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막하의 미모로 뭇 여성들로 하여금 목덜미를 자발적으로 내어주게 했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에서의 두 뱀파이어,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 어쩌면 우린 브래드 피트와 톰 크루즈의 재회를 <포드 V 페라리>(2019)에서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조셉 코신스키가 메가폰을 잡고 톰 크루즈-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기로 한 <포드 V 페라리>는 예산 문제로 무산됐다. 알다시피 영화는 제임스 맨 골드 감독과 맷 데이먼-크리스천 베일의 조합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사이 조셉 코신스키는 톰 크루즈와 <탑건: 매버릭>(2022)을 찍었다.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성공한 <탑건: 매버릭>을 통해 조셉 코신스키의 주가 역시 뛰어올랐다. 그러나 서킷 위를 달라지 못한 아쉬움이 조셉 코신스키를 붙들고 있었을까. 그는 <포드 V 페라리>에 함께하지 못한 브래드 피트와 다시 주행하는 꿈을 꿨다. 그렇게 나온 영화가 바로 <F1 더 무비>다.
<탑건: 매버릭>의 작가 에런 크러거도 함께 탑승한 영화의 큰 그림은 <탑건: 매버릭>과 상당히 유사하다. 구세대가 신세대와 아웅다웅하다가 팀으로부터 존재감을 인정받고 낭만을 쟁취한다는 내용. 한마디로 <F1 더 무비>는 '<탑건>의 F1 버전'이라 할 만하다. 물론 큰 차이가 있다. 주인공의 연혁이다. <탑건>의 매버릭(톰 크루즈)은 이미 파일럿계에서 베테랑이자 전설로 불리는 사나이였다. 그러나 <F1 더 무비>의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는 다르다.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이 남자의 사연을 살펴보자.
1990년대, 포뮬러원(F1)의 기대주였다. 전설의 레이서 아일톤 세나, 미하엘 슈마허 같은 전설의 선수들이 그의 경쟁자였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참혹한 사고가 모든 걸 앗아갔다. 레이싱 선수로서 사망선고를 받은 그의 삶은 비포장도로로 이탈해 버렸다.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택시기사로 생계를 잇기도 했다. 그 시간 동안 사랑하는 연인들도 그를 떠났다. 정착하지 못하는 삶이었다. 그는 낡은 밴에서 먹고 자며 레이싱 대회를 용병으로서 전전한다.
그런 그의 인생에 다시 한번 기회가 온다. 과거 F1 같은 팀에서 뛰었던 동료인 루벤 세르반테스(하비에르 바르뎀)에게 레이싱 복귀를 제안받으며 F1 최하위 팀인 에이펙스 그랑프리(APXGP)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녹록지 않다. 에이펙스 운영진은 그를 탐탁지 않아 하고, 크루들도 그의 능력을 의심한다. 무엇보다 팀의 떠오르는 루키이자 파트너인 조슈아 피어스(댐슨 이드리스)가 '영감님'이라며 대놓고 놀린다. 물론 당하고만 있을 소니 헤이스가 아니다. 조슈아를 향해 거하게 받아친다. "이, 관종아!"
레이싱 영화가 가장 많이 구사하는 전법은 다른 팀(레이서)끼리의 경쟁이다. 실제로 레이싱 영화의 교본이기도 한 스티브 맥퀸 주연의 <르망>(1971)은 포르쉐와 페라리의 불꽃 튀는 경쟁을 다뤘다. 론 하워드 감독의 경우엔 <러시: 더 라이벌>에서 숙명의 라이벌 관계였던 두 남자를 조명한 바 있다. <F1 더 무비>는 이 전법을 살짝 변형한다. '상대팀'이 아니라, '같은 팀 선수'끼리의 관계(경쟁)로 말이다.
F1은 드라이버(개인)와 컨스트럭터(팀) 부문으로 나눠 순위를 정하는 스포츠다. 개인 챔피언은 드라이버 한 명의 시즌 성적을 합산해 순위를 정하고, 컨스트럭터는 팀당 2명씩인 드라이버의 점수를 더해 우승팀을 가린다. <F1 더 무비>는 바로 이 점, '한 팀당 2명의 드라이버가 출전한다'는 룰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녹여 경쟁 상대를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찾았다. '같은 팀 출전 선수끼리 손발이 맞지 않는다면?'이라는 가정을 극적 요소로 끌어안은 것이다.
