렇게 살아가다 보니 문득 느낀다. 그래 좋다. 발부리에 치이며 자글자글하게 살아도 좋다.

꽃같이 살고 싶었는데 나는 꽃이 아니라 돌이었나 보다. 돌멩이니까 구르자 데굴데굴.

어디론가 데굴데굴 굴러가다 문득 생각나면 꽃무늬 원피스를 찾아 입고 화병에 물을 갈아주며 잠시 쉬어간다.

그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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