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라는 거대한 파도, 그리고 논산이라는 역설적 대피소
육아 휴직을 결정하고 직장동료나 지인들의 고민 섞인 물음이 있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 그것도 회사가 중대한 과도기 시점에 그 어느 때보다 자리보전에 고민해야 할 이 타이밍에 왜 굳이 1년이나 쉬느냐고.
표면적인 이유는 물론 사랑스러운 딸과의 시간, 육아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누구에게도 쉽사리 꺼내지 못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AI가 몰고올 특이점의 시대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할 문명의 전환이 될것 같은 본능적인 두려움과 고민이었다. 이건 단순히 자리보전 수준이 아닌 깊은 고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몇 년간 회사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단순한 기술의 발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하는 방식의 혁명을 넘어, 조직 내 '인간관계의 재정의'였다. 예전에는 시니어들의 축적된 경험이 후배에게 정답이자 권위가 되었지만, 이제는 AI가 선배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회사에서 필요한 정답을 내놓는 세상이 되었다. 인간 중심이었던 생태계가 차가운 알고리즘과 데이터 중심으로 재편되는 그 낯선 풍경 속에서 나는 문득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과연 지금의 내 경험과 방식이 앞으로도 유효할까?'
이 근원적인 고민은 자연스럽게 집으로, 그리고 내 아이에게로 이어졌다. 이제 곧 다섯 살이 되는 내 딸이 살아갈 세상은 내가 살아온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문법으로 작동할 것이다. 정답을 잘 맞히는 것이 미덕이었던 우리 세대의 교육 방식이, AI가 모든 답을 0.1초 만에 내놓는 시대에도 통용될 수 있을까? "아빠, 이건 뭐야?"라고 묻는 아이에게 나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암기력보다는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힘을, 지식의 축적보다는 타인과 연결되는 공감 능력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교육 체계와는 전혀 다른 '육아의 방향키'를 잡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나는 멈춰 서기로 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최첨단의 파도를 고민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곳은 기술과는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곳. 이곳 시골, 논산이다.
매일 쏟아지는 도시의 소음과 업무의 홍수 속에서는 거대한 해일의 전체적인 모양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파도와 조금 떨어진 이 한적한 시골에 와서야, 세상이 변해가는 흐름이 더 선명하게 보일수 있다 가정했다
나는 이곳에서 '가족'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 안에서 고민의 시작을 해보려 한다. AI가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는 시대가 올수록, 결국 대체될 수 없는 가치는 사람의 온기, 서로를 보듬는 마음, 그리고 사랑과 같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것들에 있지 않을까.
논산에서의 1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한 아이의 아빠로서 거대한 특이점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생존법' 을 익히는 시간이다. 가장 느린 이곳에서, 가장 빠른 미래를 준비하는 치열한 적응의 시간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