여기에 더해, 소니 헤이스가 팀 내 크루들과 '원팀'이 되어가는 과정도 적절하게 녹여냈다. 최하위 팀 신세라 기세가 꺾여 있는 크루들은 베테랑 소니 특유의 리더십 아래 조금씩 자신감을 찾기 시작한다.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던 피트크루(레이싱카의 장비 교체를 담당하는 스태프)가 소니의 응원을 받으며 성장하고, 결정적인 순간 팀원들과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는 모습도 감동적이다. <탑건: 매버릭>에서 매버릭이 후배 조종사들과 비치발리볼로 팀워크를 다졌다면, 소니는 팀원들과 트랙 달리기로 마음을 모은다. 홀로 외롭게 달리던 소니 곁에 팀원들이 불어날 때마다 팀워크가 무르익는다.
앞서 말했듯, 신구의 조합은 <탑건: 매버릭>에서 이미 한 번 보여준 서사다. 승산 없어 보이던 언더독의 반란 또한 전형적이다. 루벤과의 우정, 머신을 개발하는 기술감독 케이트(케리 콘돈)와의 러브스토리도 예스럽다. 그러나 이 빤함이 싫지는 않다. 이야기는 익숙하지만 개별 에피소드에 찰기가 있고 등장인물 간 연결성이 좋기 때문이다. 팀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던 소니의 선택이 결정적인 순간 어떠한 변수로 인해 커브를 꺾을 때의 반전도 설득력이 있다.
이야기는 빤하지만, 영화가 구현해낸 기술력은 결코 빤하지 않다. 레이싱 영화로서의 긴박감을 위해 영국, 헝가리, 이탈리아, 미국, 아랍에미리트 등을 돌며 실제 F1 2023~24 시즌 그랑프리 대회를 카메라에 담았다. 차량에 장착한 고해상도 마이크로 카메라는 관객을 레이싱에 동참시키는 역할을 한다. 조셉 코신스키는 <탑건: 매버릭>의 비행 장면을 찍으며 익힌 노하우 역시 아낌없이 사용했다. 시속 300km로 질주하는 레이싱의 속도감을 IMAX 포맷에 꾹꾹 눌러 담았다. 엔진음에 더해진 한스 짐머의 웅장한 사운드는 말해 뭐 하랴. 두근두근한 분위기를 내내 극에 실어낸다.
호불호가 갈릴 지점이라면, 방송 캐스터의 목소리 비중이다. 영화는 F1의 규칙을 모르는 관객을 위해 쉴 새 없이 방송 캐스터 해설을 곁들이는데, 누군가에겐 다소 설명이 과도한 영화라는 느낌을 안길 수 있다. 팀의 전략이 관객 눈으로 확실하게 간파되기보다 해설에 의해 전달되는 것 역시 카타르시스를 다소 떨어뜨리긴 한다.
<탑건: 매버릭>이 톰 크루즈에 의한, 톰 크루즈를 위한 영화였다면, <F1 더 무비>는 1부터 10까지 브래드 피트에 의해 작동하는 영화다. 특히나 영화 속 소니는 브래드 피트가 데뷔 시절부터 지니고 있는 방랑자 기질을 담은 인물이다. 브래드 피트라는 존재감을 세계에 각인시킨 <델마와 루이스>(1993)를 시작으로 티베트로 향했던 <티벳에서의 7년>(1997), 동생의 애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접기 위해 집을 떠나 유랑했던 <가을의 전설>(1994) 등 영화 속 브래드 피트는 늘 집이 아닌 길 위를 방랑하는 남자였다.
<F1 더 무비>의 소니 역시 한 곳에 머무르는 법을 모른다. 훌쩍 왔다가 훌쩍 떠난다. 브래드 피트에 의해 소니는 조금 더 자유분방하고, 고독한 남자로, 낭만을 간직한 남자로 거듭난다. 매버릭과 마찬가지로, 캐릭터가 배우의 기질에 큰 영향을 받은 경우라 하겠다.
(시사저널에 쓴 칼럼입니다.)